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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가족은 다섯입니다. 나와 아내는 디지털 시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 사람입니다. 첨단 디지털 기기를 구입하여 사용하려는 마음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습니다. 얼마나 디지털 기기에 무관심하냐면, 휴대전화를 1998년 7월에 가입했는데 아직까지 그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는 첨단 기기들을 보면서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아빠와 엄마 때문에 아이들 큰놈이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컴퓨터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컴퓨터를 하는데 시간은 한 번에 20분씩입니다. 물론 아이들 컴퓨터가 아니라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입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한 번씩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일도 시대에 저항하는 한 방편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교육 방식과 삶의 방식이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름 방학 기간 아이들은 책을 100권 정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읽지 말기를 부탁해도 읽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독후감은 왠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독후감을 강요했지만 자기가 하기 싫은 일 강요하면 좋은 방법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쓰고 싶을 때 쓰면 되기 때문입니다.

 

"인헌이는 독후감 쓰고 싶은 마음 없어?"
"예, 별로 쓰고 싶지 않아요."
"책만 읽으면 되나. 읽은 내용을 글로 남기는 것도 좋은 일인데?"
"다음에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잖아요."

"방학 때 읽은 책 중 인헌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만화 박정희>와 <만화 전두환>요."

"어떤 생각이 들었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이런 가족이 정말 마음 크게 먹었습니다. 생각과 고민 끝에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디지털에 무관심 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제가 '기계치'에 가깝습니다.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제가 매뉴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봅니다.

 

매뉴얼이 워낙 복잡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읽어가기 힘듭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이번 디지털 카메라도 아내에게 매뉴얼을 읽도록 했습니다. 매뉴얼을 읽은 아내가 조금 설명하면 조금 익히면서 알아가는 일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사용하다가 망치는 경우도 종종있었습니다.

 

"아빠 이게 무엇인데요?"
"디지털 카메라."
"아빠! 이거는 필름 없어도 되죠? 우리도 필름 없는 카메라 있었으면 했는데 이제 있어서 좋아요."

"그래 아빠가 디카를 잘 몰라서. 잘 찍을지 모르겠다."

"아빠 빨리 찍어요."
"막둥이 너 디카 만지면 안 돼!"

 

막둥이 손에만 가면 무엇이든지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집 남자는 이상하게도 손만 가면 망가뜨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첫째놈, 막둥이가 망친 가전제품이 꽤 많습니다. 할머니집 오디오, 삼촌 휴대전화, 생각하니 어머님과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카메라만 쳐다보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빠가 찍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 얼굴이 금세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이토록 좋아하는데 왜 빨리 구입하지 않았을까, 마음 한 켠이 아파옵니다.

 

"자 우리 가족 사진 한 번 찍어보자. 막둥이, 인헌이, 서헌이, 당신도 함께 찍어요."

"당신 찍을 때 눈감지 말아요!"

"막둥이 좀 조용히 하고, 사진을 입으로 찍나. 우리 예쁜 아이는 좀 웃고. 인헌이는 정말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는데."

 

 

막상 같이 찍으려고 하니 찍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필름 카메라는 시간모드를 정하면 같이 찍을 수 있는데 도저히 디카는 어떻게 하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에게 빨리 매뉴얼에서 10초 후에 찍는 방법을 찾아보라 했습니다.

 

"자 자리 정돈하시고, 찍습니다. 우리 가족 사진 한 번 확인합시다."

"엄마 또 눈 감았어요!"

"아니 당신 말이야, 그렇게 눈 감지 말라고 했는데 또 감았어요."
"아니 나는 분명히 눈을 감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이 디카를 통하여 처음으로 찍었습니다. 오늘은 한 두 가지 찍는 방법만 알았지만 조금씩 배워가면서 동영상도 촬영하고, 사진도 잘 찍어 <오마이뉴스>에도 올리고, 다른 사람도 찍어 주는 날이 빨리 오기를 원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사진 잘 찍는 날이 오겠지요.


태그:#디지털 카메라, #디카,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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