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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1 -

 

 잘생기거나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마음결도 착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못생기거나 못났다고 하는 사람이 마음씨가 곱거나 맑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어느 자리에서 누구와 어떻게 어울리면서 살아왔는가에 따라서 마음결이 고와질 수 있고, 마음씨가 짓궂어질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착한 아이가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나눔을 널리 베푸는 아이로 자라지 않습니다. 공부는 잘하지만, 홀로 똑똑하기를 바라거나 똑똑하다는 지식을 홀로 움켜쥐는 아이가 있습니다. 공부를 좀 못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지식을 기꺼이 이웃하고 나누거나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데에 듬뿍 쏟는 아이가 있어요. 돈이 많으나 혼자 껴안고 어느 누구하고도 안 나누는 사람이 있는 한편, 없는 살림에 주섬주섬 모아서 틈틈이 ‘자기보다 더 어려울 이웃’을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혀도, ‘우리 아이가 더 고와 보이는 옷’을 사서 입히고픈 어버이 마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겪기로는, 또 제 생각으로는 다릅니다. ‘우리 아이만 도드라지게 고운 옷을 입히’기보다는 ‘이웃 아이와 마찬가지로 서로 고울’ 수 있는 옷을 입히거나, 이웃 아이 옷이 낡거나 떨어졌다면 내 아이 옷을 더 곱게 하기보다 이웃 아이 옷을 손질해 주어야지 싶어요.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를 점심시간에 내쫓아 골마루에서 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이 한 숟갈이나 반 숟갈씩 나누어 함께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어느 한 마을이 좀더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이 마을과 견주어 넉넉하지 못하거나 어렵게 살아가는 마을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어느 한 동네는 빛곱고 깔끔한데 어느 한 동네는 꾀죄죄하거나 낡게 되었다면, 꾀죄죄하거나 낡게 된 동네를 싹 밀어버려서는 안 되며, 이 동네가 스스로 고운 빛과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함께해야지 싶어요.

 

 

 - 2 -

 

 뜨거운 햇볕이 조금 누그러진 7월 17일 저녁 다섯 시 무렵, 자전거를 이끌고 골목마실을 나옵니다. 멀리멀리 자전거 나들이를 가고도 싶으나, 배가 똥똥 부른 옆지기를 두고 혼자만 나다닐 수 없는 노릇. 가까운 골목마실을 자전거로 다니면서 자전거에 내려앉으려는 먼지를 털어내고, 물러지려는 허벅지살을 다잡습니다.

 

 골목골목 샛골목이 수없이 많은 도원역 뒤편 언덕길을 달립니다. 골목을 따라 한쪽은 창영동이 되고 한쪽은 금곡동이 되는 한편 송림동이 됩니다. 송림동도 3동과 4동과 5동으로 쪼개집니다. 그러면서 숭의 3동하고 맞붙습니다. 골목길 세거리 모퉁이에서 한 집은 동구 창영동(108-13번지), 또 한 집은 동구 금곡동(67-13번지), 다른 한 집은 동구 송림동(88-47번지)이 됩니다. 행정구역에 따라 나뉘어지는데, 동이 이렇게 갈리지만, 이 집은 창문을 서로 마주하고 있는 골목이웃입니다.

 

 

 그런데, 한 집은 동구 창영동(116-31번지)이고, 한 집은 동구 송림동(92-102번지)이 되며, 다른 한 집은 남구 숭의3동(109-306번지)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 골목집들이 동사무소에 볼일이 있다면, 또는 구청에 볼일이 있다면 어찌 될까요. 동구청은 이곳에서 걸어서 5분이지만 남구청은 버스 타고 한참 가야 합니다. 서로 대문을 열고 “잘 주무셨어요?” “네, 아침은 드셨어요?” 하고 인사를 나누는 이웃집 사이이건만, 길그림에 따라서, 공무원 일거리에 따라서 나뉘는 집주소는 따로따로입니다. 보건소를 찾아간다고 해도,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보건소는 중구 보건소. 남구나 동구 보건소는 한참(40분 넘게) 걸어가거나 택시라도 붙잡고 제법 돈 치러서 가야 할 거리.

