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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일어난 용인의 고시텔은 창문 몇 개가 깨져있었다.
 화재가 일어난 용인의 고시텔은 창문 몇 개가 깨져있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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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극이 발생했다. 경기도 용인시 고시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7명이 사망하였다.

고시원은 살아본 사람만이 그 비참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오래될수록 '비참함'에 적응되는 무서운 야만성이 입주자(?)에게 길러진다.

인간이 그 좁은 공간에서 생활력을 발휘하는 것은 '대단해서'가 아니라 '비참함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시원에서의 죽음은 속된 말로 개죽음이다.

고시원 화재는 언제나 이슈거리이다. 특히 관리체계에 대한 문제지적이 많다. 그따위 건물에 사람을 입주시키는 고시원 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주거지를 그렇게 취약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시원들은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 역시 있을 것이다. 

고시원을 선택하는 자에게 '안전'은 두 번째 변수

왜 그런 줄 아는가? 고시원은 '안전'의 문제로 희망자에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시원을 찾는 사람은 '가격'에 방을 맞춘다. 그래서 '안전'이란 변수는 두 번째다. 무엇보다도 보다 저렴한 것을 원하는 경제적 상황에 근거하여 고시원을 찾는다. 대한민국의 일면은 이렇게 인간을 하이에나로 만들고 있다.

처음에 말했듯이 고시원 화재의 질타는 그 문제많은 구조에 대한 탓이 먼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인간을 그러한 좁은 공간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딜레마다.

그 좁은 공간은 한국의 광기적 부동산 문화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맞이한 공간이다. 그 좁은 공간 외에는 아무도 그들에게 '방'을 주지 않는다. 원룸? 그런 것은 이미 별나라 이야기다.

상황은 간단하다. 법률이 엄격히 적용되어 고시원을 인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투자'가 의무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고시원은 지금의 가격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투자한 만큼 방값은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지금의 가격을 유지하는 곳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런 곳은 분명히 투자가 소홀한 곳이다. 즉 '죽을 확률'이 상승할 여러 제반 조건을 갖춘 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곳에 간다. 왜냐하면 '가격'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이렇게 '주거의 만족'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고시원에 가야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내게 필요했던 건 19만원짜리 잠잘 방

나도 그랬다. 그 때는 단지 월19만원에 입주를 허용해줄 공간만 있으면 됐다. 그리하여 2년을 고시원에서 살았다(2003년 6월~2005년 5월).

아직도 고시원을 고시공부와 관련된 장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서울에서 고시원은 오래 전부터 주거 대용으로 존재해왔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집을 구할 상황이 아니었다. 서울에 원룸 전세 가격은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부담되는 가격이다.

물론 월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소 보증금 500(월 40만원)만원, 1000(월 30만원)만원을 요구하는 상황이다(이건 아주 착한 가격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원룸가격도 무한대다). 등록금도 부담되는 판국에 어떻게 이러한 지출을 생각 하겠느나.

고민 끝에 아르바이트 비용을 계산하면서 월 20만원까지를 주거에 대한 최대지출 비용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온갖 자료를 긁어모으고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15만원짜리 고시원도 존재했다. 그 가격부터 방값을 상향 조절하면서 고시원을 관찰하였다.

15만~17만원짜리 고시원은 가격값을 했다. 모든 게 부실했다. 출입의 안전성부터 화장실과 부엌에 청결은 물론 실제 방 안의 비품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가격에는 맞춤 제공이나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에 대한 만족을 감수하고 그런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 공간은 그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매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는 것이 급한 사람에게는 이런 것도 참 다행이다.

월 19만원짜리 창문없는 지하고시원을 구했다. 그리고 24개월을 살았다. 다행히 죽지 않았다. 전적으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난 24개월 동안 '여기서 불이 나면 아주 위험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간혹 하긴 하였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는 않았다. 아니 찾을 생각이 없었다. 내 걱정을 완화해줄 소방시스템 완벽한 고시원에서 최소 30만원 내외의 방값을 지불할 능력이 나에겐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겨울, 전기장판 깔고 전기히터도 샀다

더 큰 문제는 역시 놀라운 인간의 적응력이다. 그러한 위험한 구조를 위험스럽지 않게 몸에 적응시킨다. 안전에 무관심한 타인에게 처음에는 반감을 보이다가 곧 "왜 나만 바보같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전열기구 사용을 절대 금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전기세도 따로 납부하지 않는 이곳에서 왜 나만 그렇게 절약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두 번째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깔고 전기히터도 장만했다. 그렇게 안전불감증은 가속화된다.

고시원은 이런 곳이다. 죽을 확률이 높은 곳에서 그 확률을 확인시키는 작업을 계속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고시원에 대한 원망을 하기는 싫다. 어디를 보아도 화재에 대비한 투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난 그 고시원이 간혹 그립기까지 한다.

왜냐고? 그 고시원은 아름다운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나에게 보금자리를 합법적으로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고 열악해도 절대 간섭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그 고시원이 19만원이라는 돈에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때 오직 잘 수 있는 곳만이 필요했다. 다른 이유는 필요없고 오직 19만원짜리 방이 필요했다.

나는 왜 그렇게 절박했을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왜 주거의 기본을 확인할 생각보다 내 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는 공간만 그렇게 애타게 찾았단 말인가?

고시원 쪽방 찾는 사람들 양산하는 사회의 문제

고시원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 대한민국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여기 뿐이었던가.
▲ 고시원 화재 일지 고시원 외에는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 대한민국에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여기 뿐이었던가.
ⓒ 한겨레 보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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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이다. 고시원의 화재. 무서운 일이다. 그런 고시원 당장 정신차려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고시원이라는 건물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시원의 쪽방 한 공간을 필요로하는 사람이 계속 양산되는 이 사회의 문제이다.

왜 그러한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 어항같은 고시원을, 그래서 불이라도 나면 큰일날 것 같은 바로 그 공간을 원하는 사람이 왜 존재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동의할 사람만 동의하겠지만, 경험한 사람만 느끼겠지만 서울의 부동산은 미쳐있다. 그 미친 풍토는 결국 주거의 안전성을 배제하고 단지 19만원에 자신을 입주시켜 준다면 어떤 곳이라도 상관하지 않을 하이에나를 만들어낸다. 또 다른 죽음은 이렇게 대기중이다.


태그:#고시원, #고시원화재, #고시원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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