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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된 지 13일로 74일째를 맞는다. 그러나 18대 국회는 아직 기본적인 원 구성도 못하고 있다.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정부 각 부처를 감시할 상임위원회 구성이 늦춰지면서 현안별 특위를 통한 변칙 운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지난 11일 원대대표회담에서 합의한 원 구성 협상 시한인 13일 낮 12시를 다시 넘겼다. 여야간 협상은 가축전염병예방법(가축법) 개정 문제에 막혀 지리멸렬한 상황이다. 언제 원구성이 이뤄질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촛불정국' 속에서 가뜩이나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정치와 국회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낳고 있다. 여야 모두 나라의 현안들을 앞장서 풀어가기는커녕 제 몸 하나 추스를 최소한의 정치력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따가운 눈총이 쏠리고 있다. 여야는 74일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한국 정치가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을 이번 원구성 협상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짚어본다. 그간 여당과 야당들, 그리고 청와대가 보여준 모습은 18대 국회의 앞날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① 거리정치 잠자는 한나라당, 길에 선 민주당

 

4월 9일 총선 이후 현재까지 국회는 파란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파란을 일으킨 주체는 국회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 정확히는 '촛불시민'들이었고, 국회는 여기에 끌려왔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5월 2일 처음 시작된 촛불집회가 전국을 강타하는 가운데 민주당도 그달 29일부터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촛불시위대의 일원으로 결합했다. 정부의 쇠고기 고시 강행선언이 원인이었다. 

 

촛불 정국 속에 153석의 '공룡' 한나라당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민주당은 시민들로부터 '기회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장외투쟁을 계속했다.

 

6월 5일로 예정됐던 18대 국회개원식은 36일이 지난 7월 11일에야 열릴 수 있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지도부를 교체한 것이 계기가 됐다.

 

두 당은 쇠고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와 가축법 특위를 만들고, 가축법 특위는 "추가협상 내용과 국민적 요구 및 국익을 고려하여 가축법을 개정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6개항에 합의해 국회 문을 열었다.

 

민주당을 국회로 끌어들여 촛불을 완전히 꺼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생각이었고, 촛불민심을 국회로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명분이었다.

 

② 한나라당 청와대가 거부하면 원내대표 협상도 원점

 

 

지난 7월 31일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의 당-청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상임위원회와 특위 위원장 배분, 장관인사청문회 개최방식 등에 대해 이뤄낸 타결을 청와대가 거부한 것이다. 상임위원회가 아니라 특위를 통해 장관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한다는 조항을 문제삼았다. 4시간의 마라톤 협상이었고, 출입기자들에게 '협상결과 브리핑'이라는 문자까지 나간 상황이었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협상장에서 청와대와 30분간 통화하면서 정치적 타결을 강조했으나 허사였다. 최대 걸림돌로 꼽히던 법사위원장 문제는 오히려 쉬운 것이었다. 청와대의 '공룡여당 지배'의 한 단면이었다.

 

'한나라당의 신주류'로 꼽히던 홍준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총에서 MB직계 의원들에게 맹공을 당했고, 급격하게 위축됐다. MB직계 의원들은 사석에서 홍 원내대표에 대해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감추지 않았는데, 이는 이 대통령의 뜻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 고참의원은 "원내대표 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다"고 예측했다.

 

청와대의 이같은 제동은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정국운영 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여의도 정치는 비효율"이라는 이 대통령의 시각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청와대는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장관을 임명했고, 이것은 국회파행 연장의 또 다른 원인이 됐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청와대에 대해 "친박연대 의원들이 들어와 한나라당 의석이 170석을 넘으면서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 아주 오만해졌다, 청와대가 국회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도 현재까지는 한국적 대통령제 아래에서의 바람직한 당-청 관계 모델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있다.

 

③ 민주당 지지부진 유야무야... 전략이 없다

 

18대 국회 초반을 평가하는 데 있어 민주당의 무기력함도 빼놓을 수 없다. 국회 개원협상을 통해 6개 특위를 만들었으나, 증인채택 문제 등에 막혀 지지부진했다.

 

강만수 장관 해임건의안을 추진하다 자유선진당이 반대하자 의석수 부족으로 해임촉구결의안으로 바꿨으나 유야무야됐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추진도 역부족이었다.

 

최근 최대 현안인 정부의 '방송 장악'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적극 나선 최문순 의원은 "방송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이 원내에서 한 일은 국회 현안질의에서 10분 발언을 한 것과 공기업 특위 회의에서 신재민 차관을 비판한 것 두 가지 뿐인데, 엄밀하게 따지면 회의 내용과 관련이 없는 발언을 한 것"이라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선명 야당으로서의 대여투쟁 전략' 부재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1일 원혜영 원내대표의 '덜컥 합의'는 이같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가축법 개정을 전제로 국회에 들어왔으나, 이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지 않은 채 사인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해임 서명을 한 날이라는 점에서 시기상으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한 의원은 "장례식장에서 팡파레 분 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다음날인 12일 의총에서 비판이 터져나왔고, 원혜영 원내대표가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정세균 대표까지도 12일 의총에 이어 13일 당 확대간부회에서 "한나라당이 가축법 개정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있다, 여당이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데 야당이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것이냐, 가축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며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서는 원 원내대표의 합의에 대해 "현재의 민주당에게 장내외 병행투쟁은 숙명일 수밖에 없는데, 온화한 성품이라는 것과 함께 원내대표라는 자리의 성격상 원 구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 같다"고 보고 있다.

 

④ '선진·창조' 교섭단체 안에서도 교섭이 안 된다

 

부분적으로는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구성한 원내교섭단체 '선진과 창조의 모임'도 국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교섭단체와의 조율에 앞서 두 당끼리의 자체조율도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 2석을 요구하는 것은 제외한다 해도 교섭단체 대표(또는 수석 부대표 모임) 회의에 선진과 창조 모임 대표 한 명이 아니라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에서 각각 대표를 내보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누가 나와도 좋으니 한 사람만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13일 오전 원내수석부대표 회담에는 김창수(자유선진당) 의원과 이용경(창조한국당) 의원이 모두 들어왔다가 이 의원이 중간에 나기기도 했다.

 

⑤ 청와대 여의도정치 안 보는 이 대통령

 

우리 제도정치의 핵심은 여전히 청와대이다.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여전히 부실하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그 유사세력이 절반을 훨씬 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국회는 더 쪼그라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가 강화될수록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장외로 나가려는 원심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정세균 대표도 "(각종 현안에 대해) 시민사회와 함께 계속 투쟁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태그:#홍준표, #원혜영, #한나라당, #민주당, #단군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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