 

 사람들 살림집을 숫자(주민등록번호, 집주소 번지수)로만 헤아린다면, 이곳 사람들 삶은 힘들고 번거롭기 짝이 없습니다. 숫자가 아닌 한 동네 이웃으로 헤아린다면, 집마다 걸상이나 돗자리 골목에 내어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살붙이 마음을 나눕니다. 골목집 사람 삶을 숫자(가계 평균소득, 집값과 전세값)로만 따진다면, 이곳 사람들 삶터는 ‘동북아 허브도시’를 바라보는 인천시장님 꿈하고 어긋나게 됩니다. 숫자가 아닌 웃음과 눈물과 즐거움으로 따진다면, 해바라기하면서 이웃사촌이 되고 햇볕에 빨래를 널고 골목에서 공놀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집 안팎으로 크고작은 꽃그릇을 가꾸며 예쁜 꽃시 서로 나누면서 동네를 가꾸는 삶터는 ‘호젓한 서민 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 3 -

 

 우각재3길 앞에 우뚝 멈춥니다. 골목이 둘로 나뉩니다. 왼쪽은 계단만으로 이루어진 오르막. 오른쪽은 자전거를 끌면서 오를 수 있는 오르막. 어디로 갈까. ‘어ㆍ느ㆍ쪽ㆍ으ㆍ로ㆍ갈ㆍ까ㆍ요ㆍ알ㆍ아ㆍ맞ㆍ춰ㆍ봅ㆍ시ㆍ다ㆍ짠!’ 오른쪽으로 가자.

 

 오른골목으로 오르다가 다시 왼 샛골목으로 접어드니 개 짖는 소리. 그리고 막힌 골목. 막힌 골목 안쪽에 사는 분들은 으레 개를 키웁니다. 낯선 사람이 올 때 알아차리고자 기르고 있을까 싶습니다. 괜한 사람들이 다가오기를 꺼려서 개를 키우는지 모릅니다. 개짖는 소리 들으며 자전거를 들어서 뒤로 돌아갑니다. 울타리 바깥으로 가지를 길게 뻗은 꽃나무를 올려다보다가는 차 다니는 골목으로 빠져나옵니다. 어디쯤인가 하고 둘러보니, 한국예루살렘교회라는 곳 언덕배기 앞. 예루살렘교회 들어서는 문 앞에 자리한 임마누엘슈퍼 앞에 자전거를 세웁니다. 임마누엘슈퍼 옆으로 자리한 골목집 문은 온통 꽃대궐을 이룹니다. 봄꽃이 거의 져서 푸른 잎사귀만 가득하지만, 사이사이 아직 활짝 피운 빨갛고 노란 꽃 몇 송이가 있습니다. 한창 꽃이 필 때는 훨신 고우며 냄새도 짙겠구나 싶고, 머잖아 꽃이 다 지고 푸른 잎사귀만 남아도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겠구나 싶습니다.

 

 

 쇠뿔고개5길인 숭의3동 109번지 골목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립니다. 새로 붙는다는 길이름을 보면, 지금 달리는 길은 ‘쇠뿔고개길’이고 바로 옆에는 ‘우각재길’이 있습니다. 예부터 이곳 토박이는 ‘쇠뿔고개’라 했고, 이 길이름을 나라님이나 일본사람들은 한자로 옮겨서 ‘牛角’이라 했습니다. 지난날 일본이 서울 노량진과 인천 사이를 잇는 철길을 놓았을 때, 인천에서 처음 기차가 떠나는 역이름은 ‘우각역’이었습니다.

 

 퍽 가파른 내리막길이 오른쪽에 나옵니다. 이쯤 되는 내리막이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도 거뜬하겠구나 싶어 슬슬 내려가며 골목골목 둘러봅니다. 그늘자리 찾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할머님들이 당신 사는 집 문간에 앉아서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빨래를 널어 놓고 한숨 돌리는 젊은 아주머니가 보이고, 꽁지머리 휘날리며 사진기 메고 자전거 달리는 젊은이를 물끄러미 구경하는 할머님들이 보입니다. 멋쩍어서 인사도 못하고 지나갑니다. 골목 끝까지 내려와서 살짝 오른쪽으로 꺾어 보니, 이곳 숭의3동 109번지 길은 지난해 눈 펑펑 왔을 때 미끄러지면서 사진 찍은 그곳.

 

 겨울날과 여름날을 견주어 보니, 가파른 비탈길 가운데에 스티로폼 꽃그릇을 놓은 품새도 똑같고, 자전거 개수도 똑같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아슬아슬한 비탈에서 살며시 꽃에 물을 줍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가파른 비탈골목이기 때문에 이곳 길 한복판에는 집집마다 꽃그릇을 놓고 가꿀 수 있구나 싶습니다.

 

 오던 길을 거슬러 아까 내리막을 오르막 삼아 올라갑니다. 내려오면서 본 고즈넉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할머님들 눈길은 저한테 쏠려 있습니다. 사람 발길 뜸한 골목에 웬 젊은이 하나 남다른 차림새로 돌아다니니 그럴 테지요. 수줍게 꾸벅 인사를 합니다. 할머님들은 “그려, 그려.” 하고 인사를 받으며 웃습니다.

