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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한 지 벌써 엿새째, 현재 상황은 '물류대란'이라는 언론의 표현대로 매우 심각하다. 부산항을 비롯한 각 항구들은 100%에 가까운 장치율(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비율)에 더 이상 선박을 받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으며, 국내 곳곳의 많은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거나, 수출하지 못해 창고에 쌓여진 물품들을 보며 한숨짓고 있다.

 

반면 이런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움직임은 그렇게 기민하지만은 못한 것 같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함도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여론의 힘이다. 많은 언론이 지적하고 있듯이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은 '생계형 파업'으로서 범사회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와 같은 분위기가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면서 화물연대의 파업을 지지했던 세력 내부에서 분열이 생기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협상안과 상관없이 여러 조치들을 내세움에 따라 '이제 그만하면 됐다'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벌써 눈치 빠른 보수신문들은 예의 지겨운 경제위기론을 들썩이며 화물연대를 압박하고 있으며, 정부는 공권력 투입이라는 초강수를 슬쩍슬쩍 흘리며 화물연대를 협박하고 있다. 과연 시국은 어디로 흘러갈까?

 

"이번 파업은 생계형 파업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나는 화물연대 비조합 화물기사 3명과 18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제 화물연대 가입률이 10% 밖에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지금과 같은 파업이 가능했던 것은 비조합원들의 자발적인 가세 때문이었으며, 결국 같은 맥락으로 파업의 향방 역시 이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 본 기자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 기자는 현재 인천 연안부두 근처의 컨테이너 운송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기사들과 화주 등을 상대하면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비교적 풍부한 정보를 접하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기자 : 안녕하십니까.

기사들 : 안녕하세요.

 

기자 : 우선 모든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의 장기화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현재 정부와 화물연대 간의 협상이 난항에 난항을 거듭하면서 장기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면 여론도 나빠질 것이고, 무엇보다 하루 벌어 하루 쓸 수밖에 없는 기사님들 역시 어려운 상황에 처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 파업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사들 : 우리들도 파업의 장기화는 원치 않아요. 97년 IMF이후 자차(운송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차량)가 거의 모두 사라진 이후 일당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파업과 함께 계속 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의 파업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조합원 역시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파업은 생계형 파업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일해서 기껏해야 10만원 안팎을 버는 게, 오히려 움직이면 손해인 게 현실인데 어떻게 이대로 운송을 합니까? 제가 조금 힘들어도 화물연대를 주축으로 조금만 더 버틴다면 정부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요번의 화물연대 파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사님들은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으십니까? 평소 화물연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사들 : 저희도 원래 전에는 화물연대를 지지하고 로고도 붙이고 다녔습니다. 월 2만원씩 회비도 내고요. 그런데 06, 07년도 파업을 하면서 인식이 나빠졌습니다. 당시 개인에게 아무런 혜택도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화물연대 로고를 떼고 동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사들이 속한 회사에서도 화물연대 가입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기자 : 그럼에도 요번 파업에는 동조하신다는 거죠?

기사들 : 요번에는 어쨌든 생계형 파업이니까. 경유가 너무 올랐어요. 운송료는 10년 전과 그대로인데.

 

"표준 운임제, 그거 저번에도 한다고 한거야"

 

 

기자  :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의 협상과 상관없이 5가지 안을 내걸었습니다. 과잉공급을 개선하기 위한 화물차 구입, 연료비 30~40% 절약이 가능한 LNG 차량 전환 지원, 고속도로 심야 할증료 10톤 미만 화물차 확대, 표준운임제 제정을 위한 위원회 구성 및 연구·법제화, 현 운송 시장의 다단계 근절과 지입제 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이 그것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사들 : 우선 과잉공급을 개선하기 위한 화물차 구입은 말이야 맞는 말이죠. 97년도 워낙 많은 이들이 너도 나도 운송업에 뛰어들어 단가가 낮아진 거니까. 그런데 정부가 화물차 구매를 한다는데 그 기준은 어찌 할 거야? 결국 정부가 4천만원에 차번호를 사서 그 영업권을 폐차 시킨다는 것인데 누가 차를 팔겠냐고. 정부한테는 4천만원이지만 기사 개인에게는 생계수단이잖아요. 그 조치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각 노동자의 권리를 망각한 대책이 아닐까 싶어.

 

기자 : 나머지 항목들은요?

기사들 : LNG 차량 전환이야 뭐 찬성하지. 그런데 LNG가 경유만큼 힘이 있는 건가? 또 그만큼 연구 시간이 필요한 거 아냐? 그리고 고속도록 심야할증이야 우리는 이미 받고 있는 거니까 그렇고, 다단계 구조는 빨리 없애야지. 대형 운송사에 속하지 못한 소위 떴다방 기사들은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떼어 먹히거든. 이걸 해결하려면 큰 회사들이 자차들을 늘여야 되지 않을까? 또 뭐지? 표준운임제? 그건 웃겨. 그거 원래 저번에도 정부가 해준다고 했었던 거거든. 예전에 약속해 놓고 요번에 해주는 것처럼 생색내고 있는 거야. 화물연대의 이야기처럼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야 되는 문제지.

 

 

기자 : 그럼 화물연대 측 조건은 어찌 생각하세요? 우선 노동3권 보장, 표준 요율제 우선 법제화 및 조속한 시행, 유가 보조금 확대인데요.

