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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만나는 바닷가 모래언덕에 핀 풀꽃들
 세밀화로 만나는 바닷가 모래언덕에 핀 풀꽃들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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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여름이 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났거나 계획 중이겠지요. 산도 좋고 얼음장 같은 계곡도 좋지만, 바닷가만큼 마음 들뜨는 데가 또 있을까요?

물이 깊고 찬 동해안이 젊은이들의 바다라면, 서해안은 아이들의 바다입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갯벌에서 소라와 고둥을 따고 발빠른 게도 잡는 잔재미를 주는 서해안의 얕은 바닷가는 아이들의 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삼성 기름 재앙이 서해안 태안 앞바다를 오염시켰을 때 전국 각지에서 이어진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합니다. 유출된 기름을 초등학생들까지 쭈그리고 앉아 바닷가 돌을 헌 옷으로 닦아내던 광경은 사고를 낸 당사자들이 보여준 성의 없는 태도와 변명과 대조를 이뤘습니다.

반 년이 지난 지금, 방송을 통해 본 태안의 모습은 두 얼굴이 교차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정도 회복을 했다는 자연과 공황 장애를 보이거나 생계를 걱정하는 현지 주민들의 신음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등장합니다.

태안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는 모래언덕이 있습니다. 인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말없이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척박한 세상에서 버티고 견디는 지혜를 들려줍니다.

모래언덕에 비가 내리다.
 모래언덕에 비가 내리다.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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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툭! 굵은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듭니다.
바람에 날린 바닷가 모래가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신두리 모래언덕.
바람 잘 날 없고, 모래땅은 메마르고,
낮에는 뜨겁고, 저녁에는 추운 곳입니다.
그 어려움을 견딘 풀만이 이곳에 자리한 것이지요.

식물의 경이로움은 햇빛조차 들지 않는 울창한 원시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바닷가의 모래언덕에 핀 풀꽃들이야 바다의 탁트인 수평선 앞에서 묻히기 쉬운 연약한 이미지들입니다만, 키를 낮춰 세밀하게 관찰한 이 책 <태안 신두리 모래언덕에 핀 꽃>(김천일 지음, 보림 펴냄)을 보면 눈에 담지 않고 지나쳐간 무심한 발걸음들이 미안해집니다.

바다는 찾아오는 이들이 반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쓰레기가 남습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시라'는 말이 필요한 그림입니다.
 바다는 찾아오는 이들이 반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훑고 지나간 자리마다 쓰레기가 남습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시라'는 말이 필요한 그림입니다.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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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면 모래언덕은 시끄러워집니다.
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무심고 밟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풀들은 한바탕 몸살을 앓게 됩니다.

몸살을 앓는 바닷가 모래언덕에는 쓰레기 봉투와 매립용 봉투에 넣지도 않은 채 방치한 검은 비닐봉지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절집 화장실에 써 있던 문구가 떠오릅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습지에 이렇게 많은 생명이 산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습지에 이렇게 많은 생명이 산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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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회가 되어 태안 신두리 모래언덕처럼 낮은 풀꽃들이 사는 바닷가에 갈 일이 있다면 일회용 음료수 병이나 쓰레기가 생길 게 뻔한 간식 대신 아이들 손에 버겁지 않은 작은 스케치 북과 물이 닿으면 색이 번지는 색연필 몇 자루 챙겨보면 어떨까요?

잘 그리든 못 그리든 눈에 들어온 갯완두나 모래지치, 표지에 등장한 갯메꽃 등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풀꽃들을 직접 그려보면 기억이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몰려오고,
바닷가 모래가 날리고 쌓이고,
눈에 들어오는 건, 다시 모래뿐입니다

힘없이 무너져 내린 모래언덕에는
얽히고설킨 뿌리가 드러납니다.
뿌리의 모습은, 다음 생명을 키워 내려고
모래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는 것 같습니다.

태안 신두리 모래언덕은 오랜 세월 바닷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서 이루어진 야트마한 언덕입니다. 너비 500~1300m로 바닷가를 따라 3.4km 이어진 이곳 남쪽에는 해수욕장과 펜션 단지가 들어서 있고, 전체의 3분의 1정도인 북쪽 지역이 2001년부터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고 합니다. 모래언덕 뒤쪽, 4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작은 연못, 두웅습지가 있는데 이곳 역시 2002년부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신두리 언덕은 바람이 많고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크고, 물이 부족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풀들은 이곳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가 작거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잎이 두껍거나, 솜털이 달려있거나 꽃이 작거나 뿌리줄기를 모래 깊숙이 뻗어 무리를 짓기도 한다네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버텨준 풀과 꽃들은 풀벌레와 파충류,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생명을 움트게 하는 터전이 되어 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태안 신두리 모래언덕을 소재로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보면 좋겠습니다. 차분한 세밀화 보시면서 어른들도 생태계의 보고 갯벌과 억척스럽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래언덕에 핀 꽃들을 한 번 더 눈여겨 보면 좋겠습니다.


태안 신두리 모래언덕에 핀 꽃

김천일 지음, 보림(2008)


태그:#태안, #세밀화, #신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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