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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경찰은 '법과 원칙'을 유난히도 강조한다.

 

최근 새로 임명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역시 "시위대가 도심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없다" 며 "법질서 파괴행위가 발생할 때는 물대포와 최루액, 색소 분사기를 동원해 끝까지 검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불법 폭력시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밤 서울시내에서 벌어진 부시 방한 반대 집회 현장에 선 경찰에겐 자신들이 그렇게 외쳐되던 '법과 원칙'은 없었다. 오히려 경찰 자신들 스스로 '법과 원칙'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법과 원칙' 강조하던 경찰, 지난 밤에 어땠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한 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시민·학생 등 약 1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부시 방한 반대 집중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경찰의 대응은 초반부터 강경했다. 문화제가 시작된 지 약 10여 분 후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청계광장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을 철저히 차단했다. 인도까지 점령한 경찰에 의해 시민들은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때부터 경찰과 시민들의 충돌은 시작됐다.

 

인도까지 점령한 경찰에게 "시민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는 만들어줘야 하는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강제연행'으로 화답했다. 인도를 경찰에 내준 시민들은 도로로 내몰렸지만 경찰은 이들 역시 순식간에 낚아채 연행해갔다.

 

시민들은 어처구니 없는 경찰에 항의했지만 경찰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시민들을 위협했고 자극했다. 손가락으로 대상자를 지목하는가 하면 교통시설물을 발로 차며 시민들을 위협했다.

 

또 경찰은 연행자에 대한 변호사의 접견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신분증을 보여주며 연행자의 접견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법에도 보장되어 변호사 접견권조차 '법과 원칙'을 강조하던 경찰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는 순간이었다.

 

연행된 한 시민이 경찰 호송버스 안에서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변호사들이 연행자 접견을 요청했지만 경찰방패에 밀려나기도 했다. 경찰이 시위자 연행과정에서 "변호사를 선임할수 있으며…"라고 알려준 '미란다 원칙'은 그저 형식이었던 것이다.

 

'미란다 원칙' 실종된 종로의 밤

 

청계광장을 빠져나온 시위대가 종각사거리 일대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광화문과 인사동 그리고 을지로와 종로 방향 4곳에서 동시에 토끼몰이식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퇴로가 모두 막힌 시위대는 황급히 인도로 피했지만 경찰은 인도까지 치고 올라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연행해갔다.

 

인권지킴이 감시단은 경찰들을 향해 인도에서 내려가줄 것을 요구하며 "해산명령을 3차 이상 내리지 않은 채 해산작전을 펼친 것은 명백한 '집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법적으로 연행된 사람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권지킴이 감시단의 '법 준수 요구'는 경찰 방패에 떠밀려 버렸다. 이것도 모자라 경찰은 시위자를 검거하겠다며 인근 한 상점에 들어가 매장을 헤집고 다니며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까지 연행해 상점 주인과 시민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법 위의 경찰들 "경찰방패 만지면 불법행위자"

 

경찰과 시위대 충돌 현장을 찍기 위해 이동하던 기자들을 향해 경찰병력들이 서서히 밀려왔다. 그리고는 프레스완장과 'PRESS'라고 선명하게 씌어있는 헬맷을 쓰고 있던 내 머리를 한 경찰이 방패로 가격했다. 사과를 요구하며 항의했지만 또다시 방패로 머리를 여러 번 가격당했다.

 

 

내 머리를 방패로 가격한 경찰의 얼굴을 촬영하려 하자 주변에 있던 동료경찰들이 카메라 렌즈를 가리며 방패로 거칠게 날 밀어냈다. 평소 사복차림으로 시위대를 촬영하던 경찰채증요원이 내 얼굴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왜 촬영을 하냐"고 항의하니 "당신이 경찰의 방패를 잡는 불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촬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찰이 영장 제시 없이 촬영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항의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나의 행동이 불법이라며 자신들의 채증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의 채증요원들은 이러한 불법 채증행위에 대해 당당하기만 했다.

 

 

난 폭행에 대한 사과를 받기는 커녕 순식간에 '불법행위자'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내가 기자신분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길을 지나가다가 억울하게 경찰방패에 머리를 가격당하고 이에 항의했다면 경찰의 엄단 대상자인 '불법행위자'가 되어 연행되었을지도 모른다.

 

시위대 잡은 경찰에게 성과급 주는 나라, 대한민국

 

<서울신문>은 6일자 조간에서 서울지방경찰청이 시위 현장에서 검거한 연행자가 불구속될 때는 1인당 2만원, 구속될 때는 1인당 5만원의 성과급을 정규 경찰 기동단원과 시위진압 '경찰관 기동대' 대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5일 밤 도심 시위현장에서는 150여명이 넘는 시위대가 경찰에 의해 연행되었다. 시위대는 물론이고 시위와는 상관없는 일반 시민들까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연행하고 개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무단침입해 매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부상치료중인 시위자를 연행해 가는 것이 진정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인지 되물어보고 싶다.

 

경찰의 진압현장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폭행하는 저 모습들이 과연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말할 수 있겠냐"며 "암울했던 80년대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제 최루탄과 화염병만 나오면 역사의 시계바늘은 80년대로 되돌아간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불법행위자는 엄단하겠다는 경찰. 하지만, '이날 시위현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저질러진 경찰의 불법행위는 누가 엄단해 줄까'하는 의문을 품은 채 경찰병력들의 구령소리만 요란하게 울리는 종로거리를 빠져나왔다.


태그:#경찰, #부시,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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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좋아 사진이 좋아... 오늘도 내일도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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