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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큰형은 집 앞의 텃밭에 울타리를 쳐서 가축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 안에는 닭, 오리, 기러기가 더불어 산다.

 

가장 큰 무리를 이루는 열대여섯 마리의 닭 무리는 우리 안을 활보하고, 단 두 마리인 기러기 부부는 기를 펴지 못한 채 구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탉의 기세는 꼿꼿한 벼슬처럼 늘 기세등등하다. 동그란 눈알을 굴리며 기러기를 위협하곤 했다. 기러기는 그 울타리에서 타성바지 처지인 것이다.

 

매일 모이를 주는 큰형은 이런 기러기가 안쓰러워 먹이를 더 챙겨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하지만, 매양 멀찌감치 달아났다가 형이 자리를 뜨면 비로소 주춤주춤 다가오는 겁쟁이 기러기다.

 

수탉 중에서 우두머리는 울 안의 감나무 가지에 올라 잠을 자고, 가끔은 날개를 푸닥거려 울타리를 넘는 오기도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닭보다는 더 잘 날 수 있는 기러기는 그저 울안의 하늘만 제 세상으로 여기며 산다. 날지 못하도록 깃털을 조금 가위질했을 뿐이지만, 날기를 포기한 것이다. 날려고 맘을 먹는다면 우리의 울타리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큰형은 매일 우리 안에서 달걀을 거둬서 반찬으로 요긴하게 먹는다. 수탉과 흘레 붙어 생긴 유정란이기에 병아리가 생길 수 있지만, 달걀은 번번이 큰형의 눈에 띄어 암탉이 알을 품을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늘 구석에 있던 기러기는 큰형의 눈에 별로 띄지 않아 몰래 알을 품을 수 있었다. 어느날, 기러기는 여남은 마리의 새끼를 깠다. 큰형은 자연부화한 기러기 새끼를 보는 즐거움에 더 자주 텃밭의 우리를 찾았다. 병아리를 가끔 대하긴 했지만 기러기가 알을 깐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것이다. 큰형은 앙증스런 기러기 새끼들이 어미를 따라 졸졸거리며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마냥 행복해했다.

 

큰형이 마당의 잔디밭에서 풀을 뽑고 있는데 텃밭에서 삐약삐약 울음소리와 요란하게 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 일인가 싶어 부리나케 가보니 작은 기러기 새끼 세 마리가 울타리 틈바구니를 통해 밖으로 나와 있다. 어쩌다가 좁은 틈새를 비집고 나왔지만 다시 들어가려고 하니 만만치가 않았나 보다. 새끼들은 어미와 형제들이 있는 울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삐약거리고, 어미는 집 나간(?) 새끼를 바라보며 연신 울타리의 망에 부딪히며 푸닥거리고 있었다.

 

어미 기러기의 눈에는 새끼 기러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가 보다! 여느 때에는 큰형이 울타리로 다가가면 멀찌감치 달아났던 기러기는, 큰형이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타리 주변에서 새끼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퍼득거렸다.

 

의기양양하던 수탉들은 기러기 어미의 막무가내에 밀려 멀찌감치 떨어져서 이 사태를 멀뚱멀뚱 지켜만 보고 있다. 큰형은 기러기 새끼를 우리 안으로 다시 넣어주려고 새끼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미 기러기는 눈에 불을 켜고 큰형에게 달려들었으나 연신 철망에 부딪히고 말았다.

 

새끼를 생각하는 기러기의 눈에는 주인인 큰형도, 튼튼한 철망도 보이지 않는가 보다. 큰형은 요리조리 피하는 기러기 새끼들을 붙잡아 우리 안에 무사히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사이 사생결단으로 달려들던 기러기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여 단숨에 울타리를 넘어 버렸다. 아마도 큰형이 제 새끼를 해하는 줄 알고 미친 듯이 큰형에게 달려든 것일 게다. 그러나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된 것이다. 새끼들은 모두 우리 안에 있고, 어미만 밖에 나온 모양이 된 것이다. 상황이 끝난 줄 알았던 큰형은 또 다른 상황을 맞닥뜨린 것이다.

 

한숨 돌린 큰형은 이제 어미 기러기를 우리 안으로 넣으려고 다가가자, 단박에 울타리를 넘던 그 용기는 금세 사라지고 다시 겁쟁이가 되어 도망 다니기에 바쁘다. 분명 몇 분 전만 해도 높은 울타리를 넘고 큰형을 공격까지 하던 기러기였다. 자신이 방금 보란 듯이 넘었던 울타리는 넘지 못하고 계속 들어갈 구멍만 찾으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새끼를 둔 어미의 보호본능은 이처럼 강하고 돌변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평상시에는 겁쟁이인 어미이고 다른 닭들에게 집단 공격을 당해도 피하기만 했던 어미기러기였다.

 

시골 텃밭의 가축우리엔 겁쟁이 기러기가족이 산다. 어미의 품안에 있는 새끼는 든든하기만 하다. 수탉이여, 기러기새끼를 건드리지 말지어다!

 


태그:#기러기, #촛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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