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겐 사귄지 6개월 된 여자친구가 있다. 올해 2월 10일부터 사귀게 됐는데, 이는 전역한지 5일이 됐을 때다. (참고로 전역하자마자 여자친구가 생기게 된 나를 보고 친구들은 '능력있다'고 표현하곤 했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여자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당시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복무 중에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면서부터는 '연애'와 '사랑'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는 내가 그녀를 정말 사랑해서라기보다는 한 때 만났던 사람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주는 단절감 때문이었다. 내 나이가 이십대 후반의 결혼 적령기였다면 담담히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22살에 내 주변에 결혼을 하는 친구들은 찾기 어려웠고, 그 대상이 과거 내 여자친구란 사실은 좀 처럼 수용하기 힘들었다.

 

"아화화화화화홧하!" 웃음소리에 끌리다

 

아는 누나를 통해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웃음소리였다. 연예인 현영의 비음보다 한 옥타브 더 높은 그녀의 웃음소리는 매력적이었다(그러나 이것은 내숭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기상천외한 웃음소리 외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음담패설을 하거나 나의 하나도 재미없는 농담에 웃는 그녀에게 끌렸다. 결국, 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그녀와의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같은 학교 대학원생인 그녀는 나보다 2살이 많다(그녀의 대학원 친구들은 그녀를 보고 '능력있다'고 표현한다). 그녀는 전역한 지 한 달 만에 복학해 어리둥절한 나를 잘 이끌어줬다.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만 알았다. 여자친구는 나도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 부담 등을 따뜻하게 감싸줬다.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고, 연상이라 그런지 내 부족한 점들을 잘 이해해주고 일상을 챙겨주는 모습에 난 행복했다.

 

특히, 나는 경영학도임에도 불구하고 경영학에 아무런 관심과 흥미가 없는 언론인 지망학생인 관계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 나를 본 그녀는 "너는 올해 전역해서 아직 시간도 많고 방학 때 이용해서 경험도 쌓고 그러면 잘 할 수 있을거야"라며 용기를 줬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합격'이 화근이 되다

 

한 학기가 마무리 될 즈음, 여러 언론사에서 인턴 모집 공고가 떴다. 전역 후 첫 방학이기도 하고, 지난 학기 경영학 숫자 놀음에 지친 내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 넣고 싶었다. 그녀의 응원도 내게 자신감을 줬다. 군대 시절, 내 학보사 동기 아무개양이 <조선일보> 인턴을 했을 때 신문사의 성향과 논조를 떠나 상당히 부러워했던 기억도 났다(전역하면 나도 인턴기자 할 것이라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조선일보> 인턴에 지원서를 보냈다.

 

이게 웬일인가. 나는 1차전형에 합격했다. 나 뿐 아니라 여자친구도 뛸 듯 기뻐했다. 그녀는 면접 당일 날, 나의 긴장하는 모습이 걱정됐는지 면접장까지 따라와 내 순서가 끝날 때까지 같이 자리를 지켜줬다. 결과는 불합격. 그러나 나의 진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는 그녀를 보며 이번 기회가 끝이 아니며, 언제라도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몇 번의 타 언론사 인턴 전형 탈락 끝에 나는 <오마이뉴스>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기세를 이어 최종합격하게 된 행운을 안았다.

 

"○○야! 나 됐어! 오마이뉴스 인턴!"

"어… 그래 축하해."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축하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토록 나의 진로와 앞길에 관심을 가져주고, <조선일보> 인턴 면접장까지 따라와 줬던 그녀의 눈빛엔 일말의 불안이 스쳤다. 떨떠름한 말도 거슬렸다.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불안'과 '떨떠름'이 어울리는 순간이 아닌지라, 나는 애써 그녀의 눈빛과 말투를 무시하며 합격의 기쁨을 즐겼다.

 

그리고 수원에 사는 나는 매일 같이 출근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들기에 인턴기간 동안 지낼 고시원을 잡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도 그녀는 내가 지내기에 적당한 고시원을 추천해줬고, 지금 나는 그 곳에서 지낸다.

