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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은 중국말과 달라, 우리말은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우매한 백성은 끝내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능히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누구든 쉽게 익혀 날마다 편하게 사용하게 할 따름이다.

 

위 구절이 <훈민정음> 서문에 나오는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이 구절을 다시 새기는 것은 세종임금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까닭이 백성사랑에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키기 위함이다. 지배층만을 위한 글자가 아니라 어떤 이라도 쉽게 배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려는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약 6500여 종의 언어가 있으나 이중 문자가 없는 언어가 약 30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민족은 남의 글자를 빌려 쓰거나 문맹으로 지낸다. 하지만 남의 글자를 빌려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공부를 제대로 못한 민중은 어려움 속에 살기 마련이다. 그를 안타깝게 여긴 한글운동가들이 훈민정음으로 그들 글자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리글'이란 글자로 오랫동안 세계 글자 없는 민족에게 글자를 만들어주는 운동을 해온 뉴욕주립대학교 김석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종 때에 벌써 중국말은 말할 거 없고 세계 어떤 언어도 표기할 수 있도록 만국음성기호적 문자 (Universal Script)가 창제되었다. 실지로 이때 만든 글자들은 당시 중국어 자전 홍무정운(洪武正韻)을 신숙주, 성삼문 등이 훈민정음으로 편찬한 동국정운(東國正韻-중국어의 한국어 발음) 자전에서 이미 썼다. 그러니 이제 세종대에 이미 써왔던 역사 사실을 되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김 교수의 말마따나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국음성기호적 문자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를 잘 활용하면 세상 어떤 말도 표기할 수 있다. 실제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글자는 11.172자로 정인지는 훈민정음 서문에서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학자에 따라 24자만 가지고 가능하다고 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28자만이 아닌 몇 글자를 더 만들어 보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훈민정음을 30년 동안 연구해온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장은 세종이 창제한 원래의 훈민정음 28자만 가지고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그 연구의 결실을 묶어 도서출판 한배달을 통해서 <옛글자를 사용한 21개 외국어 화화 표기 예>라는 책을 펴냈다.

 

현재 한글의 세계 공용화를 위하여 많은 학자가 외국어 표기방법에 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영어표기법, 중국어 표기법, 베트남어 표기법 등 몇 나라의 외국어표기법을 개발하기는 했을 뿐 구체적인 적용 사례를 만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펴낸 <옛 글자를 사용한 21개 외국어 회화 표기 예>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는 물론 힌디어, 미얀마어까지 무려 21개 나라말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처음 시도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참으로 크다 할 것이다.

 

이 책은 옛 글자의 음가복원, 한글의 국제 발음기호화, 그리고 문자가 없는 많은 소수민족에게 글자를 만들어줄 수 있는 바탕이 될 나라별 발음기호와 일상 회화 문장의 활용 예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지난해 <한글 창제원리와 옛 글자 살려쓰기>를 펴낸 적이 있는 지은이는 이의 후속작업을 위하여 그동안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채록한 현지인의 발음도 많이 참고하였다고 한다.

 

옛 글자를 처음 대하는 독자들은 당혹해 할 수도 있어서 지은이는 외국어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영어 발음을 이 책의 첫 장에 놓아 옛글자의 음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외국어 발음뿐 아니라 앞으로 한글 국제 발음기호화에 앞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와 모든 외국어의 잘못된 발음 교정교육과 언어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조목조목 제시해준다.

 

 

또 북녘의 컴퓨터 학자와 남녘의 컴퓨터 학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국제 학술 발표회에서 논의된 없어진 4글자의 컴퓨터자판 삽입 위치에 대한 내용도 언급하고 있다. 없어진 4자의 휴대폰 배치와 세벌식 자판과의 연결도 제시해주고 있어서 한글의 정보화, 세계화에 크 이바지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은 한글을 국제무대로 내보내기에 앞서 먼저 그들의 말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는 기능성 상품으로 개발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옛글자의 음가 복원과 옛 글자의 사용은 외국어의 표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여서 이것이 논의되지 않고는 한글 세계화를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어쩌면 한글의 무한 가능성에 대한 확인으로 세계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극찬하여 마지않는 세계 최고의 글자 한글에 날개를 달아준 작업이 아닐까? 또 지은이의 훈민정음 연구와 이 책의 발행은 세종임금의 뜻을 현대에 가장 잘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훈민정음 연구는 내 팔자

[대담] <옛글자를 사용한 21개 외국어 회화 표기 예> 지은이 반재원

- 왜 훈민정음 연구에 삶을 바치는가?

"그냥 훈민정음이 좋아서, 끌려서 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타고난 적성이라고 할까?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국어가 나한테는 제일 쉬운 과목이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글에 대한 사랑 혹은 무슨 사명감이나 애국심으로 이 연구에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왜 전공도 아닌 <훈민정음>에게 발목 잡혀서 내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미친놈 소리를 듣고 사는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또 이 연구가 처음부터 이름난 한글 학자에게 인연이 맺어졌더라면 진작 세상에 빛을 보았을 텐데 '하필 재수 없이 나 같은 비전공자한테 걸려서 <훈민정음> 너도 이 고생을 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원리와 천문학과의 관계'를 규명한 연구는 중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나의 연구내용을 평가하기에 앞서 비전공자라는 것에 아예 책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떤 목사에게 '네까짓 것이 무얼 안다고 건방지게 한글 선교하는 데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가?'하고 고압적인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또 '그 열정으로 직장 승진에나 신경 쓰지……. 쯧쯧'하는 주변의 눈빛들, 냉소와 무시와 무관심한 표정이 주위에 가득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운명처럼 나는 또 훈민정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다시 돌아보아도 내가 할 일이라곤 이것밖에는 없는 것으로 이 모든 게 팔자라는 생각이 든다."

