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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등굣길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 저 소리 1년을 들었건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 사이를 비집고 학교로 들어선다. 순간 시선집중! 자신을 보며 수군수군대는 여학생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밥 먹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 사람이 많은 제1 학생식당은 웬만하면 이용하지 않는다. 이 뿐 아니다.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대리출석은 꿈도 못 꾸고, 수업 시간에 질문도 빈번히 받는다. 화장실에 갈 때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면서 천천히 들어간다. 남자화장실이라도 여학생들이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여대 다니는 남학생'의 진땀나는 학교생활 모습이다.

흔히 금남 구역, 여성들만의 비밀스러운 장소였던 여대. 하지만 최근 이러한 금남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여대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2006년 성신여대는 국립의료원 간호대학(3년제)을 승계하면서 남학생 18명을 포함한 기존 재학생 134명(2학년 73명, 3학년 61명)을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여대에 다니는 남학생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각 여대에는 교환학생으로 온 남학생들이 있다. 실제로 이화여대의 경우 31명의 남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다.

성신여대 간호학과 최성진씨가 지난 08년도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모습
 성신여대 간호학과 최성진씨가 지난 08년도 입학식에서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모습
ⓒ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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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쪽지엔 '숨소리 너무 거치니 작게 쉬어 달라'

이들 남학생이 처음 여대에 다니게 되었을 때 기분은 과연 어땠을까? 성신여대가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을 흡수하면서 갑작스럽게 여대 생활을 하게 된 성신여대 최성진(24)씨. 그는 "구체적 설명 없이 과정을 숨기고 합병이 진행되어서 갑자기 성신여대로 흡수된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에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부럽다", "땡잡았다" 등 여학생들과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게 다수였다. 그러나 최씨는 "친구들이 부러워했지만, 실제로 간호학과 남학생과 성신여대 여학생의 교제는 전무하다"며 "어느 성신여대 남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중 여학생에게 쪽지를 받고 설렜지만, 알고 보니 쪽지 내용은 '숨소리가 너무 거치니 작게 쉬어 달라'라는 내용이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말해주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이화여대 경영학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한 조셉 김(Joseph Kim, 28)씨는 "한국에 오고 싶었고, 한국에 있는 자매학교가 이화여대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여자 친구를 많이 만나고 싶어서 여대를 간다고 오해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사실 처음에는 여자 친구들을 많이 사귈 줄 알고 좋아했는데, 실제로 여학생들은 쑥스러움이 많아 먼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모든 대학 행정이 여학생에 맞추어져 있는 여대. 이 곳에서 남학생들이 생활하면서 겪는 고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들은 우선 자신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씨는 "여대에 다닌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여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안의 남학생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무얼 하든 신경 쓰인다"며 "여학생들이 수상한 사람인줄 알고 신고해 경비 아저씨에 의해 학교 출입을 제지당한 한 남자 선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한 남학생은 평소 알고 지낸 여학생과 함께 수업을 들었는데 다른 학생들이 그 여학생을 가리키며 "쟤는 개념 없이 수업시간에 남자친구를 데려온다"고 수근댄 적도 있었다고.

여학생 중심으로만 되어 있는 학내 편의 시설 또한 큰 불편 사항 중 하나다. 샤워실이나 수면실 이용은 꿈도 꿀 수 없고, 화장실조차 '혹시 여학생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긴장하게 된단다. 마치 '주인집 화장실을 쓰는 기분'이란다. 실제로 성신여대에서는 남자 화장실을 스스럼없이 이용하는 여학생들 때문에 남학생들이 불편을 겪자, 남자 화장실 앞에 '여학생 절대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이화여대 교환학생 시절의 조셉 김씨(맨 오른쪽).
 지난 2005년 이화여대 교환학생 시절의 조셉 김씨(맨 오른쪽).
ⓒ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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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교수님의 관심 속 특별한 학교생활

이처럼 여대에서 남학생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불편한 점이 많은 만큼 좋은 점도 많다고 말을 이었다. 이들은 "여학생들이 자신 혼자 남자이니까 신기한지 잘해주더라"라며 "주변사람들 또한 여대를 다닌다고 하면 쉽게 기억해주어서 친해지기 쉽다"라고 말했다.

이들 남학생의 '여대 진출'에 대해 여대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홍은혜(성신여대 미디어정보 3)씨는 "여중-여고-여대를 나와 남학생들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는데 교내의 남학생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작 남학생 본인들에게는 '여대 생활'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조셉 김씨는 교환 학생 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다며 "여대 생활로 하여금 특별한 경험 속에서 좋은 사람, 모국에서의 추억을 얻었다"고 말했다. 최성진씨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시작한 여대 생활이었지만, 앞으로 남자 간호사라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만큼 미리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여대 생활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정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여대 남학생, #성신여대 간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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