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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은 사진책을 보다가 가슴이 벌렁벌렁 뛸 때가 있습니다. 사람 하나 없는 자연사진책이건만, 사람 숱하게 담긴 사진책보다 훨씬 더 사람냄새가 짙기 때문입니다.
▲ 사진책 하나 자연을 담은 사진책을 보다가 가슴이 벌렁벌렁 뛸 때가 있습니다. 사람 하나 없는 자연사진책이건만, 사람 숱하게 담긴 사진책보다 훨씬 더 사람냄새가 짙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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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자연 담은 사진책을 보다가 1 : 예전에는 사람 있는 사진책만을 보았으나 이제는 사람 안 찍은 사진책도 본다. 제대로 담아내는 사진을 보는 셈인가? 아니면 사람 삶은 사람들만 북적대는 도시를 넘어, 사람이 처음 태어나 먹고 입고 자는 모두를 얻는 자연 삶터에서 참답게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45] 자연 담은 사진책을 보다가 2 : 자연을 찍든 사람을 찍든 사진기를 들고 '내가 무엇을 찍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올곧게 선 사람이 찍은 사진은, 가만히 그 사진을 보는 채로 눈물이 흐를 만큼 좋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연을 멋들어지게 찍고 사람 삶도 기막히게 담아냈다고 할지라도, 우리 삶(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자기 '작품'으로만 찍은 사람 것이라 한다면, '세상에 참 불쌍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다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자연은 시골에도 있으나 도시에도 있습니다. 자연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눈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사진을 담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자연이란? 자연은 시골에도 있으나 도시에도 있습니다. 자연이 무엇인가를 느끼는 눈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사진을 담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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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자연 담은 사진책을 보다가 3 : 자연 삶터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은 사람 삶터를 사진으로 담아내기보다 훨씬 어렵다. 아니, 사람 삶터는 사진으로 쉽게 찍을 수 있으나 자연 삶터는 어지간해서는 엉터리로 찍을 수 있을 뿐이다. 자연 삶터 사진도 사람 삶터 사진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찍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면서' 담아낼 수 있어야 히지만, 자연 삶터 사진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덧붙는다.

사람 사진은 입으로 말하면서 찍히는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자연 사진은 우리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찍는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사람 사진을 찍을 때에도 입이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찍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움직일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한 사진을 얻는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밖에 없는 도시에서도 자연을 찾고 가꾸고 돌보는 사람들 손길이 있습니다. 푸른손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라 할 텐데, 이분들 손길을 닿은 꽃과 나무를 보면서 사진을 찍노라면, 제 마음도 푸근해집니다.
▲ 도시에서 찾는 자연 시멘트와 아스팔트밖에 없는 도시에서도 자연을 찾고 가꾸고 돌보는 사람들 손길이 있습니다. 푸른손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라 할 텐데, 이분들 손길을 닿은 꽃과 나무를 보면서 사진을 찍노라면, 제 마음도 푸근해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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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찍으면 :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 껴안을 줄 안다면, 이러면서 이곳 모습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헌책방 사진은 시나브로 예술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헌책방 임자들처럼 책을 쌓아올릴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이렇게 좁은 자리에 책을 잔뜩 쌓아올리면서도 어느 책이 어디에 있는 줄 알겠는가?

어느 누가 자기 돈을 주고 산 책을 이렇게 거리낌없이 높직하게 쌓아올리되, 무너지지도 않고 튼튼하게 다스리겠는가? 피가 튀기도록 온땀이 바쳐진 이곳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구경꾼한테는 아무것도 보여지지 않는 이곳이야말로 꿈틀거리는 삶터요 싱싱한 일터요 살아 움직이는 만남터이다.

