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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조선중앙TV 서울출장소인가'

 

4일,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1일 방영된 KBS <시사기획 쌈>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촛불, 대한민국을 태우다'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이 촛불집회와 87년 6월 항쟁을 동일시함으로써 "6월 항쟁 때처럼 국민에게 반정부투쟁에 나서라는 선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KBS가 정부 전복투쟁 선동대의 맨 앞줄에 나선 셈"이라고 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KBS가 아니고 조선중앙TV 보는 느낌"이라는, KBS 게시판에 올라온 한 시청자의 반응을 전하면서 사설의 제목을 'KBS는 조선중앙TV 서울출장소인가'라고 뽑았다.

 

<조선중앙TV>는 북한의 국영방송이다. <조선일보>는 KBS를 북한 국영방송 서울출장소에 빗댔다. 의문형 어법이라지만 <조선일보>는 KBS에 대해 반국가방송 아니냐는 식으로 '낙인'을 찍었다. 아무리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의 시절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가기간방송이 북한 국영방송의 서울출장소와 같다면 이는 아직도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국가보안법 처벌 대상이다. 북한 국영방송의 서울출장소 같다면 이는 북한 체제의 찬양·고무 정도가 아니라 '북한체제'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언론탄압이면, <조선>이 하는 건 뭔가

 

여기에서 <조선일보>가 문제 삼은 <시사기획 쌈>의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조선일보>와는 '다른 시각'과 '가치 판단'에 따라 만든 방송 프로그램을 <조선일보>가 정치적 시각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북한국영방송의 서울출장소 아니냐는 식의 '낙인'을 찍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과 다른 시각과 견해를 표출하는 언론에 대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험악하고 불순한 색칠을 한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는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편 네티즌들에 대한 공격과는 딴 판이다. 조중동은 네티즌들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부당한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네티즌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광고주를 압박해 조중동을 부당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와 다른 시각과 견해로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KBS를 북한 국영방송 아니냐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조선일보>의 그런 매도에 비하면 네티즌들의 광고주 불매운동은 오히려 순진한 편이 아닌가.

 

검찰이 만약 이들 네티즌들을 수사한다면, 검찰은 당연히 국가기간방송인 KBS를 북한국영방송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하고, 그 신뢰와 명예를 크게 부당하게 공격해 국가기간방송의 정상적 업무 수행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준 <조선일보>도 같이 수사해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국민들을 선동해 정부를 전복하려 한, 북한 국영방송의 서울출장소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KBS 구성원 다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당장 수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조선일보> 혹은 그 반대로 KBS 제작진을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는 <조선일보>의 이런 공격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KBS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 동의할 수 없고,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더라도 "북한 국영방송의 서울사무소 아니냐"는 식의 이념적 덧칠로 매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무리 보장된 사회라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는 조중동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에 대해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결코 없다. 또 <조선일보>의 이런 사설과 글들이 인터넷 등에서 삭제돼야 한다거나 실려서는 안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의 내용은 민주주의의 다양성과 다원성, 그리고 언론의 자유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거의 범죄행위와도 같은 내용일지언정 그들이 그런 주장을 편다면 그 또한 발표의 권리는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할 것은 조중동이 이런 자신들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누리자면 다른 언론사는 물론 시민들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존중하는 최소한의 양식과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관련 인터넷 게시글 삭제나 형사처벌 문제도 마찬가지다. 조중동은 이들 시민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광고주들을 압박해 자신들을 탄압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들 불매운동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다른 언론들에 대해서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 의혹을 제기했던 <PD수첩>에 대한 광고주 불매운동 때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 때 불매운동과 지금 불매운동의 차이나, 사안의 본질과 성격의 차이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접자. 쉽게 말하자면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시민들의 광고주 불매운동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같은 운동을 제안하고, 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얼마든지 허용돼야 마땅하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모두 국민의 것

 

황우석 논문 조작의혹 사건 때 시민들의 MBC 광고주 불매운동과 그 압력은 분명 자유언론에 대한 큰 위협이었다. 그들의 캠페인과 그들을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의 의사표현을 검열하거나 사법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것은 시민들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켜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조중동이 광고주 불매운동에 대해 비판하고, 그 적법성 여부까지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그같은 발언(표현)과 주장 자체가 봉쇄되고, 검열되고, 삭제돼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적어도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면 말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조중동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있어서 유보할 수 없는 기본권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는 조중동과 그 부류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주장과 발언까지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 아니겠는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국민 모두의 것'임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명령이기도 하다.


태그:#표현의 자유, #조중동 불매운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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