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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알프스 아래에는 보석같이 빛나는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가 있다. 알프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잘츠캄머구트에는 해발 20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중첩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진주알 같은 호수가 무려 76개나 흩뿌려져 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곳의 경치에 대해 찬탄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일까?

잘츠캄머구트는 잘츠부르크 남동쪽에 펼쳐져 있다. 우리는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정원 앞에서 잘츠캄머구트의 장그트 길겐(St. Gilgen)과 몬트제(Mondsee)에 가는 관광버스 위에 몸을 실었다. 나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산속에 숨은 호수들을 찾아 나섰고, 그곳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었다.

관광버스는 50명 정도를 태우는 큰 버스였다. 그런데 버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콱 막혀왔다. 더운 여름날, 버스 안의 거의 모든 좌석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고, 석유를 절약하기 위해서인지 버스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고 있었다. 버스 안이 너무 더워서 밖으로 잠시 나왔더니 버스의 안내인 아저씨가 나에게 무슨 일 있느냐며 묻는다. 나는 실내가 너무 덥다고 했지만 에어컨을 켜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차가 주차되어 있을 때에는 차에 시동을 걸지 않는 것이 오스트리아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에어컨이 켜지면서 버스 안은 금세 쾌적해졌다. 운 없게도 나의 좌석은  버스의 가장 뒷줄에서도 한 중앙. 창밖을 구경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자리였다.

푸른 초지와 민가가 잘 어울린다.
▲ 잘츠캄머구트 가는 길. 푸른 초지와 민가가 잘 어울린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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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창밖의 경치는 시선을 돌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움 일색이었다. 잘츠부르크를 벗어난 버스는 푸른 초지에 민가들이 아늑하게 자리 잡은 도로를 부드럽고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구릉의 초지 위에 자리 잡은 그 아름다운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산봉우리의 울창한 삼림 사이로 언뜻언뜻 암봉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겨울의 알프스 자락에 적응되어 있던 나의 눈에 생소하게 다가왔다. 여름의 푸른 신록은 참으로 풍성했다.

드디어 잘츠캄머구트의 호수들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푸슐제(Fuschlsee) 호수였다. 브룬(Brunn)을 지나 표고 600m의 푸슐 암 제(Fuschl am see)를 지날 때까지 호수는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푸슐 마을은 그 명성답게 유럽 부호들의 휴식처로 쓰이는 별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이 둘러싼 코발트 빛 푸른색의 호수에 민가와 별장들이 잘 어울리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 푸슐 호수. 오스트리아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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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사진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스위스 알프스의 장쾌한 산악미와는 구별되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악만의 아름다움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멀리 1500m의 츠뵐퍼호른 봉우리가 호수를 감싸고 있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첫 부분의 알프스 산록이 바로 이 푸슐 호수 주변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의 아름다움이 유감없이 집대성된 명화에서 이 호수는 그 첫 장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이곳 출신인 나치 총수가 그 경치에 반해 별장으로 사용했다는 푸슐호텔이 푸슐 암 제 언덕 위로 보였다. 15세기까지는 성으로 사용되던 고성으로 유명 정치인들의 휴양지일 뿐만 아니라 오드리 헵번, 마를린 먼로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도 이곳에서 머물다 갔다.

버스의 안내인 아저씨는 버스의 맨 앞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 첫 장면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서 줌인하다가 다시 줌아웃되는 이 노란색 호텔을 모션을 곁들여서 설명하고 있었다. 호들갑 떠는 그의 모습만 보아도 영화의 어떤 장면인지 연상될 정도로 그는 정말 웃기는 사람이었다.

버스는 좁은 구릉길을 지나 조금 더 달린 후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아! 시야에 잘츠캄머구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는 볼프강 호수(Wolfgangsee)가 눈에 들어왔다. 볼프강?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볼프강이라는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이름에도 들어 있다. 볼프강 호수 주변의 장그트 길겐(St. Gilgen)에서 자란 모차르트의 어머니가 아들 이름에 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담은 것이다.

잘츠캄머구트의 보석이자 모차르트 어머니의 고향이다.
▲ 장그트 길겐. 잘츠캄머구트의 보석이자 모차르트 어머니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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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출발한 지 45분 만에 볼프강 호수 서북쪽에 자리 잡은 장그트 길겐에서 멈췄고, 여행자들은 볼프강 호수를 둘러보기 위해 모두 버스에서 내렸다. 인구 3천명의 작은 도시는 호수 옆에서 너무나 고요했다. 호수 위에는 한가로운 바람을 즐기는 요트들이 호수를 가르고 있었고, 노란 곤돌라가 산 위를 오르고 있었다. 볼프강 호수는 유럽 자연경관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멋들어진 호수였다.

나는 관광지에서 내 얼굴이 들어간 증명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편이지만, 이곳에서는 가족과 함께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탄 버스에는 대구에서 온 동족 여대생이 타고 있었다. 버스에서 인사를 나눴던 우리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사진을 찍어줬다. DSLR 카메라로 사진을 남기는 젊은 동족 아가씨가 믿음직스러웠다.

