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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저녁 5시 28분, 비 쏟는 소리가 그쳐서 잠깐 옥상 마당에 올라가 봅니다. 이제 비가 좀 그치려나 하고 금곡동과 숭의3동이 만나는 도원역 뒤쪽 언덕을 내다봅니다. 그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집들 위로 길게 꼬리를 잇고 있는 무지개가 바라보입니다.

 

어쩜, 무지개가. 한동안 비가 오지는 않겠구나.

 

 

옆지기를 불러 이 분 남짓 무지개를 함께 바라봅니다. 무지개는 이내 걷힙니다. 무지개가 처음 생긴 그때 보았다면 더 고왔겠구나 싶지만, 걷히기 앞서 이나마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구경하고 사진에도 담을 수 있었으니 즐겁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무지개를 구경하고 있자니, 고양이 두 다리도 따라와서 담벽에 껑충 뛰어올라서 하품을 합니다.

 

 

비도 그쳤겠다, 날씨도 맑아졌겠다, 하늘도 싱그럽겠다, 집에 날푸성귀도 다 떨어졌겠다, 저잣거리 나들이를 갈까나. 장바구니 주섬주섬 챙겨서 송현시장으로 걷습니다. 시장에서 가지와 양파와 버섯을 산 다음, 송림동 안쪽 골목을 걷습니다.

 

산업도로 놓는다며 동네 한복판을 싹 쓸어낸 이곳. 이에 앞서는 수도국산 배수지맡에 아파트 세운다며 확 밀어낸 이곳. 그러나 아직도 서민들 삶터는 제법 넓게 남아 있고, 넓게 남아 있는 골목길마다 낮은 자리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이웃을 섬기는 손길과 마음씨를 느낍니다.

 

 

어른 손으로 두 뼘만한 자리에 흙을 퍼 담아서 어른 키 두 길은 될 법하게 자라는 해바라기를 키웁니다. 세거리가 아닌 네거리 모퉁이에 있는 '삼거리정육점'은 언제 보아도 '여기는 정육점이 아닌 꽃집인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로서는 훨씬 예전을 몰라서 그렇지, 지난날 이곳에 골목집이 훨씬 다닥다닥 붙어 있던 때에는 네거리가 아닌 세거리이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곳, '삼거리정육점'은 이 동네 사람들 사랑방 노릇도 했겠거니 생각해 봅니다. 골목사람들이 오며 가며 꽃을 구경하고 꽃내음을 맡으면서 마음을 싱그럽게 추스르거나 다독였을지 모릅니다.

 

사진 찍는 저를 보며, ‘저 개 좀 같이 찍어 줘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한 분이 까만 강아지를 붙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몇 번 찍으려고 할 때마다 강아지는 이리 내빼고 저리 내뺍니다. 녀석!

 

"내가 올해로 팔십인데, 이 동네가 참 조용하고 살기 좋아요" 하고 덧붙이면서, "젊은이가 앞으로 훌륭한 일을 해" 주면 좋겠다고 인사를 하십니다. "네, 네, 아무렴요" 하고 맞인사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난해 이 골목 저 골목을 두루 돌아다닐 때에는 해바라기를 그다지 못 보았습니다. 군데군데 띄엄띄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골목에 가고 저 골목에 가도 해바라기 잔치입니다. 한해살이 풀인 해바라기이니, 일부러 심어야 이렇게 해바라기잔치가 될 텐데, 골목사람들이 서로 다짐을 하듯 심지는 않으셨을 테고, 우연하게 이 골목에도 심고 저 골목에도 심은 셈인가 싶습니다.

 

 

하긴. 가만히 보면, 골목꽃으로는 해바라기만 있지 않습니다. 온갖 꽃이 골고루 있습니다. 다만, 다른 꽃보다 키가 크고 꽃도 우람하고 노란 꽃잎도 훨씬 넓적하니까 쉬 알아보게 되지 싶어요.

 

해바라기 핀 둘레에는 으레 호박꽃이 있습니다. 봉숭아꽃도 있습니다. 콩과 깨도 있고 고추와 오이도 있으며 가지와 토마토도 있습니다. 매발톱꽃과 초롱꽃도 골목마다 가득이며, 덩굴풀을 기르려고 문간부터 지붕 위까지 줄을 드리우는 집이 많습니다.

 

나팔꽃과 메꽃이 함께 자라고, 때때로 달맞이꽃을 보는 한편, 나리와 접시꽃이 큰 꽃송이마냥 큰 웃음을 선사해 줍니다. 심은 분도 이름을 모르고, 구경하는 저도 이름을 모르는 꽃은 훨씬 많습니다. 범의귀나 별꽃은 시멘트바닥을 뚫고 꽃을 피워내기도 합니다.

 

 

하늘에는 무지개가 흰 구름 사이에 걸리며 고운 빛을 땅으로 내려보냅니다. 땅에는 알록달록 피어난 꽃과 푸른 잎사귀가 가득하며 싱그러운 빛을 하늘로 올려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골목길, #골목, #인천, #골목여행, #골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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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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