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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뒷심 발휘하나, 꺼지나.'

'뒷심 발휘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촛불의 고민이 시작됐다.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지 벌써 45일. 고민을 하는 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시기적으로 또 상황적으로 전환의 시기가 왔다. 

 

그동안 여중고생이 든 촛불은 '국민MT'와 100만 촛불대행진으로 발전했다. 촛불문화제는 거리 시위와 밤샘 농성으로 이어졌고, 광화문 사거리는 연일 시민들의 해방구가 됐다. 경찰과 몇 번 충돌도 있었지만, 새로운 집회 시위 문화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시민들은 계속 평행선을 달렸다. 촛불 민심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시민들의 한결 같은 요구는 '고시철회, 재협상 실시'지만, 정부는 "재협상 불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결국 촛불집회에 많은 힘을 보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지난 '6·10 촛불대행진'에서 "오는 20일까지 재협상 선언을 하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정부에 대한 최후통첩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촛불 피로증' 이란 말이 최후통첩 직후 등장했다. 핵심은 한 달 넘게 이어진 싸움으로 참석자들이 지쳤고, 사람들을 대규모로 끌어들일 수 있는 굵직한 이슈가 없다는 것이다.

 

촛불 피로증의 시작일까, 촛불의 새로운 발전일까

 

하지만 이런 촛불 피로증을 불식시키는 일도 있었다. 지난 미선·효순양 6주기였던 13일과  주말(14일)에는 다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서울광장을 메웠다. 또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공영방송 지키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의 촛불은 서울광장과 광화문을 벗어나 여의도 KBS와 강남 코엑스 앞까지 진출했다. 

 

촛불의 목소리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만 머물지 않고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 반대로 확산된 것이다. 동력 상실을 최소화 하는 '싸움의 기술'을 고민하던 국민대책회의도 이른 흐름에 편승해 새로운 전술을 짰다. 바로 요일별로 촛불문화제 집중 이슈를 정한 것이다.

 

16일 촛불문화제는 공영방송 지키기를 내세웠고, 17일에는 대운하 반대를 외쳤다. 19일에는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도 예정돼 있다.

 

"광우병 걸려 의료보험 민영화 때문에 치료 못 받아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 달라"는 구호가 증명하듯 그동안 촛불문화제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국민대책회의의 전술이 마냥 뜬금없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대책회의 요일별 집중 계획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명박 정부의 주요 5대 정책(미국산 쇠고기 수입, 대운하 건설, 공기업 민영화, 교육 자율화, 공영방송 민영화) 반대로 싸움의 방향을 돌리면 힘이 분산되고, 무엇보다 촛불집회의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는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을 반대하는 게 촛불의 정신"이라며 국민대책회의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5대 정책 반대로" VS "계속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당장 20일 최후통첩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만, 정부의 태도는 요지부동인 상황. 국민대책회의의 지도력은 도마 위에 올랐고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고민의 핵심은 이것이다.

 

"무엇을 목적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우선 국민대책회의는 정부가 최후통첩 시한인 20일을 넘길 경우 '48시간 비상국민행동' 등 대규모 행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21일 토요일에는 다시 '100만 촛불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다. 국민대책회의는 16일 "19일 국민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24·27일에도 범국민 토론회를 열어 시민과 네티즌들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여러 의견을 수렴해 이후의 활동 방향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백지 위임장을 시민들에게 던진 셈이다.

 

사실 그동안 국민대책회의는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최대한 보장하는 쪽으로 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 5월 24일 촛불문화제가 첫 거리 시위를 벌였을 때는 물론이고, 시위대와 경찰이 처음으로 충돌했던 지난 1일에도 국민대책회의의 지도력은 현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시민들은 처음부터 지도부 없이 촛불을 들었고, 스스로 토론하고 합의해 거리 시위를 결정했다.

 

촛불의 미래, 시민들이 배운 민주주의에 달렸다

 

이런 토론과 직접민주주의는 '08년 촛불'의 힘이자 정체성이다. 권위를 부정하는 끊임없는 소통의 결과물이다. 그 집단적 소통의 결과물에게만 시민들은 유일한 권위를 부여해왔다. 이 권위의 힘은 지난 11일 새벽 '명박산성'으로 불린 컨테이너 장벽 앞의 7시간 마라톤 토론에서 정절에 이르렀다.

 

결국 촛불의 향방은 지난 45일 동안 경험한 대로 시민들이 어떻게 토론하고 어떤 내용으로 합의하느냐에 따라 달리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주가 촛불집회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1일 '명박산성' 앞 토론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의 토론이 필요하다.

 

변수도 많다. 미국으로 떠난 추가협상단이 어떤 보따리를 풀어 놓을 것인지, 이명박 대통령의 인적 쇄신 폭은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장마가 언제 어느 정도의 비를 뿌릴지에 따라서도 촛불의 양과 뜨거움의 강도는 달라질 것이다. 게다가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보수우익 진영의 공세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08년 5월 2일 여중고생들이 든 촛불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촛불이 6월로 이어지고, 100만의 불길로 옮겨 붙을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자유롭고 장벽이 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타협의 힘이었다.

 

촛불의 미래는 08년 거리의 시민들이 학습한 새로운 민주주의와 또 다른 세상을 그리는 상상력에 달려 있다.

 


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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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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