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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개성공단 정배수장 공사 현장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2007년 1월 24일 촬영.
 개성공단 정배수장 공사 현장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모습. 2007년 1월 24일 촬영.
ⓒ 김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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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29일 느닷없이 '파주경제특구'를 추진하겠다며 곧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30일 오전 통일부 쪽은 "입법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형적인 국내정치용 발언으로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북미 관계는 잘 나가는데 남북관계는 '냉각탑 폭파쇼'에 초대도 받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되자 이를 임기응변식으로 가리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소통 부재'로 비난받고 있는데, 이는 단지 국내 정책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북 정책도 상대방인 북한의 반응은 고려하지 않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식으로 추진한 게 여러 개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흡사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방콕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나라당은 29일 파주 지역에 개성공단에 상응하는 '통일경제특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24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내용과 후속대책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24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내용과 후속대책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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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북한에 전면적 개혁·개방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우선 1단계로 북한이 조금씩 나올 수 있도록 남한 지역에 개성과 연계된 공단을 만들어 북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하고, 2단계로 중국식 특구를 만들어 자본주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주에 개성공단에 상응하는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해 장기적으로 개성공단과 통일경제특구를 연결하는 단일 경제특구를 만들어 이 지역을 '무관세 독립자유경제지대'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곧 파주에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통일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사실 파주 특구 구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5년 2월에 처음 선보였고, 2006년 2월 임태희 의장 주도로 여야 의원 100명이 서명한 '통일경제특구법' 제정안이 제출됐다. 그러나 별다른 진전 없이 17대 국회가 폐회되면서 법안은 사장됐다.

이전에 파주경제특구는 개성공단 활성화에 집중하던 당시 정부의 입장과 달라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여당이 된 뒤 발표한 것이어서 무게감이 다르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30일 "파주경제특구는 상생공영의 정부 대북정책에 부합한다"며 "낙후된 접경지역 개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때문에 입법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파주특구는 3년 전 아이디어... 그러나 정권 바뀌니 위상 달라져

그러나 파주경제특구를 바라보는 남북 전문가들의 시각은 '냉소' 그 자체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권이 개성공단 2단계 사업을 추진할 의지가 없어 북한이 크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파주 경제특구는 현실성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파주특구는 위치만 다를 뿐 이명박 대통령의 나들섬 구상과 다를 바 없다"며 "단 파주는 군부대 땅 등을 팔면 투자 재원을 비교적 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더 발전시킨다는 의지를 밝히지 않고, 되레 개성공단 2단계 투자는 어렵다는 분위기 속에서 파주를 들고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파주경제특구의 진실성이 있으려면 개성공단 2단계를 팍팍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뒤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들섬 구상'은 한강 하구에 900만 평 규모의 공단을 만들어 남한은 공장을 짓고 북한 노동자를 출퇴근시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안에서도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을 불허하는 등 북한 주민들의 외부 노출에 극히 민감한 김정일 정권이 노동자들의 남한 땅 출퇴근을 허용할 리가 없다는 등 비판이 많았다.

1단계에서 북한 노동자를 출퇴근시켜 운영하겠다는 파주경제특구나 나들섬 구상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임태희 정책위 의장은 "북한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취업비자로 5000명을 내주고 있다"고 소개했으나 러시아와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북한이 '비핵·개방 3000' 구상 자체를 공화국 압박 포위 전략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는 지금 파주경제특구에 호응을 보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지난해 10·4 남북정상 선언에는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적극 추진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공동 이용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여당은 이미 남북한 간에 합의한 것을 다 내팽개치고 전혀 현실성 없는 '국내 정치용'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북한 땅에서 하면 마치 북한에 퍼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보수 세력들의 눈치만 보니까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는 "남북관계에서는 신뢰가 제일 중요한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 다 깨진 상태"라며 "비핵개방 3000구상도 파주경제특구도 북한으로부터 어떻게 호응을 이끌어 내고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가장 중요한 남북한 신뢰는 다 깨진 상태

외교부 북핵협상과 직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서 CNN-TV를 지켜보며 북한의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외교부 북핵협상과 직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서 CNN-TV를 지켜보며 북한의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전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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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개방 3000·나들섬 구상·남북 연락사무소 개설(지난 4월 방미 때 이 대통령 제안), 파주경제특구 등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일단 질러보기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되레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 신뢰도만 계속 떨어뜨릴 뿐이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옥수수 5만t 지원을 제안한 것도 되레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 정권을 더 불신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며 "옥수수 5만t 지원은 원래 노무현 정부 때 것이다, 이전 정권 것을 들고 와 현재 남북관계를 어찌해 보겠다는 데 대해 북한이 대단히 불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6일 북한이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핵 신고서에 핵무기가 빠졌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07년 2·13 합의문과 10·3 합의문에는 신고 대상으로 핵 프로그램만 적시했고, 핵무기는 이후 북핵 3단계 협상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분리 처리는 6자회담국의 공유사항인데 남한 정부는 딴소리했다.

지난 27일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핵무기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이 고립을 더 자초하는 것 아닌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우리들이 고립된 것 아니다, 결국 6자 회담의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의 핵 무기와 핵 폐기이기 때문에 다뤄져야 한다, 우리들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다뤄져야 할 사항과 현재 단계별로 처리되고 있는 문제를 구별하지 않고 공세를 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핵무기를 언급하지 않으면 보수세력 안에서 비난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한 국내 정치용 발언"이라며 "그런 발언 자체가 사실 관계가 맞지 않아 한국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한 남북 문제 전문가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과거 6자회담 장에서 납치문제를 제기하다가 '6자회담은 북핵을 논의하는 곳'라고 면박당했던 일본 정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태그:#이명박, #파주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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