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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아동문학 작가들에게 현실을 관찰하고 아이들의 문제를 연구하고 이웃과 세계의 진실을 보도록 권하고 싶다. 너무 자기의 마음속에만 파고드는 것은 문학의 세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작품이 안이하게 되거나 난해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 1984)에서 이오덕 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이오덕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이 새삼스러워진 이때, 새삼스레 그의 말이 떠오른 것은 그의 지적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아동청소년문학이 다채로워진 것은 분명히 반가운 일이지만,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때일수록 우리 아동문학의 성취를 돌아보고, 특히 이오덕 선생의 충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우리 아동문학에 부족한 것은 다양한 시도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관찰, 특히 아이들에 대한 관찰이다. 그런 점에서 '관찰의 묘미'가 돋보이는 김양미의 <털뭉치>(2008, 사계절)는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아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부재를 직접 확인하려는 7살 아이

 

'아래 할아버지'는 작가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섬세한 관찰과 세세한 일상의 포착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먼저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활발히 몸을 움직이는 일곱 살 어린이의 동선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채운이는 할아버지의 부재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닌다. 덕분에 작품의 공간 배경이 집이라는 장소로 제한되어 있지만, 지루함을 느낄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정말 일곱 살 어린이와 돌아다니는 것만 같은 현장감이 느껴진다.

 

또 아이의 심리와 말투에 대한 묘사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작품을 읽는 내내 일곱 살 어린이의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생각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살 채운이는 할머니의 심정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기 어렵겠지만, 이 동화책의 독자층으로 설정한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라면 제법 할머니의 심정을 헤아리고 삶은 끝나도 추억은 지속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라면 죽음에 대하여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기인 만큼, 흥미로운 주제 선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죽음이라는 주제는 어둡고 무겁게 그려지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따스한 일상의 일부로 묘사되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정말이지 죽음이 어둡고 무거울 필요는 없다. 죽음 역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일부일 뿐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털뭉치] 고양이를 지켜줘

 

'털뭉치'는 선명한 대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지후는 이웃 아줌마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푹신이 선생님이 연두를 돌보는 것을 숨기려 애쓰며, 자신과 선생님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이 작품에는 크게 두 편이 등장한다. 고양이를 지키고자 하는 지후와 선생님이 한 편이고, 고양이를 괴롭히거나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지후 엄마와 이웃집 아줌마가 다른 한 편이다.

 

고양이가 많아지면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푹신이 선생님을 타박하는 이웃집 아줌마란 인물은 무척 히스테리컬한데 또한 무척 현실적이기도 하다. 지후가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지후 어머니의 성격 역시 이웃집 아줌마와 다를 것 같지 않다. 이는 다시 지후가 왜 얼굴이 어둡고 말이 없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집 없는 고양이를 아끼고 돌보는 사람들과 괴롭히거나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 한쪽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살지만, 한쪽은 히스테리컬한 삶을 산다. 어린이들이 이러한 대립을 선명하게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애벌레와 실체 현미경] 세상에 우월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없다

 

이 동화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애벌레와 실체 현미경'이다. 장애아동이나 혼혈아동 등 소수자 아동이 등장하는 동화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다가 오히려 차별과 편견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작품은 장애아동이 정말 원하는 것은 자신을 비장애아동과 구분지어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비장애아동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결이의 담임 선생님이 장애아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그릇된 인식이 불러오는 결과다. 그는 자신이 나름대로 장애아동을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이를 비장애아이들과 똑같이 자리를 옮기며 앉게 하고, 청소에도 참여시킨 것은 분명 훌륭한 선택이다. 결이가 원한 것이 바로 특별대우가 아닌 동등한 대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시험지 사건 뒤에 아이들의 오해를 원만하게 풀어주기 위하여 애쓰지 않고 '다시는 몸이 불편한 친구를 놀리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게 함으로써, 장애아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우월적인 시혜의식을 드러낸다.

 

장애는 결코 비정상이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저 비장애인들과 조금 다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그 모든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려면, 서로 다른 처지에 대한 이해를 우선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차이를 고려하여 각자 돕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우월하거나 부족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아이들이 결이를 차별하며 오해하는 대목에서는 화가 치밀어 책을 덮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결이와 엄마가 속상해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들 역시 천사가 아니라 사람인지라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배제하는 속성이 있는 것은 엄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관용과 더불어 살아가기보다 배제와 차별, 그리고 경쟁을 가르치는 신자유민주주의 교육방식이 지속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암울한 현실을 묘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결이는 특히 자신을 괴롭게 했던 짝꿍 규만이의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따뜻함을 보여준다. 결이가 반성문을 쓰게 된 아이들이 손이 아플까봐 걱정하는 모습이라든지, 이미 반성문을 다 쓴 아이들이 자신도 결이에게 부탁할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는 대목은 어린이다운 면모가 잘 나타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러한 어린이다운 면모는 그들이 다시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러한 계기를 통해 작품은 대립에서 그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결이가 "선생님, 오늘 조금 이상했어요"라며 편지를 쓰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편지봉투에 하늘색 편지봉투는 돌려달라고 노란 종이를 붙인 모습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함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어린이라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김양미의 장점은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따스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어린이라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게다. 한편으로는 이 동화집의 주인공들이 비현실적으로 착하게만 그려져 있다는 비판을 받거나, 더 다양한 어린이상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빛나는 전망이 보이지 않는 우울한 현실에서도 희망의 끈을 결코 놓으려 하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더 이상 착한 어린이는 없다, 이제 순수한 어린이는 없다, 외치면서 어린이들에게도 자기계발과 돈 불리는 법에 대한 책을 읽게 하는 미친 세상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넘치는 낙관일지도 모른다. 물질이야 넘치는 것이 부족한 것만 못하지만, 낙관은 조금 넘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털뭉치

김양미 지음, 정문주 그림, 사계절(2008)


태그:#털뭉치, #김양미, #이오덕, #동화, #아동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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