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중랑천에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 조롱박 지금 중랑천에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길라잡이(나)는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참 좋아한다. 어디를 가든 옛 고향마을이 절로 떠오르는 풍경을 만나면 이리저리 흩어져 나풀거리던 마음이 어느새 한곳으로 모이면서 포근해진다. 이는 길라잡이가 시골에서 태어나 자연이 내준 넉넉한 품에서 자랐고, 그 자연 속에서 무지개빛 꿈을 키웠기 때문이리라.   

길라잡이는 그동안 식의주를 위해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맨 처음 고향을 떠나 터를 잡은 곳은 서울이었고, 그 다음에는 울산, 부산, 경주, 창원, 순천, 서울 순이었다. 길라잡이는 그렇게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까이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 셋방을 얻었다. 산책로나 고즈넉한 풍경이 없는 곳은 아무리 방세가 싸고 주거시설이 좋아도 얻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앞, 서울에 살 때에도 관악산, 한강, 도봉산 가까이서 살았다. 울산에서는 태화강 가까이, 부산에서는 금정산 가까이, 경주에서는 토함산 가까이, 고향 창원에서는 비음산 가까이, 순천에서는 동천 가까이, 다시 올라온 서울에서는 한강 가까이 살았다. 그러다가 올 2월 초부터 중랑천 가까이 살고 있다.

길라잡이는 어디에서 살든 산책을 즐긴다. 일을 하다가 무언가 벽에 부딪치거나,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면서 길라잡이의 눈에 비치는 나무나 풀, 꽃, 곤충, 새 등을 오래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느새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스르르 무너진다. 헝클어졌던 하루 일이 정리되면서 새롭게 할 일들이 차렷 자세로 줄을 선다.

하이얀 박꽃이 점점이 피어나는 원두막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조롱박
▲ 자연학습장 하이얀 박꽃이 점점이 피어나는 원두막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조롱박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오리, 백로가 물을 쪼고 있는 냇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자전거 전용도로와 산책로를 열심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갈색 가을빛이 머물고 있다
▲ 중랑천 풍경 오리, 백로가 물을 쪼고 있는 냇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자전거 전용도로와 산책로를 열심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갈색 가을빛이 머물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도심 풍경과 시골 풍경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

중랑천(장평교~월릉교)도 그렇게 다가왔다. 한때 하천 오염이 심하기로 악명 높았던 중랑천. 하지만 지금의 중랑천은 말끔하게 세수를 했다. 산책로, 자전거 전용도로, 자연학습장 등이 바둑판처럼 잘 정돈되어 있는 중랑천에 서면 깔끔한 도심 풍경과 고즈넉한 시골 풍경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밭이 바다로 변하다)라 했던가. 아마 이 말이야말로 지금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중랑천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길라잡이가 가까이 있는 용마산(348m)이나 아차산(285m)을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며 틈 날 때마다 중랑천을 자주 찾는 것도 중랑천의 거듭남 때문이다.

지금 중랑천에는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하이얀 박꽃이 점점이 피어나는 원두막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탐스러운 조롱박, 그 조롱박에 얼굴을 마주 대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들, 오리 백로가 물을 쪼고 있는 냇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자전거 전용도로와 산책로를 열심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갈색 가을빛이 머물고 있다.

중랑천 둑방길 곳곳에 마련된 운동기구에 붙어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양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휙 스쳐 지나가는 아낙네들, 둑방길 곳곳을 수놓고 있는 느티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벚나무 화살나무 장미 분꽃 옥잠화 쑥부쟁이 구절초 범부채 이미 꽃이 다 져버린 꽃 잔디에도 가을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고향집 뒷마당 텃밭을 떠올리게 하는 조
▲ 조 고향집 뒷마당 텃밭을 떠올리게 하는 조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앞산가새(앞산비탈) 다랑이 밭둑에 훌쭉하니 서 있었던 수수, 그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수수가 알차게 여물고 있다
▲ 수수 앞산가새(앞산비탈) 다랑이 밭둑에 훌쭉하니 서 있었던 수수, 그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수수가 알차게 여물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서원천' '샛강' '한천' '한내', 이름도 많은 중랑천

"중랑천변은 도로, 주거지역, 공장들이 가까이 있어 숲속에서 자라는 식물과는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러한 식물은 생활사가 짧고 씨를 많이 만들어 번식력이 크다. 특히 교통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식하는 귀화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어 자생식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랑천 전 구간에서 많이 자라고 있는 식물은 개망초, 돼지풀, 환삼덩쿨, 여뀌, 돌피, 좀명아주 등이다. 물고기가 살 수 있으려면 수서곤충과 같은 먹이가 있어야 하고 산란할 수 있는 수생식물들이 있어야 한다. 지금 중랑천에 있는 물고기는 붕어, 참붕어, 잉어 정도이며 물가식물이나 수서곤충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살고 있다." - 중랑구 자료 

길라잡이의 새로운 벗 중랑천(中浪川)은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산북리 불국산에서 샘솟아 의정부를 지나 남쪽으로 쭈욱 내려와 성동구 송정동에서 서쪽으로 물길을 바꾼다. 이어 사근동에 이르러 청계천과 몸을 섞으며 성수대교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길이 20km, 최대 너비 150m, 유역면적 288㎢.

