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뒤늦은 공중파 방송 출연 소감

 

 

지난 7일에 방영된 MBC <뉴스후>에 2분 가량 출연한 적이 있다. 2분, 말이 2분이지 방송에서의 2분은 꽤 오랜 시간이라고 알고 있다.

 

출연 및 인터뷰는 당일에 결정됐다. 그러니, 나로선 준비고 뭐고 할 여지도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고, 생각한 그대로를 말했다. 요즘 체중계에 올라보면서 촛불시위 이전보다 10kg 가량 빠진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그 흔적을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전보다 많이 야위었더라.

 

'방송 출연'은 주변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떠들고 다니자니 뭔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방송이 방영된 7일, 나는 그날도 시위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밤 10시 20분을 기점으로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갑자기 이어졌다. 방송에 출연한 나를 봤고, 생각보다 오래 나와 놀랐다는 지인들의 연락이었다. 다름아닌 공중파 방송이었고, '촛불시위 현장'을 보도하는 프로그램이었던만큼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지금도 시위현장에 나가면 "방송에 출연하신 분 아니냐"면서 모르는 분이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많다. 황송할 따름이다. 내가 과연 그 방송에 나갈 자격이 되는지, 과연 방송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꼭 해야 할 이야기를 제대로 했는지 새삼스레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연 소감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뉴스후> 제작진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잘 전달해줬다는 것부터 전해야 할 것 같다. 동대문 인근 PC방에서 MBC 고현승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언론 문제'를 거론했다. 인터뷰에서 내가 지칭한 '거대언론'이란 '조중동'을 말한다. 거대언론의 왜곡된 보도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방송도 그렇고…"라는 내 언급은, 정보에 목마른 시위참가자들과 지켜보는 누리꾼들에게 방송이 충분하게 정보를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지적을 통해 나는 "기존의 언론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굳혀지면서 인터넷에서 직접 정보를 찾아 움직이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으며, 정식 기자가 아님에도 현장에 직접 나가 생생한 정보를 전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봤을 때, 촬영 도중 민망한 느낌이 들었던 적은 한번 있다.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카메라맨은 내가 PC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꼭 찍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PC방을 향해 걷는 모습을 몇번이나 되풀이해가면서 촬영했고, 내 느낌 상으로는 각도까지 계산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민망한 느낌은 더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뒤늦게 출연 소감을 쓰는 이유는, 당시 <뉴스후>가 보도한 내용 중에서 내가 최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보수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좋은 것들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첨단장비' 활용으로 진화된 촛불시위 참가자들

 

 

<뉴스후>가 보도한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일상화된 첨단장비를 유감없이 활용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이다.

 

핸드폰 문자메시지와 메일을 통해 멀리 떨어져 집에서 인터넷 생중계 동영상으로 지켜보는 친구를 통해 정보를 받는 시위참가자들, 그들은 다른 현장에 서 있는 시위참가자들과도 핸드폰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고, 지원요청도 한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채증이 생각보다 큰 위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도 돌아봐야 한다. 널리 보급화돼 개인장비가 된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의 카메라 촬영 기능을 경찰은 미처 계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채증하다가 오히려 본인들이 '역채증'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프락치 의혹' 관련 사진들이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게재되면서 경찰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나가보면 정보과 형사들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본인들이 '역채증'당할지의 여부에 대해 대단히 민감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정식언론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조심해야 할 대상도 무척이나 늘었다.

 

 

<오마이뉴스>로 대표되는 인터넷언론 '시민기자들', 포털사이트 '다음'의 히트상품 '블로거뉴스'의 '블로거 기자들', 그리고 '아프리카'를 통해 직접 노트북과 캠코더 장비 등을 가지고 나와 현장을 생중계하는 '라쿤'으로 대표되는 BJ들, 이렇듯 때로는 정식언론보다 더욱 생생하게 현장의 소식을 전해줄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프리카'를 운영하는 나우콤 문용식 대표의 긴급구속 소식이 누리꾼들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전해진 이유도 그런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누리꾼들이 품는 의심은 '뭔가 다른 의도'에서 구속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프리카 생중계'의 파괴력을 느껴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반드시 현장에 있는 시위참가자들만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한 포인트다.

