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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신임 대통령과 노무현 전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며 환호에 답하고 있다.
 이명박 신임 대통령과 노무현 전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연단을 내려오며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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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기록유출 논란을 둘러싼 '이명박 청와대'와 '노무현 봉하마을'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외유 중임에도 이틀 연속 노무현 전 대통령측에 대해 '불법 행위' 의혹을 제기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9일 "봉하마을로 무단 반출된 별도의 'e-지원' 시스템은 청와대가 아닌 제3의 민간회사가 발주하여 청와대 내에서 작업한 뒤 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한 "제3의 민간회사는 차명계약을 할 만큼 일반적인 회사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페이퍼컴퍼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은 "국가기록원 측이 조만간 봉하마을을 방문해 확인하면 될 일인데도, 근거없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직 대통령을 흠집내는 것은 청와대의 야비한 정치공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양측의 주장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서 사실관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확인되느냐에 따라 어느 한 쪽은 정치적·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것이 불가피하다.

서로 상반된 주장과 해석이 어지럽게 맞서있는 이번 소동의 쟁점을 3가지로 정리해본다.

[쟁점 ①] 봉하마을에 있는 'e-지원' 자료는 원본인가, 사본인가

김경수 비서관은 "우리가 가져온 것은 'e-지원'의 전자문서 사본이고, 원본은 대통령 기록관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청와대는 이전 정부가 'e-지원' 시스템에 탑재되었던 하드디스크 장치, 즉 원본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9일 "전 정부에서 금년 1월말부터 2월 중순까지 청와대 전산실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 별도의 전산시스템을 설치한 후 기존 'e-지원' 시스템과 동일한 시스템을 복제했고, 현 정부 출범 전에 외부로 무단 반출했다"며 "봉하마을에서는 전 정부 'e-지원' 시스템에 탑재되었던 원본 하드디스크와 별도 구축된 'e-지원' 시스템 전체를 모두 반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기록원의 공식적인 설명도 청와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책기획실의 조이현 연구관은 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e-지원' 서버 데이터를 청와대 기록관리시스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오려내서 한 게 아니라 카피만 해주고, (원본 데이터가 남아있는) 하드시스템을 별도의 'e-지원' 시스템에 박아서 봉하로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관을 담당했던 직원에게 확인했더니, (기록원에 데이터를 넘긴 뒤에도) 'e-지원' 시스템 서버에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경수 비서관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e-지원'은 초기화시키고 그 안에 인수인계시스템을 담아서 현 청와대에 넘긴 것"이라며 "우리가 사본을 뜨고 기록원에 간 뒤에 초기화시킨 것인데, 그 뒤 'e-지원' 서버에 뭔가 남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e-지원'을 통한 기록열람 서비스가 안 된다고 했기 때문에 사본을 가져온 것"이라며 "하드디스크를 가져온 적이 없다, 국가기록원이 내려와서 확인하면 바로 밝혀질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가기록원 내에서도 '공식 설명'과는 다른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얘기하듯이 전 정권이 대통령에 관한 기록을 전부 넘기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통령기록관은 원본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은 기본적으로 업무과정에서 생성된 파일은 물론 진행과정 등이 모두 데이터로 남고, 패키징으로 묶어서 모두 기록관리시스템으로 이관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래한글'로 작성된 문건은 그대로 넘기면 원본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PDF 영구보존파일로 변환을 하는 패키징 작업을 거쳐 영구보존 관리시스템으로 이관한다는 것이다.

