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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읽었던 '큰 바위 얼굴' 이야기는 마음 깊이 파고 들었다. 이 이야기는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전설로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이 큰 바위를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돈 많은 수전노, 유명한 노장군, 말 잘하는 정치가, 재주 있는 시인 등 그리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그 사람들이 나타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들떠서 환영을 하지만 결국 실망하게 된다.

 

결국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정직하게 살았던 설교자 어네스트가 말년에 큰바위 얼굴을 등지고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비로소 이 어네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이 이야기가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이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에도 큰 바위 얼굴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산 '화방산' 능선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녀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7일(토) 오후 2시,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15명은 소문으로 퍼진 '큰 바위 얼굴'을 찾아 광주에서 출발하였다. 광주에서 나주를 거처 영암 월출산 옆을 지나 강진으로 갔다. 강진읍에서 다시 군동면 소재지를 지나 삼화마을로 갔다.

 

오후 4시,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네 노인에게 큰 바위 얼굴을 찾아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마을회관에서 농로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조그마한 저수지를 막아 놓은 곳이 있다고 했다. 그곳을 따라 올라가면 안내 표지가 있다는 것이다.

 

초여름을 맞은 산은 푸름 그 자체였다. 지나는 길에 피어나는 나뭇잎의 푸름은 우리들 마음을 그대로 물들인다. 찔레순이며, 칡순이 눈에 보이듯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단오 이전에 뜯어야 약효가 뛰어나다는 쑥도 탐스러움의 절정을 맞고 있다.

 

 

아주 조그마한 저수지를 돌아 계곡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문득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에 늘어선 바위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능선에 늘어 선 바위들 가운데 우뚝 솟구쳐 보이는 얼굴이 보인다. 산 정상엔 '큰 바위 얼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 여러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그 얼굴은 선명하게 우리들의 눈앞에 다가왔다.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얼굴이다. 턱 앞은 수염처럼 나뭇잎들로 가려져 있다. 하지만 두 눈과 눈썹, 오뚝한 코가 선명하다. 볼은 둥글었으며 이마는 볼록 튀어 나왔다. 책에서 보았던 서양인의 모습이 아니고, 분명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그렇다. 분명 우리나라 수많은 탈 중 하나를 닮은 듯하다. 우리들에게 수많은 웃음을 가져다 주었던 광대의 얼굴이다. 우리 민족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순수 혈통이다. 우리 민족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큰 바위 얼굴은 우리들을 내려다 보며 웃고 있다. 그 모습이 광대의 얼굴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광대 바위'라고 한단다.

 

옛날 화방마을 옆 서은마을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인색하여 인심을 읽고 살았다. 어느 날 중이 와서 시주를 첨함에 그 부자는 시주는커녕 오히려 크게 냉대하였다. 기분이 상한 중이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를 "더 큰 부자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니 부자는 당연히 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중이 하는 말이 "건너편 산에 있는 큰바위 얼굴의 배꼽을 파버리면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자 이 부자는 석공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광대바위의 배꼽을 파 버렸다. 그 후 부자는 욕심이 지나쳐 망해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큰 바위 아래쪽을 보면 피가 흘러 굳어진 것처럼 빨갛게 보이고 있다. 

- '큰 바위 얼굴' 전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그마한 나무다리를 건너 산길로 접어들었다.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오르는 조그마한 봉우리다. 큰 바위 얼굴은 흐트러짐 없이 계속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들은 산에 오르면서 쏟아지는 땀방울을 여유롭게 훔친다. 산행을 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편해졌다. 나뭇잎 사이사이에서 느끼는 그의 시선으로 때문인 것 같다.

 

 

조그마한 봉우리를 돌아 형제바위로 다가갔다. 우뚝 서 있는 형제바위 사이에 틈이 있었다. 원래는 하나의 바위였는데 가운데가 갈라져서 마치 형제처럼 보이는 바위다. 저 멀리 삼화마을의 모습이 바위틈으로 보였다. 그 틈바구니에 얼굴을 내미니 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람이 시원하게 부딪친다. 자연이 주는 시원함이란 마음까지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

 

능선을 타고 조금 지나가니 바로 큰 바위 얼굴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대한 바위들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높이가 20m, 폭은 30~40m 정도 되는 큰 바위 얼굴이다. 하지만 신비로운 큰 바위 얼굴 위에 올랐다는 생각에 죄송스럽다.

 

큰 바위 얼굴에서 지나 온 길을 바라보니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 있다. 그 옆을 지나오면서 보았던 바위의 느낌과는 정 다른 느낌이 든다. 어떤 산행을 하면서 가끔 이상하게 보이던 남근석의 모습이다.

 

 

큰 바위 얼굴에서 화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은 기암괴석들이 능선에 줄을 서고 있다. 흔히 무등산 서석대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의 우뚝 솟은 모습이다. 육각형의 거대한 바위기둥들이 서로 의지하여 능선에 죽 늘어서 있는 것이다. 큰 바위 얼굴만 기대하고 왔던 우리들의 마음에 화방산의 새로운 모습을 새기고 있다.

 

바위 능선을 따라 가다가 보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 곳에서부터 화방산 정상은 갑자기 우뚝 솟구쳐 있다. 거대한 삿갓을 엎어 놓은 것 같이 급경사를 이루며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주상절리를 밟으며 신선처럼 들떠 있던 발길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등에서 다시 땀이 솟구치고 있다.

 

가쁜 숨소리를 내뿜으려 나무숲 속을 올라간다. 멀리 바라보이는 정상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들어 올린다. 우거진 나무숲이 천만 다행이다. 급경사로 오르는 길이지만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잎들이 그 진한 녹음으로 우리들의 마음까지 푸르게 만든다.

 

 

오후 6시, 화방상 정상(402m)에 올랐다. 월출산, 천관산, 마량항, 멀리 완도 상왕봉까지 다 보인다. 인자하게 보이던 큰 바위 얼굴도 그냥 능선에 늘어진 바위로만 보인다. 산 밑 잘 정돈된 논에서는 이미 모내기가 다 끝나 있었다. 이제 능선을 따라 화방사를 거쳐 다시 삼화마을로 내려가면 된다.

 

큰 바위 얼굴을 찾은 날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의 촛불이 가장 활발하게 타오르던 토요일이었다. 그 촛불을 뒤에 두고 산에 올라온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한없는 욕심을 부리던 부자가 결국 저 큰 바위 얼굴에게 혼나버린 전설이 우리들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꼭 큰 바위의 배꼽을 판 부자처럼 요즈음 세상은 부자들이 더 난리다. 서로 나누어 전 세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었으면 좋았을 기름의 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있고, 자본을 움켜쥔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누어 먹어야 하는 곡물을 가지고 제 배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환율까지 올라 그 부담이 배가 되었다.

 

풀만 먹어야 하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여 생긴 병이 광우병인데, 우리 정부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부위를 제외하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곤 빈민들 보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이니 먹으라고 한다. 대통령이 이곳을 찾았다면 그 인자한 큰 바위 얼굴이 고개를 돌려 버릴 것 같다.

 


태그:#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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