 

- 어떤 이는 28자 외에 몇 자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8자면 모든 소리 표현이 다 가능한가?

"물론이다. 새로운 글자를 더 만들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28자는 기본이고 그 외에 세종 때 사용하던 옛 글자를 오늘에 되살려 사용하면 세상의 모든 외국어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한글의 모양을 살짝 변형한 경우,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경우, 또 전혀 다른 부호를 만드는 경우 등 최근 들어 부쩍 많은 연구물이 나오고 있어 외국어 표기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창의적인 생각은 좋지만 이미 세종이 만들어 놓은, 적지 못할 소리가 없는 천상의 악보인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본다. 그 모두가 자신의 슬기로움이 세종을 뛰어넘는다는 오만일 뿐이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논란을 멈추었으면 좋겠다."

 

- 없어진 네 글자의 음가 설명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음가를 녹음하여 독자에게 제공하면 더 좋지 않을까?

"당연하다. 지난 7월 25일 사단법인 한국어 정보학회 발표회에서 녹음된 발음으로 간단한 시범을 보여주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를 보완하여 녹음한 것을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네 글자는 그 음가를 몰라서 그렇지 현재도 모두 발음되고 있다. 예를 들면 '깊은아'는 발음이 깊고 짧게 나는 소리이며 ㅿ는 여린시읏 이지만 Design[디인]의 발음으로 대용할 수 있으며 ㆆ(된이응)은 입성으로 말(語)의 긴 발음과 말(馬)의 짧은 발음의 종성으로 쓸 수 있으며 여린 기윽 ㆁ은 콧소리에 쓸 수 있다."

 

- 하도와 중성도는 이해가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해달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도는 수성, 목성, 화성, 토성, 금성 그리고 해와 달의 운행관계를 표현한 그림으로 천구에서의 북극성과 북두칠성과의 운행 관계를 계절별로 설명한 천문도이다. 세종은 바로 이 하도라는 천문도에 바탕을 두고 중성을 만들었다는 설명을 한 것이며, 한글의 창제 원리가 천문에 바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21개국 회화를 훈민정음으로 표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미얀마어나 힌디어 등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나? 혹시 해당 언어학자들에게 도움을 받았나?

"힌디어나 체코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모로코어, 포르투칼어, 러시아어, 프랑스, 오스트리아어, 독일어 등은 여행 중에 현지인들의 발음을 많이 채록하여 참고하였다. 또 언어학자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 밖의 외국어는 외국어 강사나 그 나라 문화원의 도움을 받았고 일부 회화 문장은 시중의 회화책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 글자 없는 겨레에게 글자를 만들어주는 일은 종요로운 일이다. 하지만, 나라 차원에서 표준을 정하여 할 일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생각은?

"당연한 말이다. 나는 각 나라의 표준 표기법을 정부에서 정해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한 예로 알파벳의 R이 프랑스어에는 '흐' 발음이 섞여 있고, 루마니아어나 인도네시아어나 아랍어에서는 혀끝이 떨리는 ‘’로 발음하고 있으며 심지어 러시아어나 몽골어에서는 R자를 뒤집어서 쓰면서 ‘야’로 발음하고 있어 참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한글로 다른 나라 글자를 만들어주는 이가 통일된 안도 없이 마구 만들게 되면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또 그 나라 발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한글발음기호는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정부차원의 표기법을 만들어 그들에게 일단 제시해 주자는 뜻이다.

 

우리가 표준안을 만들고 그것을 글자로 만드는 나라에서 일부 수정해서 사용하는 일은 그 나라 국민 정서에 맡길 일이다. 그래서 각계각층의 연구내용을 분석하여 이론의 타당성을 점검해보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참고한 뒤 골라서 더 좋은 이론으로 정부의 단일 <외국어 표준 표기법>을 탄생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 글자 없는 겨레에게 글자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개인과 단체가 많다고 들었다. 실제 글자 없는 나라에 훈민정음을 이용하여 글자를 만들어 준 사례는 어느 정도인가?

"고유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 지구 상에 참 많아 중국만 해도 50여 개의 글자 없는 소수 민족이 있다고 들었고 인도네시아는 섬마다 말이 다르다. 그래서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한글로 글자를 만들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극히 일부분이다. 동티모르는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한글을 많이 보급해 성과가 나오려던 차에 한 정치인이 그쪽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해 잠시 주춤거리는 정도이다."

 

흔히 말하는 강단학자가 아닌 재야학자 반재원은 훈민정음 연구에 삶을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신념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부드러움 뿐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내공은 강한 말이 아닌 오로지 담담한 주장으로 표현할 뿐이라는 얘기였다. 이제 강단학자들도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훈민정음, #외국어, #표기, #반재원, #허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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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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