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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가 오는 27일 오후 2시 서울광장에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집회를 연다. 불교계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정부 규탄' 집회를 여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사건이다. 불교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퇴진 이외에도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요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불교계의 움직임에 놀란 정부와 한나라당은 '불심 달래기'에 골몰하고 있지만 성난 불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기껏해야 사찰 규제 완화 등의 다양한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불교계를 달래기 위해 몇 가지 떡고물을 던져주겠다는 것일뿐 이번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성난 불심, 종교 차별을 화두로 만들다

 

불교계 또한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자신들이 당한 차별을 시정해달라는 단순한 요구를 넘어서서 종교 자유와 종교 차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나아가 이에 공감하는 국민들과 함께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은 그 좋은 매개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법안 내용의 마련과 입법 투쟁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의 폭넓은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 같은 종교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부정적인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차별금지 조항과 헌법 제20조 종교의 자유 및 정교 분리 조항 등으로도 종교 차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은 포괄적인 원칙만 규정할 뿐이어서 현실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등의 하위법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렇지 않다면 차별금지법, 남녀차별금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률도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또한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종교 차별 문제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난 8월 14일 CBS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성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발표를 보면, '종교 편향적이라는 데 공감한다'는 의견이 54.1%로 '그렇지 않다'(35.5%)는 의견을 크게 앞섰다. 따라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민주당 강창일 의원을 비롯해 11명의 의원은 지난 8월 14일 공무원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종교적 차별조치나 차별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것도 물론 필요한 조치이긴 하나 최근 쟁점이 되어 온 종교 자유와 종교 차별과 관련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근대의 형성과 세속국가의 등장

 

이러한 문제의 뿌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근대 세속국가의 등장 배경부터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사회 각 부문과 영역이 종교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거시적 과정을 흔히 '세속화(secularization)'라고 칭한다. 이는 근대의 형성과 함께 자리잡기 시작한 원칙인데, 종교 전쟁과 같은 심각한 갈등을 막기 위해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되 그 한계를 분명하게 하자는 맥락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뼈대로 한 세속국가가 등장했다.

 

이러한 세속국가에서 종교는 공적 영역이 아니라 오로지 사적 영역에서만 그 존재 의의를 지닐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오직 사적 영역에 한해서이다. 만일 종교가 사적 영역을 벗어나 공적 영역으로 일탈한다면 이는 종교 자유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근대 세속국가에서 정교 분리의 원칙은 현대 사회의 정치와 종교,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기본 바탕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의 역할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치와 종교의 유착을 은폐시키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교 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침략 전쟁을 묵인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정교 분리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실제 정교 유착의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면밀히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세속국가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종교와 관련하여 중립을 유지하는 국가를 말한다. 여기서 중립이라는 것은 특정 종교의 교리나 믿음과 그에 따른 신도들의 행동에 대하여 지지 혹은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국가 혹은 정부가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행정을 펴는 것을 말한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재 이러한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세속국가가 맞나?

 

한국 또한 이러한 원칙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세속국가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원칙이 침해되는 일들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문제들은 더욱 첨예하게 등장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공직 신분을 이용하여 직간접적인 종교 활동을 하는 행위는 공권력의 사적 도용이자 헌법에 반하는 행위다.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 공직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대대적인 도시선교 사업을 추진하는 소위 '성시화(聖市化)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같은 성시화 운동이 종국에는 '성국화(聖國化) 운동'으로 나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이는 세속국가 원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정작 그런 일에 앞장서 왔다. 서울시장을 지내던 지난 2004년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 2005년 '청계천 복원은 하나님의 역사'라는 요지의 발언,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국립묘지에 이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였다는 사실 등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청와대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정무수석실 홍보기획비서관 시절 촛불집회 배후를 언급하며 '사탄의 무리'를 들먹였던 추부길 목사, 그가 물러난 다음 청와대에 들어간 뉴라이트전국연합 조직국장 출신의 박영모 목사, 청와대에 기도와 찬송가가 울려퍼지도록 하고 전 정부 부처를 복음화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한 주대준 청와대 경호처 차장 같은 기독교인들은 요주의 인물들이다.

 

사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 종교 관련 제도의 정립 과정을 살펴보면, 헌법상 종교의 자유와 정교 분리 조항이 시작부터 철저히 관철되었다고 할 수 없다. 미군정이 1945년 10월에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했고, 제1공화국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기독교는 1947년 3월부터 일요일마다 서울방송을 이용하여 기독교 복음을 전국에 전파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기독교식 기도로 시작했다. 그리고 1951년 2월에는 대통령령에 의해 군종제도를 시행했다.

 

서구와 달리 압축적이고 기형적인 근대 국가의 형성을 이룬 대한민국이기에 처음부터 세속국가의 원칙이 불철저하게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영향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측면이 있으나 이명박 정부의 집권을 전후하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같은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입김이 더욱 거세진 것이 바로 현재의 문제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도전을 막지 못하면 세속국가 대한민국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종교의 자유와 다양성 인정이 출발점

 

종교의 다양성은 타자를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하는 윤리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배타적 신앙을 고집하는 것은 이러한 윤리와 거리가 멀다. 경전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는 순간 이를 인정치 아니하는 다른 종교는 모조리 반역사적인 종교로 취급당하고 그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신화 혹은 신화적 비유로 여긴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진 않는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대착오가 오히려 경전의 의미를 협소화시키고 경전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믿는 편협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세속국가의 원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종교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집단들이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종교 다원주의가 이단이라며 연일 서슬퍼런 저주의 언어를 퍼붓는다.

 

앞서 말한 종교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배타적 신앙을 고집하는 종교인들이 득세하는 한 현실에서 세속국가 원칙은 끊임없이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종교의 자유와 다양성이 인정되고 정교 분리의 원칙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보완은 물론 모든 종교인들의 반성적 성찰과 함께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종교차별, #종교차별금지법, #기독교, #세속국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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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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