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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일홍과 어우러진 계룡산 신원사. 호젓한 분위기가 좋다.
 목백일홍과 어우러진 계룡산 신원사. 호젓한 분위기가 좋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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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이 장난이 아니다. 말 그대로 불볕이다. 그 기세에 기가 꺾이고 만다.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도 한낮에는 고개를 숙일 정도다. 땡볕을 피하러 길을 나섰다. 계룡산 일대다. 목적지를 갑사로 정하고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신원사'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찰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목적지를 바꾼다. 갑사 이정표를 왼편으로 두고 신원사 이정표를 따라 곧장 직진을 한다. 여기도 굿당, 저기도 굿집, 굿하는 집들이 즐비하다.

순간, 어릴 적 거리의 약장사 생각이 문득 스친다. '계룡산에서 10년, 지리산에서 5년, ○○산에서 ○년….' 왜 옛날 약장사들이 계룡산을 들먹였는지 알 것 같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달리니 신원사 입구다. 여느 사찰의 입구처럼 주차장이 보인다. 일요일 오후 시간인데도 생각만큼 자동차들이 많지 않다. 계곡을 낀 음식점도 줄지어 서 있다. 사람이 많지 않은 탓인지 그리 북적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산사의 풍경과 분홍색 백일홍이 어우러져 호젓함을 더해 준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산사의 풍경과 분홍색 백일홍이 어우러져 호젓함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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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대웅전 옆에는 진분홍 백일홍이 활짝 펴 있다.
 신원사 대웅전 옆에는 진분홍 백일홍이 활짝 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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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신원사(新元寺)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摩谷寺)의 말사. 백제 말기 651년(의자왕 11) 열반종(涅槃宗)의 개조(開祖)인 보덕(普德)이 창건했다. 경내에 대웅전과 산신제단(山神祭壇)인 중악단(中嶽壇)이 있고, 5층 석탑과 함께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정도가 눈길을 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산사의 분위기가 호젓함을 먼저 선사한다. 정갈한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왼편으로 중창불사를 하고 있는 곳을 빼면 찾는 이가 많은 동학사나 갑사보다 호젓한 분위기는 오히려 더 낫다.

오른편으로 '중악단'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눈에 띈다. 안내판에서 새겨둔 곳이기에 발길이 먼저 알아본다. 가는 길이 멋스럽다. 조선시대 묘향산, 지리산과 함께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1394년에 태조 이성계가 산신제단으로 건립했으나 효종 2년(1651)에 폐지됐다가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가 재건,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건물에서 역사성이 묻어난다. 보물 제1293호로 지정돼 있다.

중악단 옆 텃밭 끝자락에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1975년 해체 복원공사를 할 때 사리구(舍利具)와 고려시대 동전이 발견돼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설명판을 보고 있는데 슬비와 예슬이가 탑돌이 행렬에 끼어 돌고 있다.

조선시대 산신제단이었던 중악단. 계룡산의 무게를 설명해 준다.
 조선시대 산신제단이었던 중악단. 계룡산의 무게를 설명해 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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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와 예슬이가 오층석탑을 돌며 탑돌이를 하고 있다.
 슬비와 예슬이가 오층석탑을 돌며 탑돌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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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대웅전 앞으로 나온다. 앞마당이 깔끔하다. 오른편으로 새하얀 꽃을 피운 목백일홍이 시선을 끈다. 붉거나 분홍색 꽃만 보다가 하얀색 백일홍을 보니 신비스럽다. 하여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모양새가 볼수록 요염하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버겁다.

대웅전 왼편으로는 분홍색 목백일홍이 정열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나무의 나이가 100세는 거뜬한 것 같다. 스님한테 물었더니 "100년도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백일홍에 관심을 보이는 중년의 관광객에 물었더니 "200∼300년은 됐을 것"이라고 한다.

두 팔을 벌려 나무기둥을 안아본다. 손과 손이 닿지 않을 정도다. 세월의 무게는 나무기둥과 가지에도 그대로 얹혀 있다. 기둥에서 넓고 깊이 파인 흔적이 영락없는 고목의 모양새다.

나뭇가지는 갈색과 담홍색을 띠고 있다. 간혹 흰색의 둥근 얼룩이 있기도 하다. 껍질도 조금은 두꺼워 보인다. 매끄러움도 덜해 보인다. 둔탁해 보이는 게 흡사 나이 든 노인 같다. 슬비와 예슬이가 손끝으로 나뭇가지를 살짝 긁어본다. 이파리가 살포시 움직인다. 틀림없는 '간지럼나무'다.

신원사에서 만난 새하얀 목백일홍. 객지에서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신원사에서 만난 새하얀 목백일홍. 객지에서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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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백일홍이 떨군 꽃잎. 나무 아래에 지천이다.
 목백일홍이 떨군 꽃잎. 나무 아래에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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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뭇가지는 수많은 꽃을 부여잡고 있다. 수령에 걸맞지 않게 강렬한 여름 태양과 정면으로 맞서기라도 하겠다는 듯 의연한 모습이다. 햇볕 따스한 봄날이나 바람 살랑살랑 부는 가을을 마다하고 한여름에 활짝 핀 게 늠름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편으로는 애틋하게도 보인다.

이 꽃은 여느 꽃처럼 며칠 피었다가 지지 않는다. 무려 100일 동안이나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피어서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는데, 백일홍은 이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만다. 그 이름처럼 무려 석 달하고도 열흘 동안이나 꽃을 피운다.

물론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백일 동안 아름답게 피어있는 건 아니다. 한 송이, 한 송이가 오래 머물지 않고 수없는 꽃이 날마다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꽃 한 송이의 수명은 짧지만 조화를 이루면서 100일 동안 번영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경이감이 든다.

나무 아래로는 분홍빛 꽃들이 바닥을 덮고 있다. 동백이 꽃잎을 떨군 그것과 닮았다. 마치 꽃이불을 펼쳐놓은 것 같다. '꽃탄자'라도 되는 양 부드럽다. 돌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꽃 하나까지도 마음속에 분홍색 물감으로 색칠을 한다.

계룡의 기암괴석과 산사의 풍경을 배경 삼아 피워낸 붉은 꽃이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꽃을 더 정열적으로 만들어준다. 그 색깔의 여운도 진하게 남는다. 바람 한점 없는 이 계절에.

슬비와 슬비엄마, 예슬이가 백년 묵은 목백일홍을 쳐다보고 있다. 발 아래로는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이 지천이다.
 슬비와 슬비엄마, 예슬이가 백년 묵은 목백일홍을 쳐다보고 있다. 발 아래로는 피었다가 떨어진 꽃잎이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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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다가 진 백일홍. 마치 '꽃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피었다가 진 백일홍. 마치 '꽃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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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의 백년 묵은 목백일홍 윗가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신원사의 백년 묵은 목백일홍 윗가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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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목백일홍, #신원사, #계룡산, #흰백일홍, #중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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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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