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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예불이 한창이다.(8월 3일 새벽)
▲ 미황사 대웅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예불이 한창이다.(8월 3일 새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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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내린 비는 새벽에 짙은 안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황사 대웅전에서는 아침 예불이 한창이다. 저마다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고 있다. 소원을 빈다는 것은 인간 저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본능이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조용히 빠져 나와 부도암(浮屠庵) 가는 숲길로 들어선다. 숲 속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어스름한 길과 짙은 안개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분위기다. 쭉쭉 뻗은 소나무는 안개 속에서도 몸매 자랑이다. 하얀 안개와 대비된 검은 줄기는 몸매를 확연하게 대비시킨다.

안개 싸인 숲길을 따라

새벽 깨끗한 공기는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안개까지 짙게 내려앉아 마음까지 조심스럽게 한다. 머리가 말끔하게 비었다. 안개 속으로 이어진 길은 주변을 대충 보여주면서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바람이 살짝 불어온다. 나뭇잎에 매달았던 밤비를 내려놓는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옷을 파고들어 차가운 감각을 깨운다. 나무는 잎들을 비벼대면서 스산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길이 점점 깊어질수록 키 큰 나무들이 작은 빛마저 가려 더욱 어스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길이 끝나는 곳에 부도암이 자리 잡고 있다.
▲ 부도암 길이 끝나는 곳에 부도암이 자리 잡고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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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잠이 덜깬 얼굴이다.
▲ 부도암 아직 잠이 덜깬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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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마주한 부도암

숲길을 따라 걸어간 끝에는 넓은 터가 나오고 부도암이 작은 전구 하나를 켜놓은 채 흐릿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암자는 깊은 적막 속에 잠겨있다. 부도암 앞에는 커다란 비석이 귀부를 대신한 바위 위에 서있다.

조선 숙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 장유가 썼으며, 미황사 창건설화를 알려주는 미황사사적비(숙종 18년, 1692년)다. 사적비 주변으로 걸어가도 될 만큼 담을 둘렀다.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배려해 놓은 건지는 몰라도 울에 갇혀 답답하게 보인다.

부도암을 돌아들어가니 뒷마당에 커다란 수조가 있다. 수조는 바닥에 구멍이 나 있고 수도꼭지를 내어 놓고 있으나, 물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화장실 켜 놓은 전구가 주변을 엷게 밝히고 있다.

돌로된 기단 위에 부도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 안개 속에 부도전 돌로된 기단 위에 부도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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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쌓인 부도전의 운치있는 풍경
▲ 부도전 안개에 쌓인 부도전의 운치있는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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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있는 다양한 부도탑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부도암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오른쪽으로 희미한 계단이 보인다. 점점 다가갈수록 빼곡히 서있는 부도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 다가가니 짙은 회색빛의 부도탑은 어두운 밤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인기척에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있는 것 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둘러친 담 안에 일정한 양식도 키도 맞추지 않고 대충 서있는 것 같은 부도탑들은 나름대로 질서 정연하게 모여 있다. 거북이가 이고 있는 키가 큰 탑비도 있고, 둥글고 네모난 부도탑도 있다. 몸돌이 네모인 것은 사각지붕을 이고, 몸돌이 둥근 것은 팔각지붕을 이었다.

부도탑에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벽하당(碧霞堂), 설봉당(雪峰堂), 정암당(晶岩堂), 송암당(松岩堂), 백월당(白月堂) 등등. 참 아름다운 이름들이다. 이름에서도 정갈한 느낌이 배어 나온다. 스님들께서는 그렇게 살다가 가셨을 것이다.

설봉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부도는 특이하다. 사각형 몸돌에 문을 새겨 놓았는데 손잡이를 잡고 열면 열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반대편에는 귀면을 새겨 놓았으며, 팔각형 기둥에는 오리와 거북이, 그리고 게와 잉어가 싸우려고 하는 듯한 부조도 새겨 놓았다.

안개속에 서있는 부도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안개에 쌓인 부도전 안개속에 서있는 부도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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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몸돌에 팔각기둥을 세웠으며, 다양한 문양을 새겨 놓았다. 문고리는 손을 잡으면 잡힐 듯한 기분이 든다.
▲ 설봉당 부도 사각 몸돌에 팔각기둥을 세웠으며, 다양한 문양을 새겨 놓았다. 문고리는 손을 잡으면 잡힐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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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진정 피안의 세계

"사람의 나고 죽음이 주야가 바뀌는 것처럼
불변하는 이치인데 무엇이 슬프더냐."

"떠다니는 구름 온 곳이 없듯 가는 곳 자취 없네.
구름 오고감을 자세히 살펴보니 단지 하나 허공일 뿐이라."

설봉당대사(雪峰堂, 1678~1738)가 입적하면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부도탑을 만들면서 꽃도 새겨놓고 많은 동물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부도탑 옥개석에 돌옷이 피었다. 부도탑의 법력이 더욱 깊어가는 것 같다. 스님들은 부도탑으로 변신하여 또 다른 열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곳이 진정 피안의 세계가 아닐까? 이슬을 잔뜩 머금은 원추리가 노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고 알려주듯 옥개석과 보주에 돌옷을 입고 있다.
▲ 돌옷을 입은 부도 이곳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고 알려주듯 옥개석과 보주에 돌옷을 입고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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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잔뜩 머금은 원추리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 원추리 비를 잔뜩 머금은 원추리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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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미황사 부도전은 전라남도 해남군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에서 700m 정도 걸어가면 나옵니다. 미황사에서 달마산으로 올랐다가 대밭삼거리까지 능선을 타고가다 아래로 내려서면 부도전이 나오기도 합니다.



태그:#미황사, #부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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