[쟁점 ②]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정법을 위반했나

지난 2005년 2월 참여정부의 강태영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이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e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참여정부의 강태영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이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e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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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측 주장대로 봉하마을에 원본이 있을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물관리법 등의 실정법을 위반한 게 명백하다. 그러나 원본이 아니라 사본일 경우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을 확대 해석해 실정법 위반 여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경수 비서관은 대통령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온 경위에 대해 "법률상 전직 대통령은 재임중 생산한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지만, 기록이 내부 전산망인 'e지원'에 전자문서 형태로 남아있어 1년간 열람서비스가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국가기록원측 설명을 듣고 취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현재 국가기록원은 전직 대통령 전용 열람시설(성남 대통령기록관 내)을 이미 설치하였고, 방문시 대통령기록물 영구관리시스템을 통해서 열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다만 기록물 생산 당시의 'e-지원' 시스템과는 열람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측은 이어 "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국가소유의 대통령기록물을 무단유출하여 사적인 열람권 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법률을 어기면서까지 특권을 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경수 비서관은 "모든 기록을 'e-지원'을 통해 봤는데, 퇴임 이후에는 다른 시스템으로 보라는 것은 기록물법 취지에 안 맞는다"며 "준비부족으로 안 된다는 것인데, 현재까지는 (열람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사본을 통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록을 볼 때마다 성남으로 오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정말 그렇게 요구하는 것인가, 법 취지를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과거 정권은 기록을 하나도 안 남기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만 남겼지만 노무현 정권은 모두 남겼다"며 "지정기록물까지 만들어서 남기지 않았느냐"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정작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볼 수가 없는 시스템"이라며 "자기들이 시스템을 만들어서 특허까지 받았는데 못 본다고 생각해봐라, 심정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쟁점 ③] 봉하마을은 청와대에 양해를 구했나

위법성 논란을 떠나, 노무현 전 대통령측이 기록물을 봉하마을에 가져가는 것에 대해 청와대측에 양해를 구했는지, 또 양해를 구했다면 왜 이 문제가 불거졌는지도 의문이다.

우선 청와대 측은 "청와대나 국가기록원이 아닌 제3의 장소로 국가 중요기록물을 가져간다는 것은 협의하거나 양해할 사항이 아니며, 이 건과 관련 현 정부는 양해한 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봉하마을의 말은 다르다. 김경수 비서관은 현 청와대측에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인수위 시절 (이명박 정권은) 청와대 업무 인수인계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사본 열람 문제 협의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판단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3월말 정상문 전 정권 총무비서관이 김백준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만나서 설명했고, 대책마련을 요청했다"며 "그 뒤에도 잘 처리가 안 되는 것 같아서 문재인 전 청와대비서실장이 류우익 대통령실장에게 다시 요청했는데, (청와대측은) '무조건 반환하라'는 말만 해왔다"고 말했다.

김경수 비서관은 특히 "어떻게 열람토록 해줄 것인지 대책을 요구했고, 청와대는 그에 대해 설명을 해주겠다고 했다"며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언론을 통해 퍼트리는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청와대의 입장은 강경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금주 내에 국가기록원장을 비롯한 관계자가 봉하마을을 방문하기로 하고 일정을 협의 중"이라며 "다시 한번 무단 반출 자료와 시스템의 반환 청구를 할 것이고, 반응을 본 뒤 대응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럼에도 그동안에 저질렀던 부분은 명백하게 불법"이라며 "(기록물 등을) 반환하더라고 불법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해, 향후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했다.

청와대 전경
 청와대 전경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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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부터 쌓인 불신과 반목이 근본 원인

결국 이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측과 노무현 전 대통령측 사이 골깊은 불신에서 비롯됐는 것이 정가 주변의 대체적 시작이다. 양측은 이미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반목의 불씨를 키워왔다.

당초 1월 7일로 예정돼 있던 청와대 비서실의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보고가 인수위측 요청에 따라 갑작스럽게 보류됐고,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가 인사파일과 문서·자료를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는 바람에 장관 검증 등에 차질을 빚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자료 협조를 해주려고 했지만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거부했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권 취임 후에도 양상은 비슷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15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청와대 들어와 열흘이 지나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청와대 내 전산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또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전 정권의 '비협조'를 타박했다.

전 정권의 업무인계 소홀로 새 청와대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무마비 상황에 처할 뻔했다는 것이다. 해석에 따라선, 전임 정권이 후임 정권을 '골탕먹이기' 위해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나갔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전 정권측은 "차기정부 업무에 참고가 될 만한 문서자료 5만7천건, 정책백서 77권, 업무매뉴얼 522권을 현 정부에 인계했다"며 "현재 청와대가 필요한 기록은 대통령기록관에서 다 볼 수 있다"고 일축했다.

청와대가 'e-지원'에 있던 자료를 봉하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기존 청와대 내 전산시스템을 '복구'하는 과정에서였다.

만약 양측이 협조적 관계였다면 전직대통령의 '기록 보유'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고, 얼마든지 원만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태그:#국가기록물관리법,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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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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