 

집에서 컴퓨터를 통해 '아프리카 생중계'를 지켜보거나 인터넷 언론이나 블로거 기자들의 블로그를 서핑하면서 현장의 소식을 지켜보고, 그리고 그를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시위참가자들에게 핸드폰 연락으로 전하는 양상이다. 이런 양상은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자발적이고도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에 '가스통'과 '각목'으로 대응하는 보수단체

 

물론, 가두행진 이후에 벌어지는 경찰과의 공방전에서 폭력시비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확실히 일부 과잉된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앞장서서 지나친 움직임을 일삼는 이들을 오히려 경계하면서 그들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편이다. 

 

게다가, 시위를 잘 지켜보면, 관망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경버스 끌어내기'다. 그 장면만 본다면,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보수세력의 주장처럼 '불법 폭력 시위'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도 그것을 믿고 '전경버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 명분을 제공한 이들은 경찰을 포함한 공권력이다. 굳이 청와대로 향하는 시위참가자들의 움직임, 그것은 청와대로 가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인만큼 '이명박 하야'라는 구호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청와대 앞으로 가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게다가, 악법이라고 평가받는 집시법 상에서도 11조 제2호에 따르면 '청와대 앞 100m'까지는 법적으로도 시위가 보장된다. 세종로 사거리 일대가 청와대 앞 100m인가? 아니다.

 

그에 반해, '촛불시위에 반대'하면서 KBS와 MBC를 '좌빨(좌익 빨갱이)'이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움직임은 '노골적인 폭력 행사'에서 드러나듯이 전근대적이다.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유명 소설가도 촛불시위에 대해 "촛불시위를 진압할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홍경래의 난도 지방 관군과 의병이 연합해 진압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사에 있어 '홍경래의 난'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무지한 것도 경악스럽다. 하지만, 그의 언어표현 속에서 그가 지향하는 세계관이 드러난다는 것도 흥미롭다. '관군'과 '의병'은 조선왕조와 구한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아니던가.

 

 

그들은 승합차에 가스통을 메고 방송사 정문으로 돌진하려고 한다. 게다가, 내가 취재하면서 전해 듣고 목격한 보수단체 회원들의 폭행 시비만 해도 수 건 이상이다.

 

'반공'이라는 국시 아닌 국시를 밀어붙였고, 전쟁이라는 시대적 비극을 악용해 전쟁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노인들을 선동하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시대는 21세기를 맞이한 지 만 8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1950년대를 살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들의 이데올로그로 통하는 유명 소설가는 오히려 조선시대를 살고 있으니, 더욱 비교될 수 밖에 없다.

 

디카와 핸드폰 그리고 인터넷으로 뭉친 사람들, 그리고 '관군'과 '의병' 운운하며 가스통과 각목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는 사람들, 과연 역사는 누구를 더욱 기억할까? 물론, 시위참가자들은 '역사'를 생각하기에 앞서 '살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다.

 

발악할수록 '뒤쳐졌음'이 드러날 보수세력

 

노인들이 '촛불시위 반대집회'에 나설 때마다,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노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의 끔찍한 전쟁의 기억은 '보수'를 자처하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되고 유린당하고 있다. 그들이 피땀흘려 열심히 일한 '경제성장'의 성과도 그 기득권 세력이 독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을 선동해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기 위해 가스통과 각목을 휘두르는 사람들, 그럴수록 '시대에 뒤쳐졌음'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낼 뿐이다. 그들이 그런 흉기를 휘두를수록, '시간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사실 외엔 드러날 것이 없다.

 

게다가, 언론과 인터넷언론 시민기자들 및 블로거 기자들을 통해 보도될 가스통과 각목, 과연 누가 이것을 정당하다고 할까?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그 흉기들을 응원할 수 있을까? 촛불에 가스통과 각목으로 대응하는 당신들은 그 부분에서 또 한번 진 것이다.

 

차라리 발악하지 말고 조용히 있기를 바란다. 본전이라도 건지라는 이야기다. '애국 충정'을 운운하지만, 애국에도 도움되고 우리 모두에게 도움될 '연대의식'을 첨단장비까지 동원해가면서 보여주는 이들은 다름아닌 촛불시위 참가자들이다. '촛불'과 '가스통'의 싸움, 결국 명분에 있어서는 승자가 누구인지 확연하게 드러난 싸움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민토성, #촛불, #촛불시위, #촛불문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