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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치'가 브랜드 김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족 맛'은 '외식 맛'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손맛 가짓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인간미(人間味)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다. 꺼벙이, 고인돌, 맹꽁이 서당 등 추억의 만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상도 그 중 한 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만화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인간미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맛'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기획시리즈 '만화미(味)담 오미공감'을 마련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가난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생선장사였다.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발품을 팔고 또 팔았다. 소년도 골목골목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신문배달을 하면서 결심을 다지고 또 다졌다. 내가 신문을 넣는 동네에 언젠가 꼭 살겠노라고. 이 골목길 역시 소년의 신문배달 코스였다. 그리고 소년의 꿈은 이뤄졌다.

지금 그 앞에 서 있다. 아름다운 집이다. 대문부터 남다르다. 단독주택 철대문에서 느껴지는 것이 완강함이라면, 소박한 크기의 나무문에서는 따뜻함이 풍겨난다. 하얀색 나무문에 부딪친 따가운 여름 햇살이 눈부시다. 대문 앞에 '빨간 자전거'를 그려주고 싶은 집, 9일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김동화 만화가(58·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자택에 방문했다.

만화가 김동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만화가 김동화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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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리 김수정과 나눠먹은 호빵 맛 잊을 수 없어

대문을 열자 목단나무 그늘이 먼저 눈에 찬다. 옹글게 붙어 있는 담쟁이덩굴들 사이로 화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창문 외벽도 꽃단장을 했다. 집주인이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꽃타일'이다. 단단한 흙길이 자연스럽게 방문객을 인도한다. 곳곳에서 집주인의 애정과 동시에 섬세함이 느껴졌다. 조심스러워졌다.

- 회장님… 어느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회장님은 잠깐 스쳐 가는 직함이고… 화백이라고도 많이들 부르는데, 만화가가 그림만 그리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냥 선생님이 가장 편하겠네요."

역시 섬세한 대답이었다. 선생의 감성 또한 소년의 그것만큼이나 섬세했다. 그는 자신이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풀어냈다.

"막 소나기 쏟아질 때 아스팔트에 튕겨 올라오는 물보라들, 얼마나 환상적인가요. 그 때 비닐 우산이든 고급 우산이든 우산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행복합니까. 헌데 아무리 우산 속에 있어도 얼굴 빼고 다 젖게 마련이잖아요. 그럼 집에 돌아와 빗물을 닦아낼 때, 보송보송한 수건에서 나는 비누 냄새, 또 옷 갈아입고 타먹는 커피,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지요."

만화가 김동화 선생
 만화가 김동화 선생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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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모금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커피맛'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원고료가 나오면 다방에서 신청곡을 들으며 한 잔, 군대 첫 외출 나오자마자 다방으로 달려가서 한 잔, 아름다운 까페 창가에서 한 잔, 그 때마다 "짜릿짜릿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선생은 "지금도 다방 커피가 제일 좋다"고 했다.

커피·프림·설탕에 '분위기'까지 풀어 넣어야 제 맛이란 설명이다. 이 정도면 커피 맛 그 자체보다 분위기를 즐긴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실제 "짝퉁"이라고 놀렸던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둘리' 김수정 선생이다. 두 사람은 동갑에다가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통하는 바는 또 있었다. 바로 가난이었다.

"신인 만화가 시절 참 어려웠어요. 주인집 문간방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손님이 와도 어디 접대할 마땅한 장소가 있어야 말이죠. 돈 없고 친구는 왔고, 방 하나에서 아내와 애들은 복작복작하고…. 그렇다고 커피값도 없는 처지에 다방에 갈 수가 있나. 공동묘지를 가는 겁니다. 우리 집 근처에 있었던 공동묘지에 식사 겸 주전부리 겸 호빵 사서 가는 거죠. 묘지 앞에 앉아 만화 이야기 실컷 하고… 우리 집 응접실은 공동묘지였던 셈이죠. 허허."

