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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 일.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노무현 전 정부의 대통령 전용기 예산 300억을 삭감해 버린 한나라당 국회의원님들의 무모한 결단 말이다. 삭감을 결정한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지금 당장 전용기는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이 삭감을 놓고 감정적인 정치 행위다, 아니다, 참 말도 많았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차기 대통령이 이용할 전용기 도입사업을 왜 현 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느냐."

말의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각 정부간 정책실행의 연속성을 무시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몇년을 검토하고 진행해야 하는 굵직한 사업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권에서 예산을 배정하면 다음 정권에서 다듬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순리였다.

사실 대통령 전용기 도입은 다음 정권에 미루고, 넘기고 할 겨를이 없는 시급한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통령 전용기는 85년에 도입된 노후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봐도, 국가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서도 새 대통령 전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전 정부의 대통령 전용기 예산 배정은 적절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자료사진)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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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다음 정권을 위해서라는 노무현 전 정부의 입장도 무시해 버렸다. '대통령 전용기' 예산을 싹뚝 잘라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상당수의 국민들은 걱정했다. 한나라당의 그런 결정이 노무현 전 정부에 대한 감정싸움의 양상을 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13일 주요당직자 회의. 이재오 원내대표의 발언에서 관련 예산 삭감의 참뜻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민심 헤아리고 서민 경제 올인하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일년에 한번 탈까말까한 전용기를 1천억원 들여 구입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 즉각 거둬들여야 한다. 다음 정권 전용기는 다음 정권에 맡겨야 한다. 그런 발상이 민심 외면 자초하는 것이다. 말로만 민생 경제 올인, 마음은 딴 데 가 있으면 안된다. 전용기 구입 계획 즉각 취소하고 그 예산 있으면 한달 5만원 전기세 못내 촛불 켜는 수많은 빈곤층에 따뜻한 눈길 돌려야 한다."
- 2006년 6월13일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 회의.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은 따끔했다. 대통령 전용기 대신, 한달 5만원 전기세 못내 촛불 켜는 수많은 빈곤층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서민경제 챙긴다더니 1천억짜리 전용기를 구입한다는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글을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의 그 숭고한 마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현명한 국민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감정정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정부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나라당, 이번에도 '빈곤층에 눈길 돌려라'라고 요구할까?

시간이 지나 2008년. 그런데 놀랍게도 2년 전 물먹은 대통령 전용기 이야기가 다시금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을 통해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하나. 이야기를 꺼내는 장본인이 바로 이명박 정부라는 사실이다. 대통령 전용기가 서민경제를 망치는 양 거품 물던 바로 그 한나라당 출신의 대통령인 것이다.

누군가는 그랬던가. 정치는 돌고도는 것이라고, 이것이 정치의 묘미일 것이다. 자신들이 행한 맹목적 반대가 결국 비수가 되어 자신들의 등뒤를 찌를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서민경제 왈가왈부 하며, 전기세 못내 촛불 키는 수많은 빈곤층을 생각하라는 한나라당의 그 국회의원들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전용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적어도 그들은 대통령 전용기 계획이 민심의 외면을 자초한다고 했던 사람들이니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행동이라도 취할 것이라 믿지만 한편으로는 또 말을 바꿀지 몰라 일면 불안하기도 하다.

문득 2007년 1월 3일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실에서 낸 자료 내용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정부 전용기 도입예산 전액 삭감이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 누구를 위한 예산 심의인지 아쉬울 따름이다. 국회도 이제 근시안적 예산심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이 사업을 적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익 차원의 시각이 필요하다."                                     
- 2007년 1월 3일 전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실

과거에 했으면 좋은 일을 굳이 하지 않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것.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속담이 생각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다. 돌이켜보라. 과거 한나라당이 노무현 전 정부에 대한 감정싸움을 접고 대통령 전용기 예산을 승인했더라면 지금 대통령 전용기 사업은 순풍을 달고 있었을 테다.

어디 이뿐이랴, 전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정치적 부담도 덜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한 기회가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근시안적 시각 때문에 대통령 전용기 계획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직격탄은 이명박 정부가 맞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경제도 어려운데 왠 하늘 자가용?'이라며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년 전, 노무현 전 정부에 대해 대통령 전용기 살 생각말고 촛불 켜는 사람을 생각하라는 한나라당 당직자 회의 발언은 부메랑처럼 이명박 정부에게 돌아왔다. 결국 과거 한나라당의 잘못된 결정 하나가 정부에게 큰 부담을 짊어지게 한 것이다.

문제는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면 다행이련만 지금 당장 외양간을 고치기에도 국내 여건이 너무 버겁다는 것이다. 경제는 바닥. 환율은 끊임없이 상승하고 물가는 천정부지다. 게다가 8월 무역수지 적자가 벌써 6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수백, 수천억에 달하는 '대통령 전용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국민들 입장에선 뿔날 만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G8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한 7월 8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 승무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플랫폼에 오르기 직전 살충제를 연신 뿌려대고 있다.
▲ 대통령 전용기 침투 해충을 막아라! 이명박 대통령이 G8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출국한 7월 8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 승무원이 이명박 대통령이 플랫폼에 오르기 직전 살충제를 연신 뿌려대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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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전용기 도입을 준비하면 이르면 2010년쯤에야 도입이 가능하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차기 정부는 수명이 다한 전용기를 사용해야만 한다. 현 대통령이 타기 위한 전용기가 아니라 차기 정부와 그 뒤에 오는 정부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예산을 마련해 준비하자는 것이다. '왜 당장 추진하냐'는 근시안적 논리라면 전용기 도입은 언제나 요원하다.

미래학자로 잘 알려진 앨빈 토플러 박사는 지난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의회는 10∼20년 앞을 내다보고 활동하고 대통령은 50년을 내다보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 2007년 1월 3일 전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 전용기' 이야기는 현 경제상황에서 눈치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 사실 어찌됐건 '대통령 전용기'는 앞 정부에서나 뒷 정부에서나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 전 정부에서도 그토록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몇년 동안 벌어진 일련의 '대통령 전용기 계획'의 진행상황을 보면서 거대 정당의 정부 발목잡기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감정에 몰입된 정치적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 책임에 대해 한나라당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어찌됐건 덕분에 20%대의 궁핍한 지지율에 허덕이는 대통령의 근심이 하나 더 쌓이게 생겼다. '747, 747 노래를 부르더니 전용기마저 보잉 747를 사려고 하네!'라는 국민들의 볼멘 소리를 고스란히 듣게 생겼으니 말이다.


태그:#대통령 전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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