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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 말은 불변의 진리였습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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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중에서 사람이 왜 '흙에서 태어난다'고 했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 말은 진리였습니다. 웬 철학자 같은 얘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난 1일 저는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의문점 중의 하나가 진리라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7월의 첫째 날, 그동안 비로 인해 두 번이나 연기됐던 조상묘를 새롭게 마련한 집안의 선산으로 이장하는 대공사를 했습니다.

국가 대프로젝트인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서 몇 대를 이어 살아오다 지난 4월 정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차린 지 두 달여 만에 다시 고향땅을 찾았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향땅에서 편히 잠들어 있던 조상묘를 이장하는 이날 가족과 친척들은 물론 집안 어른들까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 이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묘 이장하기 전에 산신제는 꼭 지내야 되는 겨"

허리만큼 큰 풀숲을 헤치고 가장 선대조 묘부터 이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이장 작업이 곧 시작되려 한다 허리만큼 큰 풀숲을 헤치고 가장 선대조 묘부터 이장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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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서둘러야 혀. 날 더워지기 전에 시작해야지."

조상 묘를 이장하기로 한 1일 아침 6시. 아버지가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묘를 이장하기 전에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며 술과 명태포 등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너무 이른 거 아녀유? 어차피 업체(이장 전문업체)에서 도착해야 시작하잖아유."
"그렇긴 헌데 장비 도착하기 전에 가서 산신제 올려야 하니께 그려."
"아부지랑 둘이 지내유? 친척들도 온다고 했잖아유?"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께 먼저 산신제 올리고 있으믄 되는 겨."

말을 마치고 차를 몰아 조상묘가 있는 선산으로 향했습니다. 산 아래에 차를 주차하고 묘가 있는 산으로 오르려고 하는데 무성하게 자란 풀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풀이 사람 키만 한데 어떡하쥬?"
"글쎄, 헤치고 가 보야지."
"낫도 없는디…, 뱀도 많을 거 같고."
"겁도 많네. 허긴 아부지 지난 번에 사진 찍으러 왔다가 뱀 보고 깜짝 놀라긴 했는디 괜찮어."
"에? 왜 겁줘유. 더 못 가게."
"아부지가 먼저 갈 테니께 따라와."

용감하게 풀숲을 헤치고 나가시는 아버지를 뒤따라 산소에 도착했습니다. 부끄럽긴 했지만 지난해 이곳에 성묘를 왔다가 하루에 서너 마리의 뱀을 본 뒤로 노이로제가 걸려 '뱀' 소리조차도 듣기 싫은 상태여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퍼뜩 산신제 준비혀."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술과 음식을 차린 뒤 아버지와 둘이 산신제를 올렸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자 업자들이 분주해진다. 서류를 꼼꼼히 챙기는 업자와 관에 모실 유골을 수습하는 업자가 각자 일할 준비를 한다. 이들은 전문가였다.
▲ 본격적인 이장 공사 시작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자 업자들이 분주해진다. 서류를 꼼꼼히 챙기는 업자와 관에 모실 유골을 수습하는 업자가 각자 일할 준비를 한다. 이들은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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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막 끝내고 고개를 들어 아직까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향땅을 둘러보고 있는데, 마을로 들어오는 길로 막 들어서고 있는 장비(굴착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비가 선산에 도착하고 이내 본격적인 묘 이장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 안 계신데요? 흙 밖에 없네요"

조상님 묘를 파서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 하지만 100년이 넘은 이 산소에는 약간의 유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흙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 유골 수습하는 모습 조상님 묘를 파서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 하지만 100년이 넘은 이 산소에는 약간의 유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흙으로 돌아가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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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장하는 묘는 선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로 대부분이 100년이 넘은 묘들이었습니다. 이장공사를 하는 업체 관계자들도 모두가 한 입으로 말을 합니다.

"유골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100년이 넘었다면 아마 흙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요? 하긴 여기가 자리도 좋고 땅도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겄네유."

이날 계획된 열 두기의 묘 중 가장 선대조 할아버지의 파묘가 시작되었습니다. 풀이 너무나 무성해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많은 걱정을 했지만 이내 그러한 걱정은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날 이장을 하러 온 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베테랑 일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업자들이 선대조상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 유골 수습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업자들이 선대조상의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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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묘를 파고 있는 와중에 서울에서 사는 친척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빠~앙" 하는 굴착기의 경음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엇인가 나왔다는 신호였습니다. 인사를 나누던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한 곳으로 달려갑니다.

마치 문화재를 발굴하는 현장을 연상시켰습니다. 경력 있어 보이는 아저씨 두 분이 삽과 호미를 들고 묘 안에서 조심스럽게 유골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관 좀 내려 주실래유?"
"예, 근데 유골이 있습니까?"
"아니유. 없시유. 흙밖에."

흙밖에 없다? 유골도 안 남아 있다는 말인데 아무리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지만 아무 형체도 없다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선산에서 선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 6기를 수습하면서 나온 유골은 거의 없었습니다.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모두 흙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허무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족보에 그 이름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유골 하나 없이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허무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더 열심히 살아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하겠다는 포부도 생겼습니다.

이장 작업을 마친 후에는 꼭 정리를 한 뒤에 다시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 이장 후 깨끗하게 정리된 선산 이장 작업을 마친 후에는 꼭 정리를 한 뒤에 다시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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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에서의 작업을 마친 뒤 다시 남은 6기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다른 선산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가파른 경사면에서의 작업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무사히 이장을 마쳤습니다.

이날 선대조 묘를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조상묘 이장이 남았습니다. 이제 막 시작입니다. 행복도시 건설은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현재 장비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과 고향땅을 떠나는 선조들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새로이 마련된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선대조상의 묘를 수습했습니다.
▲ 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새로이 마련된 선산으로 이장하기 위해 선대조상의 묘를 수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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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바람은 한가지뿐입니다. 수십 년간 고향땅에서 편히 잠드셨던 조상님들께서 더 좋은 곳으로 모시려는 후손들의 마음을 알고 새로운 곳에서도 고이 잠드시길 바랄 뿐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흙이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확인하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잡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태그:#묘 이장, #행복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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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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