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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로 인해 고개를 숙였지만 꿋꿋한 줄기가 굴하지 않은 듯 돌멩이를 들어올리고 있다.
▲ 새싹의 힘 돌멩이로 인해 고개를 숙였지만 꿋꿋한 줄기가 굴하지 않은 듯 돌멩이를 들어올리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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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민주주의가 20년은 후퇴한 것 같은 현실을 바라보며 절망, 분노 같은 것들이 마음 속에서 자라고 있다. 경제제일주의라는 악령이 사람들 마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탓에 옳고 그름보다는 '경제성장'이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되고 있다. 그 어떤 추악함도 '경제성장'을 슬로건으로 내걸면 지고의 선이 된다.

정의를 외치고, 땀흘리며 사는 것을 낙으로 알고, 자기의 몫이 아닌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고, 더 나아가 사탄이 되고, 빨갱이로 덧칠되는 세상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초록생명의 새싹들을 바라보면 절망의 늪에 빠졌던 마음이 희망의 바다로 헤엄쳐 나간다.
▲ 새싹 초록생명의 새싹들을 바라보면 절망의 늪에 빠졌던 마음이 희망의 바다로 헤엄쳐 나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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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시민들이 물대포에 조준당해 쓰러지고, 경찰들에게 유린당하고, 150명이 넘게 연행되었는데도 방송에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올림픽 방송만 라이브도 부족해 하이라이트까지 이어진다. 공영방송의 편파방송 시비로 시청료거부운동을 벌였던 지난 날도 있었는데, 여전히 시청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며 촛불을 들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공영방송을 지키자고 하지만 촛불집회에 대해 경찰이 강경진압으로 돌아선 이후에 과연 공영방송은 촛불민심에 대해 공정하게 보도했는가? 아니면 쇠고기협상과 관련해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제대로 알리기나 한 것일까? 한미FTA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단식농성에 대해서는? 아니, 그 전의 보도는 뒤로 하고라도 촛불 100일을 맞이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공권력의 폭력으로 연행되는 현실에 대해서 침묵하는 대형언론사들의 행태는 이미 언론이길 포기한 것이 아닌가? 도대체 국민들이 뭘 지켜줘야 하는 것인지?

양비론으로 가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참에 공영방송을 정권의 시녀로 삼으려는 시도를 깨뜨린다고 해도 스스로 자정하지 않으면 공영방송이 무슨 의미일까 싶기도 하다.

애써 심은 것들보다 제 멋대로 버림받은 것에서 피어난 새싹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 새싹 애써 심은 것들보다 제 멋대로 버림받은 것에서 피어난 새싹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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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절망,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마음 속에서 하나 둘 자라기 시작하면서 무기력증이라는 것이 나를 엄습해 왔다. 아직도 인내해야 할 세월이 많은데 이미 다 소진된 것 같다. '니 맘대로 하세요'하고 무관심하게 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지경이다.

무더운 날씨까지 이어지면서 그동안 속내를 부글부글 끓이고 살아온 탓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만으로도 감사하고, 그 안에서 발견하던 수많은 기적 같은 일들을 느끼는 일조차도 심드렁해졌다. 부도덕한 정권과 무능한 정권이 나라 전체에 끼치는 해악말고도 한 개인의 삶에 끼치는 해악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력을 볼 때 새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새싹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력을 볼 때 새싹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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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종종 내 사진의 주제가 되기도 했던 새싹, 그들을 아주 오랜만에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에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돌멩이를 들어올리며 올라오는 새싹을 만났다. 이파리는 돌멩이에 눌려있었지만 줄기는 다른 것들에 비해 튼실했다.

줄기가 조금 굽더라도 돌멩이를 피해서 나왔어도 될 터인데 궂이 돌멩이에 꿋꿋하게 맞선 저 새싹의 뜻은 무엇일까? 정면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새싹에게는 있었을 터이다. 기세를 보니 아직은 돌멩이가 그를 누르고 있지만 곧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 새싹은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 몸의 몇 십배나 되는 돌멩이를 무서워하지 않고 '번쩍!' 들어올린 것이다.

"어린 새싹아, 안녕! 네 안에 희망이 있구나!"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수많은 새싹들이 손짓을 하고 있다. 분노와 절망의 씨앗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때 보이지 않던 새싹들을 다시 본다.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태그:#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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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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