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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미술 차가운 미술>
▲ 표지 <뜨거운 미술 차가운 미술>
ⓒ 인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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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렸을 때 미술 전시회에 가본 적이 있다. 미술 작품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도움이 되겠지’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전시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불쑥 들어가 전시 작품을 보니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만 멀뚱대다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와 함께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도 당연지사.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지금, 예전처럼 아이들 데리고 미술관에 갈 일은 없다. 어쩌다 미술 숙제라고 전시회 관람하고 전시회 팸플릿 가져오라는 숙제가 있더라도 엄마, 아빠 앞세우고 가기보다는 친구들끼리 다녀오는 걸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숙제라서 억지로 가는 거니 전시회 보고 온 느낌이 별로 없기는 어렸을 때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싶다.  

20여 년을 갤러리 마니아가 되어 살아온 이일수 하나코(하늘을 나는 코끼리) 관장이 미술관 나들이를 위한 안내서를 펴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갈 수 있는 미술관, 특히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 미술관을 찾고자 하는 엄마, 아빠들의 귀에 쏙쏙 들어올 수 있도록 쉽게 쓴 책이다.

책을 읽으며 문득 답사 광경이 떠올랐다. 이따금 원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역 문화유산 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몇몇 뜻이 맞는 역사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 문화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부터 초등학생까지 참가층이 다양하다.

답사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은 답사보다는 다른 곳에 더 관심이 많다. 폐사지에 덩그마니 솟아있는 석탑보다는 풀밭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풀벌레를 더 신기해 하고, 치악산 구룡사 건물의 양식보다는 올라가는 길 웅덩이에 오물조물 모여 움직이는 올챙이를 더 좋아한다.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답사는 그래서 어른들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유물과 유적에 관심이 많은 건 어른들뿐이고 아이들은 살아 움직이는 자연물에 더 눈길을 준다. 어른들은 숙제라도 하듯 답사 설명을 열심히 듣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미술 전시회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들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작품에 눈길도 주고 관심도 보이지만 아이들은 눈길보다 손길을 더 주고 싶고, 순서대로 보기보다는 전시장을 가로질러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거운 미술 차가운 미술>의 저자 이일수는 20년 갤러리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는 미술관 나들이의 노하우를 옆에서 이야기해주듯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미술관 나들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두 번째 장에서는 미술관에 숨겨진 비밀 이야기를, 세 번째 장에서는 실제 미술 작품 감상의 노하우를, 마지막 장에서는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미술 작품의 세계를 보여준다.

쉽게 쓴 책이라고 해서 후딱 읽고 덮어버릴 책은 아니다. 아이 손 잡고 미술관 갈 계획 세우고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굳이 아이 데리고 미술관 가지 않더라도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전시장 벽은 왜 하얀 색이 많은지, 전시장은 왜 창문도 없이 조명을 켜놓는지, 전시장에 가서 도록은 사는 게 좋은지, 박물관과 미술관과 화랑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등 궁금증이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풀린다. 

청계천 촛불집회 현장에서 보이는 35억원짜리 미술품
▲ <클래스 올덴버그 작품 스프링> 청계천 촛불집회 현장에서 보이는 35억원짜리 미술품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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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미에 소개된 전시관 밖 야외에 세워진 미술품 소개에서 눈에 번쩍 띄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2008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촛불 시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35억 원짜리 미술품이다. 청계광장에 설치된 조형물은 클래스 올덴버그란 작가가 <스프링>이란 이름으로 만든 작품으로 35억 원짜리라고 한다. 

청계천(광하문 사거리 쪽)에 놓인 이 작품은 처음에는 대서양의 조개를 디자인했다 하였는데, “서울 청계천에 한 번도 안 와 본 작가가 무슨 공공 미술 상징 조형물이냐”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다슬기’를 조형화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는 헤프닝이 있기도 했습니다.<책 중에서>

미술 작품은 이름난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계천 촛불 시위 현장에도 있고 우리들 생활 주변에도 있다. 수십 억을 넘나드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의 애환을 더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도 많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를 굳이 미술관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술관에 가야 할 일이 있다면 이 책 읽어보고 가는 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 작품 속에서 수많은 이들의 다양한 숨결을 되새겨보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이일수/도서출판 인디북/2008.5.17/11,000원



뜨거운 미술 차가운 미술

이일수 지음, 인디북(인디아이)(2008)


태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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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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