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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일곱 번째 사진잔치 2 : 그동안 여섯 번이나 사진잔치를 하면서 놓친 대목이 많다. 나는 내 사진을 뽑아서 사진잔치를 하면서 '남이 보기에 괜찮다' 싶은 사진만 골라 왔다. 내가 헌책방을 찍는 흐름과 손길과 눈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 본 헌책방 흐름이라면, 헌책방이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헌책방마다 문을 열고 꾸리고 닫는 때와 곳에 맞게 내가 그곳에 맞추어서 찍었다. 그런데 정작 내 사진잔치 여섯 차례에서는 그 흐름과 눈길과 손길이 제대로 못 담겼다. 참 바보 같은 짓만 한 셈이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한때는 바보처럼 굴며 살 수도 있고, 바보처럼 살던 지난날을 느꼈으면 이제는 바보처럼 안 살면 되지 뭐.

 

 

[53]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1 : 사진은 "사람을 찍은 사진"과 "사람이 없이 찍은 사진"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엣것을 '사람사진'이라 하고 뒤엣것을 '풍경사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어요. 이때 어떤 사람이 찍은 사람사진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찍은 사람사진에는 아무 냄새도 빛깔도 없곤 하더군요. 사진에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사람이 아닌 풍경으로만 사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구경꾼으로.

 

어떤 사람이 찍은 풍경사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거나 나오지 않으나, 참 구수하고 빛접으며 살갑기까지 합니다.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그 풍경에는 우리들이 부대끼고 복닥이며 어울리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람을 찍은 사람사진이지만 사람 냄새가 없는 사진이 있고, 풍경만을 찍은 풍경사진인데도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사진이 있구나 싶어요.

 

 

[54]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2 : 사진책을 볼 때 처음에는 사람이 담긴 사진책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담긴 사람사진책 가운데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들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구나 싶은 책이 하나둘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풍경만을 담은 어느 사진책을 보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왜지? 뭘까? 하고 한참 생각을 했으나 아무런 실마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분이 쓰던 낡은 안경을 만지작거려 보고 시계도 만지작거려 보고 원고지와 다 쓴 볼펜을 만지작거리게 되었습니다.

 

아하, 사람은 떠나고 없으나 그 사람이 남긴 자취와 자국이 이렇게 짙게 남아 있군요. 이 자취와 자국을 언제나 곁에서 따뜻하고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사람을 찍은 사진과 견줄 수 없도록 따뜻하고 그윽한 냄새를 풍길 수 있지 않으려나. 그렇지만 사람을 아무리 대놓고 크게 담고 많이 집어넣는 사진이라고 해도, 그저 멀거니 팔짱끼듯 하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었다면, 이 사람사진은 한낱 풍경조차 아닌, 소모품이 아닐까 싶고. 배경도 아니요 정물마저도 아닌, '작가 이름 하나 높이려고 끼워넣은 물건'이라고 할까요. 사람사진을 찍을 때 꼭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찍을 까닭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풍경사진을 찍으면서 굳이 사람이 안 들어가도록 찍을 까닭이 없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55] 갖은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찍은 사진 : 갖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겨내면서 찍은 사진이라고 해서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거나 반갑거나 볼 만한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무 힘든 일 없이 찍은 사진이 외려 참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거나 반갑거나 볼 만한 사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즐길 수 있는 마음, 사진 하나에 고이 담으려는 뜻을 어떻게 다스리려 하느냐는 몸가짐 때문일까요. 사진을 즐기는 마음과 사진 하나 찍어내는 기쁨을 먼저 추스르지 않으면서 그저 죽을 고생만 신나게 하면, 오로지 고생만 남을 뿐 사진은 안 남습니다. 홀가분하게 놀면서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기 든 자기 마음결을 알뜰히 다독일 수 있다면, 얼핏 보기에는 가벼움만 느낄 테지만 지긋이 들여다보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사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56] 헌책방에서 사진 찍기 : 헌책방이라면 어느 곳이든 조그마한 걸상 하나, 오래 묵은(헌책방 나이만큼) 사다리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헌책방이라 해도. 이 걸상이나 사다리에 올라가서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셔요. 새롭고 놀라운 세상을 만나고 싶으시면.

 

 

[57] 사진기 안 들고 사진 안 찍기 : 내가 좋아서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좋으니 밥을 먹습니다. 내가 좋으니 아리따운 아가씨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싶고, 내가 좋으니 아무 데나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습니다. 내가 좋으니 글을 씁니다. 내가 좋으니 아이들하고 장난도 치고, 내가 좋으니 마음에 드는 책을 거리낌없이 사요. 내가 좋으니 그림도 끄적거려 보고, 내가 좋으니 사진도 찍습니다. 내가 좋기 때문에 필름에 헌책방 모습을 담아 보는데, 필름에 안 담는 모습도 많습니다.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도 쓰지만, 굳이 글로 안 쓰는 이야기가 더 많아요. 꼭 글로 남겨야 하고, 반드시 사진으로 새겨야 하지는 않거든요. 내 눈에, 내 머리에, 내 마음에, 내 가슴에, 내 손과 발에 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눈과 머리와 마음과 가슴과 손과 발에만 담는 헌책방 이야기와 모습이 더 마음에 들고 즐겁습니다. 역사에 남기려는 사진 찍기가 아니요, 내 생각을 남들한테 알리고 발자취니 적바림이니 남기려고 쓰는 글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역사에 남는 사진을 찍지 않아요.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함께 즐기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따라가는 사진이 아니라, 자기한테 가장 즐거울 보람 하나, 좋아할 만한 꿈 하나를 찾는 사진입니다.

 

 

[58] 사진을 찍지 않아도 : 사진을 찍지 않아도 사진기는 늘 들고 다닌다. 하나가 아닌 두 대나 석 대를. 다른 일이 없어서 사진기를 집에 놓고 나올 수 있으나 굳이 들고 나온다. 무겁다고 느낄 만한 장비를 어깨에 메지 않으면 몸이야 가벼울 테고 술 마시다가 자칫 잃어버리지 않을 테며, 책을 읽다가 버스나 전철에 놓고 내릴 일도 없겠지.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찍어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나는 사건이나 사고를 찍는 사람이 아닌 터라 갑자기 땅이 꺼지든 하늘이 무너지든 비행기가 고꾸라지든 배가 잠기든, 이런 모습을 딱히 사진으로 찍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언제 어느 때에 뜻하지 않던 헌책방을 만나거나 찾아가게 될는지 모를 일이요, 사람을 만날지 모를 일이다. 늘 들고 다니는 사진기는 적금이라고 할까? 여느 때엔 쓸 일이 없어서 은행에 묵혀 두고 있는 돈 같은. 또는 안 쓰고 꽁꽁 감쳐 둔 돈. 비상금?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찍기, #사진기, #사진,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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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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