80년대... 만화가들의 무덤, 그리고 르네상스

만화가들에게 '무덤'같은 시간이 또한 80년대이기도 했다. 독재정권은 "검열이란 아주 못된 짓"을 했고, 걸핏하면 언론은 '불량만화' 운운하며 맞장구를 치기 바빴다. 무슨 사고라도 났다 치면, '만화 원죄론'을 토해냈다. 요즘 '컴퓨터 게임 배후론'처럼 말이다. "만화 보고 흉내냈지?"가 먹혀들던 시절, 만화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누르면 누를수록 그만큼 골고루 퍼져나갔기 때문일까. 한국만화 르네상스가 활짝 꽃핀 시기 또한 1980년대라는 점은 역설적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는 '80년대 만화사'를 통해 "80년대는 한국만화 역사상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만화와 사회가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그 다양한 방식 모두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연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당시 활동했던 작가들의 면면만 잠깐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길창덕·김수정·윤승운·신문수·이두호·이상무·이현세·이희재·황미나·허영만 등 쟁쟁한 작가들이 즐비했다. 한국만화사에 획기적인 사건도 일어나기도 했다. 1982년 한국 최초로 창간된 만화전문잡지 <보물섬>, 김동하 선생에게는 '요정 핑크'란 작품으로 명성을 안겨준 잡지이기도 했다.

만화가들의 <보물섬> 창간 축하메시지 (진이의 날자 우리만화 블로그)
 만화가들의 <보물섬> 창간 축하메시지 (진이의 날자 우리만화 블로그)
ⓒ blog.naver.com/yang3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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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섬에 대한 향수가 아직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맛이 그리워 그런 걸까요.
"순한 맛이라고 할까요. 검열이 있기도 했지만, 요즘에 비하면 당시 만화들은 아주 많이 순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시대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표현들이 굉장히 강해요. 그럼 자꾸만, 자꾸만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꼭 달아야 좋은 맛은 아니죠. 맛에 오미(다섯 가지 맛)가 있는 것처럼, 인간도 오미를 갖고 있으니까요. 쓴맛이 있어야 단맛이 살아나는 것처럼, 사랑이 있는가 하면 미움도 있습니다. '빨간 자전거'에 노인부부가 서로 싸우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증오나 저주가 없으니까, 독이 없는 맛이 바로 인간미가 아닐까."

- 말씀을 듣다보니, 인공조미료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인공조미료는) 과정을 생략한 것이죠. 맛을 가루로 만들고 표준화시킨 거잖아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과정이 없으니, 맛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죠. 옛날 만화에서 가장 심한 표현이 뭔지 아십니까. '이 녀석'이었어요, '이 녀석'(웃음). 지금은 온갖 욕을 해야 '허 참, 심하구나' 하잖아요. 요즘 작가들이 거칠다거나 못마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까지 안 강해도 되는데, 감동이 필요할 때도 감각만 앞세우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돈을 그리면 돈밖에 안 남는다"

만화가 김동화 선생
 만화가 김동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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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가 생겼다. 선생 말 그대로 "지금이야 만화를 비웃는 이가 바보 취급받지만, 만화를 칭찬하면 바보 취급받던 때"가 바로 80년대였다. 만화가로 살아가기 더욱 어려웠을 시절, 그만큼 '조미료'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더 힘들었을 텐데.

왜 그 때 그 만화는 지금보다 '순한 맛'으로 기억될까. 다시 '공동묘지 응접실'로 거슬러 올라갔다.

"참 그 때, 만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김수정씨가 한 말이 있는데요. '작품을 하면 명예도 남고 돈도 남는다. 그런데 돈을 그리면 돈밖에 남지 않는다'. 작품이냐 아니면 상품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림 그리는 자세나 시간부터 대사 한 마디 쓰는 것까지,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다작한 작가 이름은 기억나는데, 특별한 작품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자기 작품에 충실하면 작가 이름 이전에 그 작품이 먼저 생각나게 됩니다. 길창덕이란 이름보다 먼저 '꺼벙이'가 떠오르지 않나요? 김수정보다는 '둘리'가, 신문수보다는 '찌빠'가…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나는 '돈을 그리면 돈밖에 남지 않는다'는 말,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그 때가 지금도 스승이고 선생님입니다."

바보 같은 물음표였다. 단순히 '그 때 그 만화'라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이었기에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고, '조미료'의 유혹을 뿌리친 작품이니 '순한 맛'을 갖고 있는 것 또한 당연했다. '돈맛'에 예민했던 요리사들은 그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잊혀졌을 뿐이다. 그리고 '손맛'이 살아있는 좋은 작품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빨간 자전거' 김동화 만화가의 세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태그:#만화, #김동화, #김수정, #핑크,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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