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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다 제거됐다구유? 누가 그래요? 어유, 의항 쪽은 아직 절반 밖에 안 됐시유"
"바다가 다시 깨끗해질 때까지 우리는 뭐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유"

지난 10일과 11일, 의항해수욕장을 찾았을 때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주민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기름이 모두 제거되지 않은 데다가 주민들의 생계유지 수단이었던 어업·관광업 등 수입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옆 동네인 의항리 구름포해수욕장의 분위기와는 딴판이었다.

의항2리는 지난 12월,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의 폭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당한 지역으로, 태안 어느 지역보다 피해가 심각하다. 의항리에 남은 기름만큼, 지역 주민들의 가슴에 멍도 남아 있다.

의항해수욕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제방 옆 갯벌 밑에 아직도 많은 기름이 남아 있다.
 의항해수욕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제방 옆 갯벌 밑에 아직도 많은 기름이 남아 있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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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은 멀쩡하지만 안쪽 들어가보면

해수욕장을 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년의 빛깔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곳이 아닌 지역 안쪽에는 아직도 기름이 많이 남아 있다. 김관수 의항2리 이장은 현재 의항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곳은 어느 정도 기름이 제거됐지만, 갯벌 밑이나, 주민들만 아는 바위 틈새 구석구석엔 기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유. 의항은 아직 (기름이) 절반 정도밖에 제거가 안 된 거라고 할 수 있지유."

의항 해수욕장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갯벌만 해도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위와 돌을 조금 들춰보면 기름 냄새가 훅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검은 기름때들이 갯벌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여길 포클레인으로 뒤집고 물을 쏟아부으면 엄청난 양의 기름이 흘러나온다"며 심각성을 설명했다. 김 이장은 직접 손으로 바위를 들춰내며 기름유출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평범해 보이는 갯벌을 김관수 의항2리 이장님이 들추니, 그 아래 검은 기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평범해 보이는 갯벌을 김관수 의항2리 이장님이 들추니, 그 아래 검은 기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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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항해수욕장에서 도보로 5분 떨어져 있는 갯벌. 깨끗해보이는 돌을 들춰내면 기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의항해수욕장에서 도보로 5분 떨어져 있는 갯벌. 깨끗해보이는 돌을 들춰내면 기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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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근처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곳을 찾았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의항에서 태어나 66년간 의항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문경연(65) 씨의 안내로 얼마 전까지 문씨를 비롯한 주민 30여 명이 방제작업을 했던 곳을 방문했다.

중형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이동할 만한 비포장 산길을 따라 올라간 뒤, 또 한참을 걸어내려 간 곳에 위치한, 그야말로 '지역 주민만 아는 지역'이었다. 문씨는 "기름이 묻어 있는 바위 밑을 포클레인으로 뒤집어 보면, 그 아래 아직도 기름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씨의 설명대로 해안 절벽 근처의 바위에 미처 닦아내지 못한 기름이 까맣게 말라붙어 있다.

김 이장과 문씨는 "이 곳 외에 많은 곳에서도 방제작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8월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햇볕이 너무 뜨거운데 노인이 대다수인 지역 주민들이 방제작업을 하다가 일사병 등으로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9월이 되면 또 다시 방제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의항해수욕장 구석에 남아 있는 기름들. 여름이 되면서 기름이 바위에 말라 붙어있다.
 의항해수욕장 구석에 남아 있는 기름들. 여름이 되면서 기름이 바위에 말라 붙어있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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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작업을 아직 하지 못한 갯벌. "방제작업이 끝나지 않은 곳이 절반이나 된다"고 김관수 의항2리 이장은 말한다.
 방제작업을 아직 하지 못한 갯벌. "방제작업이 끝나지 않은 곳이 절반이나 된다"고 김관수 의항2리 이장은 말한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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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도 횟잡도 문 닫고... 공공근로만 남아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업을 주 생계수단으로 삼던 주민들 생활의 고단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피해가 덜한 태안의 다른 지역은 해수욕장도 개장하고, 조개도 캐고, 고기도 잡지만 의항2리 사람들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예년 같았으면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의항2리에 관광객은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고, 민박이나 펜션, 횟집 모두 문을 열지 못했다.

그나마 정부에서 6월 초부터 특별공공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현재 생계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다. 특별공공근로는 정부에서 긴급자금 200억원을 지원해 실시하는 것으로, 방제작업(일당 6만~7만원)이나 도로 주변에 난 풀을 베는 작업(일당 3만5천원) 등을 하는 것이다.

최근엔 더운 날씨 때문에 방제작업이 중단된 터라, 의항2리 사람들은 대부분 풀 베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후 2시경, 강한 햇볕을 피해 정자에서 쉬고 계시는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유" 
의항2리 주민들이 기름유출사고로 인해 입은 피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유" 의항2리 주민들이 기름유출사고로 인해 입은 피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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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는 바다에서 다 먹고 살았지. 굴이랑 조개 캐서 장사꾼한테 팔기도 하고, 뻘에서는 낙지랑 주꾸미도 잡고. 철되면 해삼·전복도 캐고. 근데 요새는 아무 것도 안 남아있어. 있다 해도 그걸 어떻게 먹어. 그 검은 기름띠가 바다를 둘렀던 걸 봤는데. 며칠 전엔 이 근처에서 잡은 고기 먹고 배탈난 사람도 있었대니께.  (김수산·73)"

"난 해수욕장 개장하면 민박 (운영)했었어. 작년 성수기 땐 방값이 10만 원 넘을 때도 남는 방이 없어서 예약까지 받아놨었는데, 요새는 3만 원에 내놔도 아무도 안 찾아와. 혹시나 지나가다가 샤워하는 사람 있을까 하고 샤워장 물통에 물 받아놓는데, 어제도 한 명도 안했더라고. (강태월·66)"

"방제작업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 처음엔 피로하더니 작업을 계속 할수록 눈에 뭐가 낀 것처럼 뻑뻑하고 자꾸 침침해지고, 냄새 때문에 어질어질 하고. 혈압도 높아지고,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이웃들 보면 온 몸이 간지러워지는 피부병도 일어나더라고. 몸까지 이러니 이젠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혀. (방귀남·71)"

"나이든 사람들도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도 할 일이 없어서 큰일이야. 정부에서 젊은 사람들 위해서 중소기업이라도 하나 유치해줘서 일자리 마련해 줘야 해. 근데 이 얘기, 정말 나가기는 하는겨? 기자들 맨날 찾아와서 얘기해줘도, 신문에서 본 적이 없는데. (장내옥·66)"

이런 주민들의 상황에 김 이장 역시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

"우리 같이 바다에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생계는 누가 책임진대유. 수산업이나 굴 양식장을 복원할 때까지 최소한 5년은 걸릴 텐데. 그 때까지 자식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실태조사를 하는 사람에게나 보험회사 사람에게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줘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며 주민들은 한탄했다.

한편, 태안군청 직원은 "방제 인건비 1·2월분 중 일부 지원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완전히 보상해주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해수욕장 개장할 수 있는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남은 방제작업 관리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원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기름유출사고,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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