중랑구 자료에 따르면 중랑천은 예로부터 도봉동 주변에서는 서원천(書院川), 상계동 주변에서는 '한강의 새끼 강'이라는 뜻으로 '샛강'이라고 불렸다. 이와 함께 한강의 위쪽에 흐르는 냇물이라는 뜻으로 '한천'(漢川) 또는 '한내'라고도 불렸으며, 서울에서 경기도 쪽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맡고 있다.

해바라기는 벌써 동그란 얼굴에 까만 씨앗을 곰보처럼 점점이 박아놓고 있다
▲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벌써 동그란 얼굴에 까만 씨앗을 곰보처럼 점점이 박아놓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조선 초 문익점(1329~1398) 선생이 붓 뚜껑 속에 씨앗을 숨겨왔다는 목화
▲ 목화 조선 초 문익점(1329~1398) 선생이 붓 뚜껑 속에 씨앗을 숨겨왔다는 목화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지금 중랑천에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길라잡이가 중랑천에서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자연학습장이다. 왜? 이곳에 가면 옛 고향의 그림자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자연학습장에 가면 까맣게 그을린 어린 날의 추억, 주인 몰래 물외(오이) 따먹다가 들켜 물외 서너 바구니 따주고 겨우 풀려났던 그 살가운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토란, 벼, 물외, 방울토마토, 토마토, 고추, 가지, 호박, 조, 수수, 목화, 들깨, 참깨, 옥수수, 땅콩, 고구마 등등이 옛 고향마을을 절로 떠오르게 하는 중랑천 자연학습장. 지금 중랑천 자연학습장에는 이미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해바라기는 벌써 동그란 얼굴에 까만 씨앗을 곰보처럼 점점이 박아놓고 있다.

고향집 뒷마당 텃밭을 떠올리게 하는 조는 노오란 씨알 알알이 박힌 얼굴이 무거워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다. 앞산가새(앞산비탈) 다랑이 밭둑에 훌쭉하니 서 있었던 수수, 그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수수가 알차게 여물고 있다. 그 가시나가 가장 좋아했던 꽃, 코스모스도 하양, 분홍, 빨강 입술을 그 가시나처럼 삐쭘히 내밀고 있다.       

조선 초 문익점(1329~1398) 선생이 붓 뚜껑 속에 씨앗을 숨겨왔다는 목화도 젖빛 속살을 은근슬쩍 내비치고 있다. 약이 바짝 오른 검붉은 고추, 그 고추 위로 슬며시 스쳐 지나가는 수건 두른 어머니 얼굴. 자줏빛 꽃을 피우며 주욱 빠진 몸매를 잎사귀에 은근슬쩍 숨기고 있는 가지. 이 모든 풍경이 고향의 그림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모든 풍경이 고향의 그림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잠자리 이 모든 풍경이 고향의 그림자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중랑천 둑방길 곳곳에 마련된 운동기구에 붙어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양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휙 스쳐 지나가는 아낙네들의 모습에도 이미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 중랑천 둑방길 산책로 중랑천 둑방길 곳곳에 마련된 운동기구에 붙어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양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휙 스쳐 지나가는 아낙네들의 모습에도 이미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노오란 꽃봉오리를 피워 올린 넝쿨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애호박. 끝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고구마넝쿨. 어릴 때 우산을 삼았던 그 커다란 잎사귀를 매단 토란. 파란 잎사귀 사이사이 노오란 꽃을 열심히 피우고 있는 땅콩. 어릴 때 입맛 없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한웅큼 따다가 조림으로 만들어 주시던 그 깻잎….

중랑천 자연학습장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농작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만치 고향이 보인다. 맨손으로 황토 파헤쳐 생고구마 캐내 냇물에 깨끗하게 씻어 바알간 껍질째 우두둑 우두둑 깨물며 주린 배를 채웠던 어린 날이 다가온다. 오곡백과 배부르게 익어가던 가을의 그 넉넉한 들판이 어른거린다.      

중랑천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중랑천 노을 중랑천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태그:#중랑천, #자연학습장, #가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