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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우렁이 좀 봐!"

"논에 고동이 사네. 우렁이 알도 참 신기하다."

 

아이들이 저마다 소리를 치며 논두렁으로 다가간다. 태어나 처음 보는 우렁이가 마냥 신기한지 아이들은 우렁이를 손으로 집어보며 연신 신기해 한다. 덩달아 부모들도 우렁이와 우렁이 알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짓는다.

 

전날 새벽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던 터라 은근히 가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창녕에 도착하니 짱짱하게 갠 날씨가 어찌 그리 쾌청한지. 하늘은 짙푸르고 길가에 핀 들꽃들에선 향내가 연신 흘러나왔다.

 

지난 7월 26일에서 7월 27일까지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우렁이 논과 구계리의 계곡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농촌체험활동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창녕군 영산면 일대는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을 하는 곳인데, 이곳 논 5천 평을 부산민주공원과 다른 시민단체가 구입하여 창녕군 농민회와 함께 통일벼를 경작하고 있었다. 관리는 창녕군 농민회가 맡아서 하는데, 일반인들이 1년에 6만 원을 내면 20kg 쌀은 집으로 보내주고, 20kg는 북녘동포에게 보내는 소중한 논이다. 이곳 일대에 부산민주공원이 회원들을 대상으로 농촌체험 행사를 개최한 것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우선 우렁이 논을 체험한 후, 구계리 농민회에서 마련해준 숙소로 이동했다. 널찍한 잔디를 낀 야외캠핑장에 서둘러 그늘막을 친 다음, 늦은 점심을 먹으며 처음 본 회원들끼리 즐거운 담소를 나누게 됐다. 아이들은 금세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농촌의 속살을 음미하고 있었다. 맑고도 시원한 공기가 마을 곳곳에서 불어오고, 푸르다 못해 시린 여름 하늘이 도시인들을 반기고 있었다.

 

구계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은 곳이다. 마치 마을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호위하듯이 산봉우리들이 빙 둘러서 있어 아늑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들녘에는 계단식 논들이 잔잔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 있고, 감나무며 들깨, 호박, 깻잎, 오이, 가지들이 논 사이의 텃밭에 심겨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손수건에 풀잎을 물들이는 체험활동과 잠자리채 만들기 체험을 가졌다. 그리고 그 잠자리채와 다슬기 확대경을 들고 마을의 아래쪽에 있는 작은 계곡으로 다슬기 체험 행사를 갔다. 확대경을 저마다 손에 들고 계곡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순진한 미소. 호기심이 뭉게뭉게 묻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 위로 오후의 햇살이 환하게 비치었다.

 

"야, 다슬기 진짜 많다. 어, 저기에 물고기도 있어. 개구리도 있네."

 

생전 처음 다슬기를 보면서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2급수 이상의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다슬기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작은 계곡은 금세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요란한 물놀이장으로 변한다. 가져온 잠자리채는 어느새 피리와 송사리를 낚는 도구로 변신하고, 투명한 페트병에 다슬기와 송사리들이 담겨진다. 나중 이 다슬기와 송사리들은 다시 물속으로 보내주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지는 즐거운 저녁식사. 주최측이 준비한 삼겹살을 숯불에 구워먹는 즉석요리가 입맛을 돋운다. 집에서는 밥도 잘 안 먹는 아이들이 어찌 그리 삼겹살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삼겹살은 어느새 동이 나고, 준비한 막걸리도 바닥을 비운다.

 

식사가 끝난 후, 부모님들과 농민회 관계자들은 농촌의 현실에 대하여 심각한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농민회 분들은 우리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까 버스 안에서 어느 농민이 한 말이 떠올랐다. 구계리로 진입하는 길에는 몇 몇 방치된 계단식 논들이 있었다. 그는 그 논들을 가리키며 생산비도 못 건지는 현실이라 계단식 논들이 점차 사라진다면서 정부의 안일한 농촌행정을 비판했다.

 

일본의 경우엔 이런 계단식 논들에서 나는 쌀을 일부러 비싼 값에 정부가 구매한다고 한다. 힘들게 만든 논에서 생산한 쌀이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란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런 개념조차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방치된 계단식 논을 내려다보니 저 논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농민들의 한숨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음날, 농촌과 시사 문제로 골든 벨 시합을 하고, 장갑을 낀 고사리 손으로 풀을 뽑기도 한 아이들. 아빠들은 낫을 들고 서툰 솜씨로 우렁이 논둑에 있는 잡초들을 베기도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포늪에 들러 창녕환경운동연합에서 파견된 해설사 선생님으로부터 우포늪의 이모저모를 설명듣기도 했다.

 

다시 부산역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탄 아이들과 부모들. 비록 잠자리는 불편하고, 벌레에게 물리는 고생도 했지만 낯모르는 이들끼리 농촌을 체험한 1박 2일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눈을 붙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농민회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 잔잔하게 떠올랐다. "저 아이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농촌의 아픔과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저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우리 농촌은 다시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이 희망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체험 활동과 봉사 활동을 부지런히 시켜준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미래도 밝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농촌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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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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