 

인턴기자 2주 만에 찾아온 위기...도대체 왜?

 

 
현재까지 <오마이뉴스> 인턴생활 3주차. 1주차에는 취재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2주차부터 본격적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학기동안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 지친 내게 <오마이뉴스> 인턴생활은 오아시스였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배우는 것, 느끼는 것도 많다. 그럼 내 여자친구는?

 

인턴기간 동안 여자친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너는) <오마이뉴스>로 꺼져라"였다. 공공연히 "<오마이뉴스>와 오연호 대표를 저주한다"고 말했다.

 

물론, 연인 관계에 있어 상대방의 부재는 남겨진 본인에게는 심리적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점은 인정한다. 더구나 그녀와 나는 지난 한 학기 내내 붙어있었으니 갑자기 떨어지는 바람에 만남의 횟수가 현저히 줄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타 언론사 인턴 면접현장에 따라올만큼 높은 관심과 더불어 내가 인턴기자가 되길 바라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지난 2주 동안 몸무게 3kg이 빠졌다. 나의 부재가 그녀의 몸무게까지 빠지게 할 줄은 몰랐다. 취재 중간에 짬 날 때 전화를 하면 들려오던 "어", "그래", "수고해" 등의 차가운 단답형 대답들. 더구나 얼마 전엔 그녀의 미니홈피에 함께 찍은 사진이 저장돼 있는 사진첩 메뉴가 없어졌다. 다정한 말을 나눴던 '일촌평'의 글들도 삭제됐다. 서운했다.

 

노래가사와 딱 들어맞는 그녀의 모습에 '뿔나다'

 

 
 
가수 김동률의 노래 '사랑하지 않으니까요'의 가사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마지 못해 대꾸를 하고, 딴 생각에 마냥 잠겨 있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와 '···몇 번 씩이나 이유없이 한숨을 쉬고, 어색하게 웃음을 짓고 늘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온라인 상의 변화와 더불어 그녀는 가사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변해버렸다. 주말에 수원에 내려가 만나도 그녀는 말이 없었다. 재잘재잘 활발했던 그녀였는데. 내가 인턴이 되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앞으로의 일정, 나의 계획을 신나게 말해도 그녀는 한 귀로 흘리고 듣지 않으려 했다.

 

나는 화가 났다. 떨어져 지낸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한단 말인가? 내가 지금 서울에 놀러 갔나? 인턴기자로서 모범적으로 근무하겠다고 다짐하며 고시원까지 잡은 마당에 여자친구가 내게 이렇게 냉랭할 수 있다니. 더구나 나보다 2살 더 많으면서 고작 얼마 보지 못한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되돌아본 그녀와의 시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

 

티격태격하며 계속 힘 없고 차가운 그녀의 태도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보고 싶다고 해서 만나면 냉랭하고, 만나지 않으면 섭섭해하는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인턴 2주차, 취재 중에 문득 휴대폰을 보니 여자친구의 문자가 와 있었다.

 

'바빠?'

 

나는 실제로 바빴다. 답장을 하지 못한 채 취재에 열중했다. 취재가 끝나고 고시원에 들어와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나는 그녀에게 여태껏 답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자가 온지 5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휴대폰을 보니 '중복메시지 : '바빠?''가 아직도 내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순간 '바빠?'라는 두 글자의 문자에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다. 이 두 글자 안에 그 동안 그녀의 외로움과 나에 대한 아쉬움, 갑작스레 홀로 남겨진 이의 서러움이 모두 담겨있는 듯 했다. 서둘러 전화했다.

 

"어… 문자 이제 봤어. 미안해"

"응. 그래 수고해"

"응…."

 

또 다시 그냥 그렇게 단답형으로 끊어진 통화.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녀와 나는 행복했는데 왜 이렇게 됐지. 나는 지난 2주간과 그녀와 함께 했던 지난 학기를 되돌아 봤다.

