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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째 출항하지 못하고 있는 선박들, 수십 번 진흙을 뒤엎어야 나오는 모시조개, 말라가는 갯벌을 뒤덮은 염생식물, 태양에 노출된 구멍이 쉽게 마르지 못하도록 진흙을 둥글려 입구를 막아놓은 갯지렁이. 막힌 바닷길을 붙잡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갯벌 생물과 차마 고향을 떠나지 못한 어민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곳, 이곳은 새만금.

주용기 공동집행위원장 뒤로 붉은 염생식물 군락이 펼쳐져 있다.
▲ 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 주용기 공동집행위원장 주용기 공동집행위원장 뒤로 붉은 염생식물 군락이 펼쳐져 있다.
ⓒ 이셋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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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새만금생명평화전북연대 주용기 공동집행위원장을 따라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 마을에서 하제마을까지 새만금 갯벌 현장 답사를 떠났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2년, 이제 관광객보다 부동산 업자들이 더 자주 찾는다는 새만금은 내가 꼭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당일 오후 2시, 나와 주용기 위원장은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역에서 만났다. 우리는 팔마광장 버스정류장에서 1번 시내버스를 타고 남수라 마을로 향했다.

붙임성 좋은 주 위원장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앞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새만금 얘기가 나오자 아주머니의 하소연이 쏟아진다.

"보상? 암것도 아니여. 막고 나서 물이 안빠지니께 백합도 동죽도 안 잽혀. 물질을 못하니까 몸만 아프다니까."

아주머니는 건강한 갯벌을 '원금은 두고 이자만 받아가는 은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갯벌은 물막이 공사와 함께 패류가 급격히 줄면서 이자는커녕 원금 챙기기도 힘들게 되었다.

오후2시 40분, 버스가 남수라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빨간 모자를 쓴 할아버지 두 분이 보였다. 모자를 쓰고 계신 마을어른들은 농촌공사에서 생계대책의 일환으로 제공하는 일을 하는 잡역부였다.

새만금 사업단의 지역사회 지원팀을 맡고 있는 정동환씨는 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잡역은 상시와 한시로 나뉜다고 했다. 정씨는 "상시업무의 경우 공유수면 환경감시, 방조제 감시 등의 업무를 격일로 맡아 하고 있으며 한달에 세금을 공제한 79만 7천원 정도가 임금으로 지급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시 업무는 쓰레기 청소, 잡초·잡목 제거 등으로, '어민협의회의'에서 자발적 지역주민 추천에 의해 진행되며 하루 일당은 5만5천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제·부안·군산을 포함해 현재 상시 일자리를 갖고 있는 주민은 151명에 불과하다. 한시 일자리 역시 비정기적·한정적이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일거리를 두고 자주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현재 한국농촌공사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는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대책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황금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다 비릿한 냄새에 멈춰 섰다. 작업장에서 갓 잡아온 조개를 선별 중이었다. 조개가 얼마나 잡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박아무개씨는 "이제 앞밭에서는 알이 없다. 이건 모두 여기 사장님이 배타고 방조제 안쪽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잡아온 건데 요즘은 이마저도 수온이 올라가 양이 줄었다"며 "황금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고 탄식했다. 과거 그레를 이용해 갯벌 바닥을 긁는 '그레질'을 하던 그들은 이제 일당 2~3만원의 품팔이로 하루를 먹고 살아야 한다.

아주머니들이 캐낸 모시조개를 자전거에 싣고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아침부터 8시간 동안 잡은 조개는 광주리 하나를 다 채우지 못했다.
 아주머니들이 캐낸 모시조개를 자전거에 싣고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 아침부터 8시간 동안 잡은 조개는 광주리 하나를 다 채우지 못했다.
ⓒ 이셋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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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진 갯벌은 온데간데없고 광활한 마른사막이 펼쳐진 곳에 다다랐다. 발길 닿는 곳곳에 붉고 푸른 나문제, 칠면초 등의 염생식물 군락이 펼쳐져 있다. 마을로 불어오는 고운 모래먼지를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낮은 울타리 주위에는 풀벌레가 울었다. 걷고 걸어도 짠기를 머금은 갯벌은 없고 맥없이 말라가는 척박한 땅뿐이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3일 동안 수문을 열어 방조제 안쪽에 갇혀있던 바닷물을 빼는 날이다. 멀리서 조개를 캐서 들어오는 몇몇 어르신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아직 검은 윤기가 흐르는 갯벌을 쫓아 그레질을 했을 그들의 자전거에는 한 광주리도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모시조개만이 담겨있다. 그나마 kg당 4000원씩 하는 큰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2000원짜리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굳어진 갯벌 바닥에서도 갯지렁이는 여전히 살기 위해 흙을 밀어올리고 있다.
 굳어진 갯벌 바닥에서도 갯지렁이는 여전히 살기 위해 흙을 밀어올리고 있다.
ⓒ 이셋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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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요. 얘들은 아직 살아있어요."

