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찰 '촛불 종교인' 형사처벌 검토

민심 외면 '땜질 개각'

다음 '광고주 압박글'삭제 논란

이 대통령 "촛불시위 계속 땐 한국경제 해로워" (<한겨레>7월 8일자)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가슴이 갑갑해진다. 60일이 넘는 촛불집회에도 정부는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강경해졌다. 여전히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야 도무지 촛불을 끌 수가 없다.

 

지난주 나는 총 세 번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기말고사와 과제를 핑계로 6월 10일 이후 단 한 번도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그새 날은 무더워져 7월 5일에는 가두행진을 하는 내내 땀이 뻘뻘 났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두 달이 넘게 이어져 온 시위에 지칠 법도 한데 더욱더 발랄해졌다. 집회 현장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반면 '먹통' 정부에 대한 분노는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분노였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미국산 쇠고기, 너나 먹어 이명박', 길바닥에 마우스를 질질 끌고 가는 시민들을 보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청와대로 향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 퇴진한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외치는 것처럼 만약 이명박 정권이 퇴진한다면 과연 그 '대안'은 무엇일까. 나 역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에 누구보다도 분노했고,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경제성장'과 효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 쉬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정권퇴진'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첫째,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이명박 정권을 대신할 '대안세력'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국민이 보여준 '잘살고 싶다는 욕망'이 여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후보가 내세웠던 경제성장은 '잘 살고 있는 상위 5%가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국민은 압도적인 표차로 그를 당선시켰다는 데 있다. 물론 국민이 속았을 수도 있다. 막연히 CEO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잘 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서 그를 뽑았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그를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으며, 그가 취임 후 내놓은 정책들 역시 후보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국민은 '도덕성'보다는 '경제'를, 그것도 '소수만이 잘살 수 있는 경제'를 택했다. 그 속에는 '분배'보다는 '성장'에 대한 욕망, 그 성장의 혜택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경제성장을 향한 욕망... 제2, 제3의 이명박 나올 수도

 

이번 촛불집회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쇠고기 문제', '의료민영화'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때로는 우리의 '건강', 나아가 '생명'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경제대통령' 이명박을 택했던 국민과 촛불을 든 국민이 다른 사람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번 촛불집회가 쇠고기 문제에만 국한되지 말고 비정규직 문제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진보진영의 기대처럼 '당장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이 쇠고기 문제와 같은 저항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제성장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되는 한미 FTA의 경우 이라크 파병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들이 말하는 국익이 소수 기득권 계층의 이익이라는 것을 간과한 채 말이다.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 이후의 지도자를 선출한다면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이야 이명박 대통령만 물러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지만 또 다시 '경제를 살리겠다'는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면 제2, 제3의 이명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내가 이처럼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제 촛불을 끄고 '촛불 그 이후'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다. 지난 두 달간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경제성장이 절대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치적 무관심과 방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며, 그동안 무한경쟁에 내몰려 보지 못했던 '타인'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국민은 '승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촛불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할 때다.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범국민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다 함께 잘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경제논리에 매몰되었던 혹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 역시 필요할 것이다.

 

난치병 걸린 대의민주주의, 대대적 수술 필요하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일 역시 중요하다.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선거와 정당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근원적 한계가 드러났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촛불을 쉽게 끌 수 없는 이유 역시 정치력을 믿을 수 없어서, 이명박 정부를 대신할 대안세력을 찾을 수 없어서다.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인들이 국민의 이익보다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하면 파벌을 형성하여 정쟁을 일삼는 등 무책임한 정치를 해도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4, 5년에 한 번 투표해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의민주주의는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한다. 또한 이번 집회를 통해 온·오프라인 공간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국민이 언제까지고 촛불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며, 촛불을 들지 않는, 촛불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 역시 존재한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 역시 한계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처럼 정치판이 '개판'이 된 데에는 국민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방관으로 인해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를 통해 경험하게 된 직접민주주의를 '이상적인 것', '낭만적인 것'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와 함께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난치병에 걸린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시급하다.

 

조금 더디더라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물론 앞서 언급한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의 욕망과 마찬가지로 대의민주주의 역시 한 순간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의민주주의를 가만히 둘 수는 없다. 이는 내가 '비폭력시위'를 주장하는 이유와도 같다. 조금 더딜지라도 더 많은 국민의 더 많은 공감을 얻어야 더 많은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겪으면서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촛불집회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경찰의 대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광장에서 만큼은 역사의 시곗바늘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민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촛불의 에너지를 '더 많은 민주주의'위한 노력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태그:#촛불집회, #촛불시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