저한테는 헌책방 사진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사진감입니다. 자기가 늘 가까이 두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곳을 언제나 고이 지켜보면서 담아낼 수 있을 때, 생활사진도 되고 기록사진도 되고 다큐사진도 되고 예술사진도 되며 기념사진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책방 일꾼과 단골 손님이 제 사진기를 구경하던 모습.)
▲ 예술은 우리 곁에 저한테는 헌책방 사진이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사진감입니다. 자기가 늘 가까이 두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곳을 언제나 고이 지켜보면서 담아낼 수 있을 때, 생활사진도 되고 기록사진도 되고 다큐사진도 되고 예술사진도 되며 기념사진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에서. 책방 일꾼과 단골 손님이 제 사진기를 구경하던 모습.)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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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일곱 번째 사진잔치 : 일곱 번째 '헌책방 사진잔치'를 열어야겠다는 꿈을 품은 2006년 1월 13일 저녁. 이번 사진잔치에서는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사진만 뽑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여태껏 여섯 차례 사진잔치를 치르는 동안, 다른 이들이 좋아하거나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진으로 추려 왔다. 나로서는 그저 그렇다고 느끼거나 영 내키지 않는 사진이었지만, '그래, 헌책방이라면 이런 사진이지', 또는 '이 사진을 보니 헌책방이 생각나는군요' 하는 사진을 골라 왔다.

가만히 보면, 나 스스로만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내가 찍은 사진도 내 눈길과 눈높이에 따라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남들이 좋게 보아줄 법한 사진'을 찍어 온 셈이 아닐까.

나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도 틀림없이 있을 터이지만, 나 스스로 좋아서 찍은 사진을 나부터 믿지 못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바보스러운 허물을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수는 없겠지. 그러나 하루아침에 벗어던질 수 없다고,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면 앞으로는 이 모습대로 내 사진이 굳으며 썩어문드러지리라 본다.

[49] 필름 한 통에 겹쳐 찍기 : 여태껏 두 번, 한 필름에 사진을 겹쳐 찍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번에 맡긴 필름도 겹쳐서 찍었는지 모른다. 부디 그렇게 겹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 찍은 필름을 꺼내고 새 필름을 꺼낼 때 너무 서두르면, 그만 어느 쪽이 다 찍은 필름이고 어느 쪽이 새로 꺼낸 녀석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때는 참 아찔하다. 필름 한 통을 버리느냐 어쩌냐 하는 갈림길에 선 셈인데, 차라리 새 필름 한 통 버리는 셈 치며 둘 다 맡겨야 낫다. 그러나 주머니 가난한 사진쟁이로서는 둘 가운데 하나도 버리기 싫어서 '틀림없이 이쪽이 다 찍은 필름이야. 내 느낌이 맞아' 하고 뻗대기 일쑤이고, 이러다가 필름 두 통을 모두 날려 버리고 만다.

애꿎은 필름을 버리는 일은 참말 아깝다. 그러나 아직 안 찍은 필름을 날릴 때가, 애써 찍은 사진 서른여섯 장을 안 날리는 일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 아니, 새 필름 한 통 누군가한테 선물한다고 생각하고, 애써 찍은 필름을 날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까닭이 없지 않겠어? 그 사진 서른여섯 장을 언제 어떻게 다시 찍을 수 있겠어? 다시 찾아가서 찍는다 해도 그때 그 느낌과 그 사람과 그 책시렁을 어떻게 살려내겠어?

더 나은 필름을 쓸 수 있다면, 질감이 더 나은 사진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만, 꼭 더 나은 사진을 얻지는 못합니다. 질감은 좋아도 사진에 담는 얼이나 넋이 엉망이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잘난’ 사진만 쌓입니다. (서울 독립문에 자리한 〈골목책방〉에서. 값싼 필름으로 남긴 사진. 값싼 필름으로 찍었어도 빛과 틀이 자기 마음에 잘 들도록 찍으면 될 뿐입니다.)
▲ 어떤 사진을 찍느냐 더 나은 필름을 쓸 수 있다면, 질감이 더 나은 사진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만, 꼭 더 나은 사진을 얻지는 못합니다. 질감은 좋아도 사진에 담는 얼이나 넋이 엉망이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잘난’ 사진만 쌓입니다. (서울 독립문에 자리한 〈골목책방〉에서. 값싼 필름으로 남긴 사진. 값싼 필름으로 찍었어도 빛과 틀이 자기 마음에 잘 들도록 찍으면 될 뿐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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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좋으면서 비싼 필름 : 좋은 필름은 비싸다. 싼 필름을 써도 그다지 해상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 좋으면서 비싸고, 쉬 잘 찍기 어려운 필름을 쓰고 싶을 뿐이다. 어려워도, 또 돈이 훨씬 많이(적어도 두 곱) 들어도 내 사진눈과 사진손을 길러야지, 그럭저럭 보기 좋게 나오는 필름을 쓸 수 있는가. 내가 찍는 헌책방도 그렇다. 나만이 보고, 나만이 느끼며, 나이기 때문에 찍을 수 있는 사진만 찍고플 뿐이다.

