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옥상에 같이 올라가 볼까?”

“지금요?”

“응, 오늘 아침엔 도라지꽃도 피었어요!”

매일 이른 아침 혹은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저녁때쯤이면 남편은 나를 옥상으로 이끈다. 나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우리 집 소박한 화원으로 향한다. 나는 매일 이 작은 화원에 초대된다. 이곳은 우리의 화원, 이 소박한 화원을 천국의 화원이라 이름 한다.

이곳에 이사 온 이후, 마땅한 장소가 없어 옥상에다 작은 화원을 만들었었다. 우리의 소박한 화원에 이것저것 심어 놓은 것이 때를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매일 새로우니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얻는다. 이 작은 화원에서 얻는 기쁨은 생명의 경이로움이다.

지난 4월에 옮겨다심은 포도나무는 죽은 듯 하던 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나날이 잎이 무성해지더니 깨알 같은 포도 알을 달기 시작해 이젠 제법 커서 볼 때마다 신기하고 사랑스럽다. 해바라기도 해처럼 샛노랗게 피어나 화원을 더 밝게 하고, 별로 예쁘지 않을 것 같아 한쪽에다 버리듯 심어놓았던 분꽃은 또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 볼 때마다 진분홍 웃음을 보낸다.

허브도 몇 가지 심었는데 그 잎에서 나는 향기가 모두 다르다. 좋아하는 꽃이랑 유실수들을 심어본다고 매실나무, 사과나무, 석류, 모과 등의 여러 모종을 해놓았던 것들은 더러는 죽고 더러는 살아 남아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나중에 널찍한 화원이나 밭이라도 생기면 그 넓은 곳에서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신나게 자라도록 해 주고 싶은 것들이다.

옥상 한쪽 작은 화단에는 은행나무, 포도나무, 모과나무, 매실나무 등 우리 집 화원에서 매일 보고 싶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봉숭아꽃, 해바라기꽃, 분꽃, 도라지꽃, 채송화, 호박, 참외 등 여러 가지 식물들이 매일 자라고 있다. 매일 새롭다. 그 비좁은 화단에서 그것도 화분 속 좁고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작은 화분 속에서 힘찬 생명력으로 자라는 것이 참 예쁘다.

언젠가 소박한 땅이 생기면 마음껏 뿌리 내리고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이것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다. 이 작은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는 지금 한창 물이 올라 포도알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 볼 때마다 새롭다. 거봉과 머루 포도가 서로 이웃해서 따가운 햇볕을 받고 비를 맞으며, 낮과 밤을 인내하면서 자라고 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멀리 내다본다는 것이 아닐까.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며 멀리 내다본다는 것이다. 급하지 않게 돌아갈 수 있는 사람, 인내하며 희망을 심고 사랑을 심는 것이다. 내일을 심는 것이다. 나무를 심고 나무를 키우다보면 겸손을 배우게 된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알고 우리의 생애의 피고 짐을, 곧 생성과 소멸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앞에 더 겸허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남편은 벌써 우리 화원의 꽃들과 나무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물 조리개로 물을 준 후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오늘은 분꽃이 활짝 피었다고 알려주고, 비가 안 와 시들시들하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물을 흠뻑 주고 왔다고 하고, 전에 심었던 접시꽃이랑 여러 가지 꽃씨들이 왜 안 자라나 했더니 새들이 날아와서 파먹고 가버렸다고 전해 준다.

어떨 땐 여러 가지 씨나 모종을 했는데 막상 자랄 때 표시를 안 해두어 무슨 나무인지 한참을 생각해야 할 때도 있다. 초라한 듯 보이지만 생명의 경이로움을 일깨우는 이 작은 화원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지금은 햇볕과 바람과 비가 키운 꽃들과 포도 나무에 열매가 한창이다.

하늘 아래 옥상 한켠에서 오늘도 꽃이 피고 꽃이 지었다 나날이 무성해져 열매를 맺기까지 하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이곳은 바로 우리 집 화원, 기쁨의 화원, 천국의 화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