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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누구나 다 찍는 사진을 왜 찍나? : 누구나 다 그리는 그림을 왜 그리나? 자기 그림을 그려야지. 배운 그림을 따라하지 말고, 못나고 못생기고 모자라더라도 자기 그림을 그려야, 차근차근 자기 모습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도 뚜렷하고 탄탄하게 드러난다. ‘그림’을 ‘글’이나 ‘사진’으로 고쳐서 말해도 마찬가지.

 

 

[26] 잘 찍었다고 좋은 사진은 아니다 : 잘 그렸다고 좋은 그림은 아니다. 더구나 훌륭한 그림이지도 않다. 자기 목소리, 느낌, 생각,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그림이 아니며 휴지조각도 아니라고 느낀다. 휴지조각은 코라도 풀 수 있지. 잘 그리기만 한 그림은 코도 못 푼다. 이런 종이로 코를 풀면 코만 더러워진다. 하긴, 그림뿐이겠느냐. 어설픈 글이나 어수룩한 사진이나 어줍잖은 삶이나 똑같지 않겠느냐.

 

 

[27] 이삿짐에서 나온 사진기 : 지난 2005년에 있던 일. 이삿짐을 풀다가 깜짝 놀란다. 사진기가 두 대나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한 대는 워낙 예전부터 갖고 있던 녀석인데 어디 있는지 안 보여서 사라졌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 대는 아주 잊고 있었다. 미놀타 X-300. 틀림없이 이 사진기는 사진기를 여러 차례 도둑맞고, 없는 살림에 가까스로 다시 마련하던 때 쓰던 녀석이다.

 

필름이 들었나 보니 스물여덟 장 찍고 그대로 있다. 아. 이런. 이렇게 사진기에 필름이 든 채 여러 해 묵었으면 필름도 다 날아갔을 텐데…. 2002년은 아닌 듯하고, 2000년에 크게 한 번 이삿짐을 꾸릴 때 넣었다가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묻어 버린 사진기인 듯하다. 참 놀라우면서 어쩔 줄 모르겠고, 반가우면서 씁쓸하다. 다시 찾으니 놀랍고 반갑지만, 이 사진기를 잃어버린 줄 알고 가슴 태웠을 그때에는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거의 안 될 듯하지만, 이 묻어 있던 사진기에 들어 있는 필름을 찾을 수 있을까.

 

 

[28] 내가 찍어서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 : 헌책방을 찾아온 사람이나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어 놓고 보면 참 좋다. 사람 하나 없이 책방 모습이나 책 모습만 찍어도 참 좋다. 어쩌면, 내가 찍을 모습이란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 모습이거나, 사람이 없어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겠구나 싶다. 책만 있거나 책방 모습만 담는 사진 또한 아니겠구나 싶다. 내가 즐겨 찾아가는 이곳, 이 헌책방,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모든 모습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가운데 담아낼 때, 비로소 내 사진이 나오는구나 싶다. 억지로 어떤 모습을 생각하거나 기다리면서 찍어 보았자, 마음에 드는 사진이 안 나오는구나 싶다. 때로는 사람이 있는 헌책방 사진이 푸근하고, 때로는 사람이 없이 책만 덩그러니 있는 사진이 따뜻하겠구나 싶다.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찍는지, 그 무엇을 어떻게 찍는 마음인지가 더없이 마음 기울이며 살펴볼 대목이구나 싶다.

 

 

[29] 잘 찍은 사진이 좋기는 하다 : 잘 찍은 사진이 좋기는 하다만, 이보다는 알맞게 찍은 사진, 때와 곳에 잘 들어맞는 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잘 쓴 글보다 알맞게 쓴 글이 더 좋다. 내 삶도 넉넉하게 잘사는 일이 좋다고 볼 수 있겠으나, 내 즐거움을 찾아 재미있게 살아갈 때가 훨씬 낫고 반갑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찍기, #사진에 말을 걸다, #사진,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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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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