장그트 길겐은 호수변에 조성된 마을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모차르트 어머니인 안나 마리아 페르틀(Anna Maria Pertl)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모차르트 일가도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이 호수 일대의 마을들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게다가 이 아름다운 호수 주변이 자신들의 고향인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장그트 볼프강(St.Wolfgang)을 향하는 유람선을 타지 못하는 나의 시간의 한계가 너무 아쉬웠다.

버스는 눈부신 호수를 뒤로하고 다시 잘츠캄머구트의 구릉을 넘고 평지를 달렸다. 과거의 빙하로 뾰족하게 깎인 봉우리를 지나자 호수 몬트제(Mondsee)가 버스의 오른쪽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지만, 내륙 안에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수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호수변에는 수영복만 입고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 호수변 일광욕. 호수변에는 수영복만 입고 여유롭게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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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에는 방갈로, 팬션, 호텔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수영복만 입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한여름의 햇살이 그들의 벌거벗은 몸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산이 호수를 둘러싼 듯, 아니 호수가 산을 둘러싼 듯 너무 눈이 부셨다. 첩첩이 쌓인 산 아래의 호수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우리는 몬트제에 내려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는 눈부신 호숫가의 마을 입구에 내려서 호수변을 따라 주욱 걸었다. 호수는 숲에 둘러싸여 있었고 수면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만이 떠 있었고, 한여름인데 덥지는 않았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아침 출근길이 갑자기 생각났다. 왜 하필 이때에 가장 힘든 순간이 떠오르는 걸까?

이솝우화 속에 나오는 동화 같은 마을이다.
▲ 몬트제 마을. 이솝우화 속에 나오는 동화 같은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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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이어지는 넓은 초지를 지나자 이솝우화의 중세 유럽 마을같이 아기자기한 몬트제 마을이 나타났다. 파스텔톤의 은은한 건물들은 붉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마을 광장 한 복판에서는 분수 물줄기가 여름을 식히고 있었다. 분수대 주변을 자전거 탄 인형 같은 어린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 몬트제 어린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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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천식당에 앉아 나폴리 피자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생수를 주문했다. 나는 한참만에 나온 나폴리 피자를 4등분했다. 피자의 전체적인 모양이나 색상은 우리나라의 피자와 비슷했지만, 토핑은 매우 달랐다.

피자 토핑으로 생선 젓갈이 있어서 먹기가 조금 힘들다.
▲ 나폴리 피자. 피자 토핑으로 생선 젓갈이 있어서 먹기가 조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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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토핑에는 한국 사람의 입맛에 이미 적응된 치즈와 토마토 소스 외에도 충격적인 생선 젓갈이 있었다. 유럽에서 이 생선젓갈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겠지만, 맛은 분명히 비릿한 생선 젓갈 맛이었다. 나는 유럽에서도 이런 맛을 즐긴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다. 생선을 바른 부분은 분명히 역겨웠지만 그렇다고 나는 피자를 남길 사람은 아니었다.

신영이는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일어섰다. 주변을 구경하기 위한 핑계로 신영이는 항상 화장실을 간다고 한다. 나와 신영이는 손을 잡고 마을 구경을 하였다. 상가 건물들은 마치 배색을 고려한 듯 노란색, 연두색, 보라색으로 색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상가에는 인형가게, 장난감 기차 가게, 기념품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이 몬트제의 기념품 상가에도 역시 모차르트가 초콜릿을 들고 서 있었다.

한참 마을 구경을 하다가 돌아오니, 노천식당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

"여보! 주변에 있던 관광객들이 어디 갔지?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그동안의 여행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상황은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버스 타는 곳이 아니라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마을 입구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것 같았다.

"뛰어야 해! 버스 출발시간이 거의 다 됐어. 내가 먼저 버스까지 뛰어갈 테니까 잘 따라와!"

나는 1km 정도 되는 몬트제의 마을길을 부리나케 뛰었다. 내 뒤로는 아내와 딸, 그리고 동족 여대생 아가씨가 따라서 뛰어왔다. 나는 아내와 딸이 잘 뛰고 있는지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정말 열심히 뛰었다. 출근길에 버스 놓치지 않으려 뛰는 나의 모습이 이곳 오스트리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좁은 길을 돌아 마을 입구의 주차장으로 꺾어지는 순간, 다행히 출발하지 않고 있는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버스를 잡고 저 뒤에 내 가족이 뛰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의 숨은 헐떡거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관광객들을 줄기차게 웃기던 버스 안내인이 나에게 말했다.

"정말 베스트 달리기 선수야. 가족을 위해서 정말 빨리 뛰는군"

그는 버스 안에서도 웃으며 나를 놀렸다.

"오! 베스트 달리기 선수!"

여행길은 지나고 나면 다 즐거운 추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7년 7월말의 여행 기록입니다.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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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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