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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철학자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립니다. 22번째인 이번 대회에서는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이 집중 소개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박재순 씨알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대회의 여러 가지 의미를 들어보았습니다. 지난 23일 진행된 인터뷰는 오세훈 씨알재단 운영위원이자 기획위원장이 진행했습니다. [편집자말]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 소장
ⓒ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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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철학을 생각한다(Rethinking Philosophy Today)."
  
'철학자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철학자대회가 오는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대에서 열린다. 5년에 한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올해로 22차이며, 97개국 2500여명의 '철인'들이 참석한다.

이명현 한국조직위원장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성찰함과 동시에, 21세기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이 시대 위대한 철학자들이 머리를 맞댈 것"이라고 이 대회의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이 의장은 "이번 대회의 소중한 의미 가운데 하나는 한국의 철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유서깊은 철학적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날 철학의 성격과 역할, 책임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성찰을 세계 철학계에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터 켐프 국제철학연맹 총재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세계문명의 발전과 연관된 문제, 갈등, 불평등, 그리고 불공평에 앞에 선 인류가, 가장 높은 수준의 사고가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대회가 지니는 또하나의 큰 의미는 세계 철학계 최초로 그간 국내에서조차 제도권 학계로부터 '홀대'를 받아왔던 '씨알사상'이 소개된다는 데 있다. 박재순 씨알사상 연구소 소장을 만나 이번 세계철학자대회와 이 대회를 통해 세계 철학계에 선보일 '씨알사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세계철학자대회,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

- 세계철학자대회가 22차에 이르렀는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5년에 한 번씩 열렸으니까 벌써 100년이 넘었는데요, 한국의 지식인들은 물론, 관심있는 일반인들을 위해 이 대회의 역사와 중요성을 설명해 주십시오.
"세계의 지성과 석학들이 5년에 한번씩 모여서 지혜와 생각을 나누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세계철학자대회가 그동안 서양에서만 모였을 뿐 아니라 철학을 서구 중심으로 생각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철학자대회가 열리면서,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동양 종교와 철학을 정식으로 철학의 범주로 받아들이고 논의하게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대회의 주제도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이고 동서문명의 만남 속에서 철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조직위원장 이명현 박사의 말씀대로 문명의 대전환기에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철학자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우리가 세계 철학계 패러다임 변화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모두 모이겠지만, 시대정신과 관련, 동서양을 통틀어 이 시대에 가장 큰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참석자 몇 분과 그 분들의 철학을 개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의 타넬라 보니는 신화·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이론적 철학작업을 전공하지만 공존과 인권, 지식의 확산 등 실천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인, 소설가, 비평가로도 활동하고 2002년까지 아비장 세계 시축제를 이끌며 아프리카의 예술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일본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전 일본 도쿄대 교수는 미학을 전공했으며, 초기술학(超技術學)을 제기하고 생태윤리학에 관심을 보이며, 저서 <동서의 철학>에서 동서양의 철학을 비교 연구해 지역을 초월한 진정한 의미의 인류 철학을 탐색했습니다.

독일 칼스루에디자인대 총장인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1983년 펴낸 <냉소적 이성 비판>의 저자로서 프랑크푸르트학파 이후 비판이론의 주요 대변자가 됐습니다. 독창적인 감수성과 관점으로 철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사, 예술을 넘나들며 서양 주도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시대 진단을 전개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구 전통 철학이 권위를 잃고 방향을 모색하는 백가쟁명의 시대입니다. 문명과 철학의 큰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때이므로 새로운 철학을 모색하고 형성할 때입니다."

- 씨알사상을 포함해 한국의 학자들이 몇 가지 사상을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곡과 퇴계, 정약용에 대한 연구발표회도 있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철학에 관한 발표회도 있습니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연구발표회는 22명이 참여해 5분과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른 것은 그동안 해 오던 것들이지만, 유영모·함석헌의 철학은 이제까지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이고, 유영모·함석헌이 동서정신문화의 융합을 평생 추구한 철학자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철학·사상을 다듬어 내는 데 힘을 집중해야"

유영모 선생
 유영모 선생
ⓒ 씨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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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한국의 사상들이 '홈그라운드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의 철학을 동서문명의 만남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마당을 한국에서 펼쳐지니까 우리의 철학과 사상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철학을 다듬을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철학과 사상에 대한 연구와 준비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철학계가 주로 서구철학을 소개하는 데 열중했으니까요.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철학과 사상을 밝히고 다듬어내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합니다."

- 다석 유영모 선생이 제창하고, 신천 함석헌 선생이 완성하신 씨알사상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씨알사상을 소개하시는 분들과 발표하시는 주제, 내용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씨알은 시민, 민중을 나타내는 말인데 사람을 사회의 신분이나 지위, 권력이나 부, 지식이나 명예로 보지 말고 삶과 정신의 알맹이로 보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삶과 정신의 알맹이를 가진 보통 사람이 역사와 사회를 형성하고 이끄는 주체라는 것입니다.