기사들 : 노동 3권은 필요하지. 말이 좋아 우리가 개인사업주지만, 그거 뭐 우리가 하고 싶어서 했나? 회사에서 고정비 줄인다고 97년도(화물차운수사업법 제정)에 다 기사들에게 넘긴 거지. 화물연대의 주장은 옳다고 생각해요. 아마 화물연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각 운송사와 계약되어 있는 지입차량(차량은 회사가 소유, 구매는 운전자가 하는 방식)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될 거야. 노동 3권이 보장된다면 화물연대에 가입하겠다는 기사들도 있지. 그리고 표준 요율제는 아까 이야기 했듯이 정부가 미적거리는 거고, 유가 보조금 확대는 매우 필요하지. 경유가 너무 올랐어. 최소한 1500원 대에서 보조 해줘야 돼. 솔직히 운송료야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정해져 있잖아. 그건 개별 사업장에서 풀어야 되는 문제고. 그러니 정부가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유가 보조금이야. 너무 비싸. 그러니 기사들이 자진해서 움직이지 않지.  

 

"자기 혼자 먹고 살자고 움직이면 되겠어?"

 

 

 

기자 : 그런데 요즘 파업이 장기화 될 것 같자 조금씩 움직이는 기사들이 있잖아요. 대형 운송사에 속한 기사님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구요. 그래서 화물연대가 각각의 터미널 길목에 지키고 서서 운송하는 기사들한테 욕을 하고 협박을 하고, 경찰은 그 옆에서 제지하고 있는데요. 이런 화물연대의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들어보니까 옆의 운송사 기사는 어제 운송하다가 돌에 맞아 5명이 입원했다고 하는데.

기사들 : 물론 폭력은 잘못됐지.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다 같이 잘 살아 보자고 차를 멈췄는데 자기 하나 먹고 살겠다고 움직이면 되겠어? 들어보니까 평소 20만원대였던 인천-양주 간 거리를 요번에 100만원 받고 움직인 기사도 있다던데 그러면 안 돼. 그런 미꾸라지 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안 되는 거야.

 

기자 : 자차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죠? 자차 기사는 사업주가 아니라 월급쟁이니까 회사가 시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기사들에게까지 폭력을 취하는 건 문제가 아닐까요?

기사들 : 물론 그렇지만 이것 역시 어쩔 수 없어요. 앞 유리에 자차 차량이니, 군 수송 차량이니, 의약품 차량이니 써 붙이고 다니는 차들이 있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어차피 자차야 회사 차니까 화물연대의 폭력으로 망가졌다면 회사가 고치고, 사람이 다쳤으면 그것도 역시 회사가 보상해주어야지.

 

기자 : 요즘 화물연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연대해서 움직입니다. 엊그제도 여기 동인천역에서 시민들과 함께 촛불집회 및 가두시위를 벌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사들 : 개인적으로는 쇠고기 수입 반대해서 촛불집회에 나갈 수는 있겠지만 화물연대가 촛불집회와 연대하는 것은 반대예요. 정치하고 관련해서 집회하는 것은 반대거든. 왜 화물연대에 사람들이 많이 가입 안하냐면 화물연대가 민노총 소속으로 정치적 이유 때문에 차를 세우거든. 요번에 섬유노조가 민노총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 자기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민주노총이 그냥 툭하면 파업을 하자고 하거든.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재 운송료 인상 등을 위해서 파업에 참여한 거지, 쇠고기 수입하고는 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반대하면 각자 알아서 반대하면 되는 거죠.

 

기자 : 그래도 전체적으로 같이 파업하면 힘이 배가 되고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기사들 : 아냐, 그래도 정치적으로 연결하면 안 돼.

 

기자 : 혹 빨갱이 이야기가 나올까봐 그러세요? 요번에야 워낙 여론이 좋아서 그렇지, 전에는 빨갱이가 섞여 있어서 파업한다고 몰아갔잖아요.

기사들 : 아니지. 물론 예전에는 가능했지만 요번에는 파업이 빨갱이 때문이라고 선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거야. 요즘은 국민이 얼마나 똑똑한데.

 

 

기자 : 현재 이와 같은 상황은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세요?

기사 1 : 그야 물론 정부지. 대통령. 유가가 올라가고 있는 거 뻔히 보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손 놓고 있었던 거지.

기사 2 :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을 투입하면 아마 역효과가 생길거야. 생계가 안 돼서 차를 세운 사람들에게 억지로 차를 움직이라는 게 말이 돼? 대통령이 또 무조건 밀어 붙이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 이건 분명히 대통령의 책임이야

기사 3 :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구조는 이미 그 전부터 만들어져 왔던 거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야 대통령이 된 지 얼마 안됐으니까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고, 어쨌든 지금 상황을 잘 해결해야지 뭐.

 

기자 : 바쁘신데 고맙습니다. 어서 빨리 파업이 풀려서 기사님들이 마음 놓고 운전했으면 좋겠네요.

기사들 :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화물 기사들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재 화물연대의 파업은 결코 조합원들만의 의지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조합원들의 광범위한 암묵적 동의에 의해 진행되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정부가 언 발 오줌 누기 식으로 미봉책만 제시한다면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물류대란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좀 더 많은 노력을 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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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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