 

1. 인턴기자가 되고 난 뒤 그녀는 분명히 변했다. 왜?

2. 그녀는 애도 아니고 어엿한 스물여섯의 성인 여성이다. 그리고 단순히 많이 못 본다고 삐질 그녀도 아니다. 그런데 왜?

3. 그녀는 진심으로 내가 언론사 인턴에 합격하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되고 나니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내가 예상했던 반응은 : '인턴 됐으니 열심히 하길 바래!'라든가 '힘내, 파이팅!' 정도 였다)

4. 나는 최대한 그녀를 배려해 짬짬이 전화나 문자로 내 일과를 보고 했다. 갑자기 바빠졌다고 연락을 뜸하게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나가던 중에 무심코 본 신문에는 이명박 정부의 국민과의 소통불능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참, 대통령 갈수록 너무하네. 촛불 든 시민을 무시하면 안 되지..암...응? 소통?.....그래! 소통!

 

소통 없는 일방통행은 연애도 힘들게 한다!

 

문제는 바로 '소통'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같잖은 이유도 '소통' 앞에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그녀가 내게 왜 이러는지 생각하기에 앞서 나는 먼저 이 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도 들어보지 않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무시했다. 당연히 인턴에 합격했으니 나는 곧죽어도 7월 14일 오전 10시에 상암동으로 출근해야 했다. 또한 나는 수원에 사니까 원활한 출·퇴근을 위해 고시원을 알아보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모든 것이 '인턴합격자'인 내게는 당연했다. 하지만 '인턴합격자를 남자친구로 둔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자신을 배제한 채 일사천리로 다른 세계로 진입하려는 내가 불안했을 것이다. 합격했을 때 기뻐 좋아하던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의 뒤에는 바로 이런 감정이 숨어 이었다.

 

뒤돌아보면, 그녀는 지난 학기 복학한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왔다. 석사 입장에서 두 살 어린 학부생을 만나면서 가르쳐야 할 것도 많았다. 책가방을 메는 것 조차 낯설었던 내게 하나하나 꼼꼼히 조언을 해왔다. 나와 맞지 않는 학과 공부로 힘들어할 때 그녀는 곁에서 "주어진 공부에 열심히 하면 다 도움이 될 거야"하며 "방학 때 언론사 인턴 같은 거 지원해봐" 할 때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그 마음은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할게'의 이음동의어였다. 그러나 합격 이후의 내 모습은 그저 결과에 집착해 앞으로의 현실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나를 바라봤던 그녀의 마음을 팽개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오마이뉴스 인턴 합격 후 그녀와 최소한의 절차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 이 말은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그녀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성의와 배려를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 날 위해 여러 가지 신경써줘서 고마워"라든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시원에서 살아야 되는데, 떨어져 지내는 만큼 열심히 할게"라는 예의 상의 말 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심경을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고, 소통하려 들지 않았다. 7월 14일 이후로 난 일방통행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섭섭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에게 '제발 우리 말 좀 듣고 정책을 결정할 때 의견을 구하라'며 촛불을 든 것처럼, 그녀는 촛불만 안 들었지 내게 항의를 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단순히 '여자친구로서의 섭섭함'으로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여자친구여, 미안하오!

 

인턴기간 총 6주 중 3주차에 이르렀다. 그래도 다행이다. 뒤늦게라도 연인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반성하는 의미에서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OO야! 그 동안 내가 내 일만 생각하다보니 네 마음을 토닥이는데 소홀했구나. 그 동안 속상했지? 갑자기 바빠진 나를 보며 얼마나 외로웠니? 한 마디 인사치레조차 하지 않은 채...나는 그게 널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착각이었어. 지난학기, 복학하고 외롭고 힘들 때 함께 있어줬던 너. 앞으로는 MB처럼 독단적인 남자친구가 되지 않을게. 좋은 기사로 네게 보답할게. 고마워. 사랑한다." 

 

덧붙이는 글 | 김정욱 기자는 <오마이뉴스> 제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김정욱, #연애, #인턴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