역사와 사회의 지평을 우주와 자연의 생명에까지 확장해서 시민과 민중을 이해하고, 인간 속에는 자연생명을 넘어서서 신적인 생명의 씨앗, 영원한 생명의 불씨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알이 지극히 작지만 그 속에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을 품고 있고, 그 씨알이 깨지고 죽음으로써 위대한 생명의 창조와 변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세계철학대회 부회장 정대현 교수('씨알: 誠的 지향성의 주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함석헌과 민족주의'), 이기상 외대 교수('유영모의 생명사상'), 이종재·송정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다석 관점에서 본 마음계발과 역량개발'), 김경재 한신대 교수('함석헌의 나선형적 역사관의 동아시아기독교의 영향'), 김상봉 전남대 교수 ('함석헌의 인간관: 호모 레지스턴스'), 이규성 이대 교수('내면의 정치학-함석헌 정치사상'), 그리고 제가 '동서 문화의 만남으로서 함석헌 철학'을 발표합니다."

- 최근 한국사회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문제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개독교'라는 말이 젊은 사람들의 유행어가 되고, 출판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구요. 방송사들도 기독교와 관련 비중 있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 기독교는 한국 진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를 수렴하고 있는 씨알사상의 처지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 기독교를 진단해주십시오.
"기독교는 본래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는 십자가의 종교로 시작했습니다. 오늘 기독교는 예수의 삶과 말씀과는 관계가 없는 종교로 되었습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을 탐하면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에 매달리는 기독교를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겸허하게 민중과 함께 하면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함석헌-유영모 vs 소크라테스-플라톤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촛불시위는 이 시대 이 땅에 새로운 문화의 하나로 정착했다고 생각됩니다. 촛불을 든 수십만 시위대중 하나 하나가 씨알사상에서 말하는 천인합일의 주체인 바로 그 씨알들이 아니겠습니까?
"함석헌 선생님은 1950년대 후반부터 민중이 정치의 주체이고 주인임을 역설했습니다. 길거리의 씨알이 나라를 하고 임금노릇을 할 때라고 했지요. 역사와 사회에서 씨알보다 높고 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다 함께 촛불을 켜고 씨알들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새 정치, 새 삶의 양식을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 김상봉 전남대 교수의 강의를 들었는데,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가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은 칸트는 물론,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석 사상으로 쓴 박사학위가 나왔구요.
"김상봉 교수가 외국에서 함석헌 연구 발표를 했는데 유럽의 철학 교수 한 분이 이 발표를 듣고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아직도 번역이 되지 않았느냐?'면서 감탄했다고 합니다. 함석헌을 '20세기의 소크라테스'라면서 함석헌과 소크라테스의 세 가지 공통점을 지적했답니다. 첫째 앎과 행함이 일치하고, 둘째 쉽고 소박한 표현 속에 깊은 뜻을 담고, 셋째 정해진 답을 주지 않고 도전적인 질문으로 삶과 현실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영모, 함석헌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사이에는 차이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정복주의적인 그리스문화에서 귀족청년들을 대상으로 철학을 했다면, 유영모와 함석헌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민중의 고통과 심정을 가지고, 동서문명이 만나는 세계적 지평에서 철학을 했습니다. 함석헌과 유영모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풀뿌리 민주철학, 상생과 공존의 세계평화철학을 제시했습니다."

"씨알이 전문가가 독점해온 철학의 주체가 되어야"

함석헌 선생
 함석헌 선생
ⓒ 씨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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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씨알사상은 소수의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 자랑스럽고 소중한 민족의 지적 자산이 특히 젊은층에게 이해되고 수용되는 일은 민족의 이해를 넘는 가치를 갖는다고 봅니다. 씨알사상이 청년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랄까요? 그런 점과 관련 고민과 구상을 밝혀주십시오.
"민족과 동아시아와 세계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비전을 주고 자발성과 헌신성을 일깨우고, 주체의 깊이와 전체의 연대를 통합하는 씨알사상은 오늘 청년들을 위한 철학입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고 정리된 씨알사상을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씨알사상을 사회에 알리고 청년들에게도 알려서 대학생과 청년들 사이에 씨알사상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동아리들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저는 30년 전 접했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어록은 '철학하는 사람이라야 살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살린다'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번 세계철학자대회의 모토는 'Rethinking Philosophy Today'입니다. '철학'이 '생각'으로 낮아지는, 말하자면, 어려운 철학의 대중화에 관한 논의도 이번 대회의 결실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문가들이 독점한 철학을 빼앗아 씨알이 철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 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바른 길을 찾아가면 그 사람이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태그:#박재순, #세계철학자대회, #함석헌, #유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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