그곳에 있으면 그곳 사진을 찍습니다. 그곳에 없으면서 머리로 아무리 꿈을 꾸고 생각한들 사진 한 장 얻을 수 없습니다. 싸구려 필름을 사진기에 넣고 있든,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가지고 있든, 그곳에서 자기 깜냥껏 자기 눈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사진 하나로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끼고 있는 헌책방 〈동훈서점〉에서. 비록 이때 쓴 필름은 퍽 싸구려였으나, 남강을 끼고 있는 헌책방을 담아낸 사진이었기에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 그곳에 있느냐 그곳에 있으면 그곳 사진을 찍습니다. 그곳에 없으면서 머리로 아무리 꿈을 꾸고 생각한들 사진 한 장 얻을 수 없습니다. 싸구려 필름을 사진기에 넣고 있든, 값싼 디지털사진기를 가지고 있든, 그곳에서 자기 깜냥껏 자기 눈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바로 그 사진 하나로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을 끼고 있는 헌책방 〈동훈서점〉에서. 비록 이때 쓴 필름은 퍽 싸구려였으나, 남강을 끼고 있는 헌책방을 담아낸 사진이었기에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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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좋지 않으면서 싼 필름 : 예전에 찍은 사진을 돌아본다. 틀림없이 아주 값싸고 안 좋다고 할 만한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웬걸. 이 사진을 지금 다시 뽑아 보아도 아주 그럴싸할 듯싶다. 다만, 비싸고 좋은 필름에 견주면 해상도는 좀 떨어지겠지. 그리고, 아무리 값싸고 질낮은 필름으로 찍었다 해도 그 필름이 아주 나쁜 녀석까지는 아니다. 다른 비싸고 질높은 필름만 못하다뿐이지. 그래, 사진을 찍으며 생각할 대목은 필름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내가 바라는 대로 제때 제대로 담느냐라고 본다.

싼 필름이든 비싼 필름이든 중요하지 않더라. 그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내가 바라는 대로 찍되, 훨씬 훌륭하게 잘 나오도록 하는 필름에 담는다면 더 좋다고 느낀다. 좋은 필름을 썼으나 마음이 흐트러지고 손이 떨리고 제때 그 모습을 못 담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나. 싼 필름을 써도 마음을 곧게 추스르고 손 떨지 않으며 제때 그 모습을 붙잡을 수 있으면 되지 싶다. 뭐, 좋은 필름을 좋은 몸가짐으로 찍는다면 가장 나을 테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사진이 훌륭하게 찍히나.

성능이 떨어지는 사진기라고 해도 틀림없는 ‘사진기’입니다. 좀더 나은 장비를 못 쓴다고 투덜거릴 수는 있으나, 좀더 나은 장비가 없다고 해서 ‘한결 나은 사진’을 못 얻는다는 푸념만 내놓는다면, 어리광도 이런 어리광이 없습니다. 철부지도 이런 철부지가 없습니다. 어떤 장비를 갖고 있든 자기한테 ‘사진기’가 있다는 기쁨을 느끼면서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땀을 흘려서 ‘스스로 마음에 들 사진’ 하나 얻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 즐겁게 찍으면 된다 성능이 떨어지는 사진기라고 해도 틀림없는 ‘사진기’입니다. 좀더 나은 장비를 못 쓴다고 투덜거릴 수는 있으나, 좀더 나은 장비가 없다고 해서 ‘한결 나은 사진’을 못 얻는다는 푸념만 내놓는다면, 어리광도 이런 어리광이 없습니다. 철부지도 이런 철부지가 없습니다. 어떤 장비를 갖고 있든 자기한테 ‘사진기’가 있다는 기쁨을 느끼면서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땀을 흘려서 ‘스스로 마음에 들 사진’ 하나 얻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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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찍기, #사진, #사진가,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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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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