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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차원의 전방위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정연주 KBS 사장이 25일 스스로 용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정 사장은 이날 오후 민주당 '언론장악저지 대책위원회'(위원장 천정배 의원) 소속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에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는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공영방송인대회에 참석한 외빈들과의 만남을 언급하고 "몇몇 나라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가 5년이나 되는 사례들이 더러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상이 깊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사장은 아울러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임기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보장되고 있음도 상기시켰다.

 

정연주 "미국 연준 의장의 임기도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보장"

 

정 사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는 신재민 문화부 차관의 발언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최근 (대통령이) 사장에 대해 해임권이 있냐는 얘기도 있는데 방송법 제정의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대통령이) 대법원장도 헌재소장도 해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가 성숙되어 있고 절차와 제도에 대한 존중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잘 극복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재윤 의원은 비공개 면담이 끝난 뒤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 "정 사장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면서 어떠한 정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KBS의 한 관계자도 "재야원로 한승헌 변호사 등이 최근 정 사장을 면담하고 갔다"며 "정 사장의 거취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앞서 유재천 KBS 이사장(한림대 특임교수)을 방문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유 이사장과 인사를 나누며 "시청자 운동을 함께한 동지"(이미경), "유 교수와는 스승과 제자 관계"(김재윤)라며 각별한 친분을 표시했지만, 유 이사장의 취임 후 행보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자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유 이사장은 자신이 정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최근 언론보도를 시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정 사장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 제가 KBS에 와서 한 달 정도 지내보니 KBS의 조직이 너무 분열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KBS의 존립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정 사장을 만나 자유롭게 얘기하는 가운데 'KBS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신성인의 심정으로 처신해주면 안되냐'고 말씀드렸다."

 

장세환 의원은 "정 사장에게 더욱 꿋꿋이 압력에 버티라고 했어야 하지않나? 정 사장이 사퇴하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KBS 사장이 되면 국민들이 KBS의 존재가치를 어떻게 보겠냐"고 다그치자 유 이사장은 "권력과의 갈등 상황에서 언론이 굴복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는 않았다. KBS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재천 "박재완 수석의 'KBS 사장' 발언은 잘못된 얘기"

 

유 이사장은 "KBS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적극 구현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발언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건 잘못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발상은 국영방송의 발상이지, 공영방송의 발상이 아니다. 저는 보도된 것도 못 보고 <신동아> 광고 제목만 봤는데 '(박 수석이) 잘못 인식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중략) 제가 이사장으로 있으니 그런 걸 칼럼으로 쓰고 싶어도..."

 

그러나 유 이사장은 다른 쟁점들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천정배 의원이 "조선시대 병자호란이라는 외침을 받아 임금을 끌어내린 후 어떻게 됐나? (조선은) 결국 청나라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유 이사장은 "사장추천위가 공모를 받아서 몇 배수 후보를 이사회에 추천하기 때문에 이사장이 후보 추천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천정배 의원 옳은 말씀인데, 저도 실명을 언급하지 않겠지만, 항간에 누가 KBS 사장으로 온다는 얘기가 있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이사장님이 정 사장을 물러나라고 한 충정은 알겠는데 그 다음 결과는 뻔한 게 아니냐?

 

이미경 의원 이명박 캠프에서 일한 특보가 KBS 사장으로 온다,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려고 검찰·감사원·국세청의 무리한 조사가 있고, 신태섭 이사까지 쫓아낸 걸 사람들이 다 안다. 언론을 가장 잘 아는 교수가 이사장이 됐는데, 캠프 특보의 KBS 사장 임명이 맞다고 보나? 입장을 분명히 밝혀달라.

 

유재천 이사장 제 의견을 말하기는 어렵고...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투명하게 진행하면 걸러질 것은 걸러지지 않을까?

 

이미경 의원 진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세상을 너무 나이브하게 사시는 거다.

 

유 이사장은 이후에도 "(대통령의 사장 해임에 대해) 양론이 있는 것 같다", "이사회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진 것은 아니다"는 식으로 예민한 질문들을 피해갔다. 신태섭 전 KBS 이사의 해임 건에 대해서도 그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그렇게 유권해석을 내렸으니 저희로서는 달리..."라고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천 의원은 "이사장이 공영방송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영혼 없는 관료'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재윤 의원은 "이런 식으로 가면 방송사 사장들의 회의가 이명박 특보단 회의가 되고, 국민들도 방송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세웅 의원은 "지금 정연주라는 멧돼지를 잡으려고 권력의 사냥개 수십 마리가 달려들고 있는데, 자칫 이사장이 사냥개·몰이꾼 역할로 지탄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그:#정연주, #유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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