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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문화재-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겉그림
 <수난의 문화재-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겉그림
ⓒ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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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람에게만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 유적들이 훼손되거나 소실된다. 우리 문화재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의 위기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이다.

문화재청 발간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눌와 펴냄)는 이와 같은 민족의 수난기에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과 강탈당하여 해외에 묻혀있는 우리 문화재를 발굴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우리 곁에 있는 문화재 이야기다.

책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화 중 화엄사를 지킨 차일혁 총경이나 해인사 장경판전을 지킨 장지량, 덕수궁과 남대문을 지킨 제임스 헤밀턴 딜과 김용주 등의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사라진 수많은 문화유산들의 안타까운 소리를 듣는 듯했다고 할까?

'폭격, 혹은 소각만이 최선이었을까?'

화엄사와 전라도의 수많은 고찰을 지킨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544년)한 화엄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총본산이자 화엄사상의 상징적인 사찰로 문화재적, 불교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화엄사 일원은 문화재로 지정돼(명승 및 사적 제7호), 국보4, 보물8 지정 및 천연기념물 등이 있다.

차일혁
 차일혁
ⓒ (사)후암미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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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은 우리나라 불교건축물 중 규모가 가장 크며, 각황전에서 떨어진 돌조각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은 부서진 것일망정 보물로 지정될 만큼 그 문화재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다.

빨치산 남부군을 토벌하기 위해 지리산에 도착한 전투경찰대 제2연대장 차일혁에게 빨치산의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는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문짝을 뜯어내 법당 앞에서 소각하는 걸로 명령을 대신한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화엄사를 함부로 태울 수는 없었다. 차일혁은 화엄사만이 아닌 천은사, 쌍계사,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 등과 덕유산의 사찰 등 전라도의 수많은 사찰들을 지켜내 오늘날의 우리가 천년 고찰들을 만날 수 있게 했다.

차일혁은 빨치산 남부군 토벌작전에서 70명으로 2000여 명의 적을 무찌르는 등의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사상 유례 없는 숫자의 훈장이 수여될 만큼 워낙 중요한 이 싸움의 중심에 있던 그는 징계를 먹고 훈장을 받지 못한다.

미 공군작전본부의 해인사 폭격 거부, 사살 명령 받은 장지량

장지량
 장지량
ⓒ 장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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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는 한국전쟁 중 3차례의 폭격을 당한다. 그럼에도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온전하게 건사,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세계에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장지량'의 목숨을 건 '해인사 폭격 명령 불복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1년 8월에 경남 사천에서 제1전투비행단 작전참모를 맡고 있던 장지량에게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미 공군작전본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당시 600명 가량의 인민군 1개 대대가 해인사를 점령하고 있었다. 미군에게 한국의 문화유산들은 별 가치가 없었던 것, 하지만 장지량은 고민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한 장군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독일군에 무조건 항복한 사실도 있지 않은가. 팔만대장경이 어떤 문화재인데 인민군 몇 명 잡자고 해인사를 폭격하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고민하기 시작, 명령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해인사를 지킬 것인가. 긴 고민 끝에 그는 명령을 거부하기로 합니다. - 책 속에서

언쟁과 출격 독촉이 계속되지만 그는 거부하는 걸로 시간을 끌어 의도적으로 출격의 때를 놓친다. 그 후 인민군이 철수할 때를 기다려 공격을 해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미군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장지량이 명령을 어긴 것을 항의, 이승만은 사살 명령을 내린다.

덕수궁을 지킨 사람들, "서울 폭격 계획을 철수할 수는 없는지요"

제임스 헤밀턴 딜
 제임스 헤밀턴 딜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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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혁과 장지량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관은 단지 개인의 불만으로 국보에 방화를 하는 우리 시대 문화재에 대한 가치부족을 부끄럽게 한다. 초토화 서울 수복작전을 바꾼 '제임스 헤밀턴 딜'과 '김용주'도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들이다.

서울 수복작전에 참가한 제임스 헤밀턴 딜은 북한군이 주둔해 있는 덕수궁을 폭파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북한군이 모두 빠져 나와 을지로를 지날 때 공격함으로써 덕수궁을 지킨다. 전쟁 중이지만 이국인인 그에게 덕수궁은 '한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왕궁'이었던 것이다.

그는 뒷날의 회고록에서 이때의 정황을 자세히 묘사한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한 나라의 왕궁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지라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고자 시시각각 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노심초사하는 이국인의 고민에 숙연해졌다.

또 한 사람 김용주, 한국전쟁 당시 주일공사였던 그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인민군과의 치열한 접전이 불가피한 서울을 폭격한다는 소문에 맥아더 사령부를 찾아가 문화재의 중요성을 피력, 서울 폭격 계획을 철수해 줄 것을 간청한다.

밀고 당기는 여러 차례의 협의 끝에 그는 작전상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서울 폭격을 얻어낸다. 정동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곳을 선으로 이어 그으며 그가 맥아더 사령부에 강한 동그라미를 그려 몇 번이고 거듭 강조한 곳은 덕수궁과 남대문.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 앞 세종로 일대 1950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 앞 세종로 일대 1950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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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파괴된 서울 숭례문 주변-한국전쟁의 포화속에 용케 살아남은 숭례문(남대문)과 서울역이 보인다.1950년
 폭격으로 파괴된 서울 숭례문 주변-한국전쟁의 포화속에 용케 살아남은 숭례문(남대문)과 서울역이 보인다.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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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덕수궁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정동이나 남대문 일대의 명동성당이나 한국은행(현재 화폐금융박물관)처럼 한국 근대의 역사가 담긴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제임스 헤밀턴 딜과 김용주의 문화유산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이를 지켜내고자 했던 고민 덕분이다. 김용주의 남대문에 대한 애정은 사라진 남대문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이외에 상원사를 지킨 한암 스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한국전쟁과 불교문화재>(전 5권, 2004년)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 문화유산 최대 가해자는 미군과 한국군이다. 혹자들은 '나라의 운명이 걸린 위험한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이유를 앞세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즉 소각과 폭격이란 같은 위험에 처해 어떤 문화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떤 문화재는 한 군인의 재량으로 오늘날 건재한 것을 보면서 소각과 폭격만이 최선이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해인사 창건 후 화재로 수차례 중건, 한국전쟁 당시 3번의 폭격에도 살아남은 유일한 조선 초기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
 해인사 창건 후 화재로 수차례 중건, 한국전쟁 당시 3번의 폭격에도 살아남은 유일한 조선 초기 건물인 해인사 장경판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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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사재를 털어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비 안의와 손홍록을 비롯하여 간송 전형필, 독도를 지킨 안용복과 독도의용수비대, 직지심체요절을 발굴한 박병선, 안동 용계 은행나무를 지킨 사람들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문화유산을 왜 지켜내야만 하는가?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문화재들을 사진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왕조실록 기록부터 보관까지', '목판활자와 금속활자의 비교', '최근의 문화재 환수 운동과 성과' 등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가들의 문화재 이야기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덧붙이는 글 | <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문화재청 엮음/눌와 2008년 5월 펴냄/1만2000원)



수난의 문화재 -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문화재청 엮음, 눌와(2008)


태그:#인문교양, #문화재청, #6·25, #한국전쟁, #수난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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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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