 

 

 - 4 -

 

 아직 방학은 아닐 텐데, 골목마다 아이들이 제법 많이 보입니다. 이쪽으로 가도 서넛 또는 대여섯이 보이고, 저쪽으로 가도 두셋 서넛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들 자기 집이 있는 골목 앞쪽에서만 놉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일 나갔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집을 지키며 아이들도 보고 있으신가. 그래서 할머니들이 하나같이 문간에 앉아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아이들도 할머니가 보이는 자리에서만 맴돌며 놀까.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이를 하지 않아 보이고, 멀거니 앉아서 이야기를 하거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오가는 사람을 구경한다는 느낌. 공기놀이도 없고 고무줄놀이도 없고 금긋기놀이도 없습니다. 플라스틱 딱지 뒤집기, 공놀이, 배드민턴뿐. 술래잡기나 얼음꽝조차 없고 돌치기나 비석치기도 없습니다.

 

 사람만, 더욱이 동네사람만 다니는 골목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어린아기 업으며 어르며 어울리는 아주머니들이 보입니다. 흙바닥이 없고 풀바닥이 없는 도심지이기 때문에, 돗자리를 깔아도 시멘트바닥입니다.

 

 밤나절, 더위를 쫓으며 골목에 돗자리 깔고 드러눕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로 도란도란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십니다만, 누워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머니들 이야기 사이사이 당신들 어릴 적 밤하늘 올려다보던 이야기가 깃들이려나요. 아주머니들은 옛이야기로나마 밤하늘 별을 이야기감으로 삼을 수 있을 터이나, 이제 막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밤하늘은 어떻게 다가가려나요. 어떻게 스며들 수 있으려나요. 지금 초중고등학생인 아이들 마음에 새겨지는 밤하늘은, 그리하여 뒷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올려다볼 밤하늘은, 그리고 이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아서 자기 아이와 함께 밤마실을 하며 올려다볼 밤하늘은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 어떤 삶이 되려나요.

 

 

 어제 후배 혼인잔치가 있어서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ㅋ호텔에 갔다 오는데, 그 닭장차 가득하고 자동차 붐비는 시청 앞 큰길가 나무에도 매미가 우렁차게 울고 있었습니다. 용케 일곱 해를 땅속에서 깃들이다가 밖으로 나와서, 가지치기에서 살아남은 방울나무에 올라가 울고 있구나 싶어서 대견합디다. 그렇지만 이 매미를 우리 동네와 이웃 동네 골목길에서는 못 봅니다. 매미소리를 못 듣습니다. 집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에 어여삐 꽃을 키우고, 어렵사리 열매나무도 키우고 있지만, 매미까지 깃들일 만한 깊은 땅이 없습니다.

 

 골목길로 가지를 휘휘 뻗고 있는 대추나무를 보고, 아직 푸른 풋대추를 보아도, 매미는 못 봅니다. 헐리고 없는 빈 집터 시멘트 바닥 틈바구니를 비집고 피어난 풀꽃은 보아도, 매미가 비집고 살아날 틈바구니는 없습니다. 어쩌면 인천 매미는 아직 깨어나 울 때가 아닌가. 아니면, 이곳 인천은 매미가 살 수 없는 ‘동북아 허브도시’인가.

 

 

 - 5 -

 

 붉은 벽돌담 가장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풀꽃을 봅니다. 송림4동이었을까, 그리 멀지 않은 앞쪽으로 재능대학교가 보이고, 재능대학교 앞쪽으로 골목집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올려세우는 모습이 빤히 보이는 언덕배기 골목에 서면서, 바로 뒤쪽에 깃들은 옥수수밭을 봅니다. 이곳 골목집 할머니는 옥수수를 가지런히 심었군요.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옥수수밭 뒤쪽에 긴걸상을 놓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은 걸상에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옥수수잎에 가려서 목소리만 들리지만, 두 분 쉼을 함부로 사진으로 찍으면 안 될 듯해서 마음으로만 담고, 잠깐 다리쉼을 한 다음 세무서 뒷길로 이어지는 골목을 찾아서 내려갑니다.

 

 이제 큰길로 나올 즈음, 구멍가게 일을 돕는 아들내미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쓴소리로 나무라는 아주머니 목소리를 듣다가, 부동산 앞에 쓰레기통에 흙을 담고 접시꽃을 심은 모습을 보다가, 큰길을 건너 고등학교 뒷문에 넉넉히 심긴 해바라기꽃 냄새를 맡다가, 금곡동 골목집 앞에서 세발이 세워 놓고 사진 찍고 있는(자기 집을 찍는) 젊은 분을 보다가, 집으로 부지런히 돌아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골목길, #골목, #골목여행, #인천,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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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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