타박타박 사라진 갯벌 위를 걷다가 주용기 위원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물기가 남아있는 곳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갯지렁이의 보금자리였다. 태양 아래 검게 드러난 땅 위에서 갯지렁이는 살기 위해 구멍 입구를 작은 진흙 공으로 틀어막았다.

주 위원장은 "바닷길이 막힌 지 2년이지만, 아직 갯벌생물들은 살아있어요.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생각합니다. 방조제 몇 개만 뜯어내고 다리로 연결한다면 죽어가는 생명도 다시 되살릴 수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철조망 근처 구덩이 안에 미군의 폭발물 폭파 시험의 흔적이 남아있다.
 철조망 근처 구덩이 안에 미군의 폭발물 폭파 시험의 흔적이 남아있다.
ⓒ 이셋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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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의 또다른 고통, '미군의 폭발물 폭파 시험'

오후 5시 30분, 멀리 허리까지 차오른 갈대무리 너머로 군산미군기지와 새만금을 가르는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22일 주 위원장은 군산미군기지 측이 관에 허가 신청을 하지 않고 새만금 간척지 내 공유수면지에 임의로 설치한 철조망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고발장을 낸 바 있다. 고발장에는 4월 미군이 간척지내 공유수면지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불법으로 폭발물 폭파시험을 한 사실도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21일 군산미군기지 공보관은 "이전에는 수로로 인해 훈련장과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 사이에 자연적으로 경계가 됐으나 간척사업 이후 지휘부는 더 확실한 안전조치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라며 "폭발물 처리장은 폭발물 처리반의 실제연습을 위해 자주 쓰이는 장소로, 새로운 안전철조망 설치 작업은 군산시민의 안전과 폭발물 처리장 주위를 지나다니는 군인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내용의 해명서를 군산시 언론브리핑실에 보낸 바 있다.

근처를 지나던 백영호(70)씨는 "펄에 매일 나오는데 사격한다고 가끔 펄도 못 들어가게 한다"며 "5월에는 폭탄 터지는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바다생명의 무덤 위에 세워진 매립지는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었다.

미군기지를 돌아 하제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바위산과 함께 푹신하게 발에 감기는 갯벌이 아직 남아 있다. 깎아내리는 바위절벽 위쪽 물이 차올랐던 검은 테두리에서는 예전 바다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었다. 조심조심 발을 딛어도 눈치 빠른 붉은 발 농게와 도둑게, 말뚝 망둥어는 숨기 바쁘고, 물이 빠지며 멀리 섬처럼 떠오른 갯벌에는 마도요· 개꿩· 중부리 도요 · 갈매기들이 먹이를 찾느라 바빴다.

만약 이대로 물길이 끊긴다면 농게는 물론이고 올해 예년보다 적게 새만금을 찾은 4만 마리의 도요새·물떼새 등도 점차 생존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새만금은 지금도 새들이 찾아 날아들고 있다.
 새만금은 지금도 새들이 찾아 날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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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가 돈 벌면 된다는 기대 사라져..."

밤 8시, 도착한 하제마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조헌철(39)씨를 만났다. 뱃일을 하던 조헌철씨는 "배만 20년 탔는데 올해가 마지막 인 것 같다"며 줄담배를 물었다. 8톤짜리 한 척당 각 가구마다 보상을 적게는 5천에서 많게는 8천 3백만 원까지 받았지만, 이는 선박 제조비 정도 될 뿐이지 뱃일밖에 모르던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나처럼 부모님이 횟집이나 하면 모를까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 쫓아 배탄 사람이 많아요. 바다가 죽어버렸으니까 젊은 사람들은 이제 노가다라도 뛰러 인력사무소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조씨는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을에 있는 배 70척 중에 한 달에 겨우 3~4척 나가는데 나가도 잡히는 건 없으니 손해죠. 바다에 나가서 돈 벌면 된다는 막연한 기대가 사라지자 이제 마을 인심까지 나빠지고 있어요."

지난 5월에는 그물마다 주먹만 한 해파리들이 걸려 올라왔다고 토로하는 조씨는 하제포구가 '시화호'처럼 될까 우려하고 있었다. 요즘은 자식들에게 배 근처도 얼씬 못하게 한다는 그는 3번째 담배꽁초를 바닥에 부비며 말했다.

"고향을 잃고 안 잃고를 떠나서, 또 미군 비행장에서 이주하라고 하더라도 바다에 희망이 있다면 죽기 살기로 싸울 수 있어요. 하지만 갯벌이 죽어가니 이제 동네사람들이나 저나 남은 건 절망뿐입니다."    

멀리 출항하지 못하고 버려진 선박 위로 조헌철씨의 근심만큼 어둡고 두터운 저녁해가 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셋별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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