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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아름다운재단'과 공동 기획한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학교 및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나홀로 입학생을 위한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마을 주민들의 '소원'을 취재해 이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프라 지원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외국에서 시집온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거나, 마을회관에 공용 컴퓨터와 인터넷통신망을 갖춰줄 수도 있다.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은 매월 '나홀로…' 기획의 취재 사례 가운데서 '소원우체통' 지원 대상 공동체를 선정해 연내에 10여 곳에 대해 지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공작산을 품고 있는 노천초등학교(교장 이금옥)는 전교생이 10명밖에 안 되는 '미니학교'다. 그렇지만 전교생이 1대1 개별학습으로 '완전학습'에 도전하는 밝고 힘찬 학교다. 특히 이금옥 교장이 교과교육 과정과 연계해 운영하는 '방과후학교'는 학부모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학년별 학생수 분포를 보면 그 미래가 밝지 않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 노천리에 자리 잡은 이 학교는 올해 '무려' 9명이 졸업하고, 1명이 입학했을 뿐이다. 현재 5, 6학년은 각 3명씩이지만, 4학년은 2명이고, 3학년은 아예 없다. 그나마 1명씩 있는 1, 2학년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5년 이내의 취학 대상자가 1~2명밖에 안된다.

 

200여 가구가 사는 노천 1·2리는 '장수마을'이다. 그래서 노인은 많지만, 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지난 5월 7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 학교는 동네 어르신들을 초청해 경로잔치를 벌였다. 전교생은 10명인데 참석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40명이 넘었다.

 

지수네 집은 3대에 걸쳐 초등학교 동문

 

그러니 이 학교의 새내기 박지수(8) 양은 학교에서는 물론, 온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염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수네는 이 학교 '지킴이' 가족이다. 지수의 둘째언니 현지는 이 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고, 큰언니 민지는 올해 졸업했다.

 

지수 엄마 염남순(37)씨도 이 학교 37회 졸업생이다. 염씨는 3남1녀 중 외동딸인데 오빠들도 모두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뿐이 아니다. 노천리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염씨의 아버지 염봉섭(65)씨도 이 학교 9회 졸업생이다. 지수와 엄마 그리고 외할아버지까지, 3대가 노천초교 동문인 것이다.

 

염씨가 입학한 80년 당시에는 1학년만도 30여명이었다. 그러니 염씨로서는 짝꿍도 없이 혼자뿐인 딸아이가 안쓰러울 만도 하다. 그러나 염씨는 딸아이가 입학하면 '나홀로 입학생'이 되는 것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 이유는 간결하고 단호했다. 염씨는 "벼를 '쌀나무'라고 말하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접하지 못하는 것을 접할 수 있고, 아이가 자연 속에서 자라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신입생이 혼자인 노천초교에 보낼지 말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천초교는 현재 1·2학년, 4·5학년, 6학년의 3학급으로 나눠 통합반 복식수업을 하는 통폐합 대상학교다. 통폐합 대상교로 선정된 지가 이미 몇 년 째라서 학부모들도 그 의미에 대해 무감각해졌으나, 내년과 그 이듬해에도 입학생이 없어 3복식 수업을 하게 되면 통폐합은 엄연한 현실이 된다.

 

94년 이후 홍천 관내 40개교 이상 폐교, 남은 학교는 39개교

 

 

노천초교는 1935년에 간이학교로 인가를 받아 올해로 59회까지 총 184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이 학교 졸업생인 조일현 전 국회의원이 1일 명예교사로 '꿈을 가진 삶을 살자'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삶은 졸업한 학교의 크기가 아니라 꿈의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이금옥 교장의 아이디어였다.

 

그런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다. 다른 도에 비해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강원도엔 소규모 학교가 많다. 미니학교가 많고 교육의 효율성을 따지다보니 폐교된 학교 수도 많다.

 

강원도에서도 땅이 넓은 편인 홍천의 경우, 본격적으로 폐교조치가 시행된 94년 이후 40개가 넘는 초등학교(분교 포함)가 문을 닫았다. 이에 비해 현재 홍천 관내의 초등학교(분교 포함) 수는 39개교다. 폐교된 학교가 남은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이다.

 

이 교장이 지난 77년 앳된 처녀 시절, 교사로 홍천 관내에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홍천에 초등학교가 86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27개(본교만)뿐이다. 그때만 해도 교사들은 대부분 관사나 사택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터널이 생겨 교사들 대부분이 홍천읍과 춘천시에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한다.

 

교통이 편리해질수록 인구는 도시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홍천군에만도 학생수가 1천명이 넘는 학교가 홍천초교, 남산초교 등 두 곳이나 된다. 그래서 학생수가 100분의 1도 안되는 노천초교 학부모들의 유일한 걱정은 읍내의 홍천초교나 남산초교 아이들에 비해 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니학교' 노천초교의 인기 비결은 두레학교와 방과후학교

 

그러나 적어도 여기서는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다. 인구밀도가 낮은 강원도는 이른바 '두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테면 홍천군 동면 지역에는 속초초교와 월운·좌운분교, 그리고 노천초교 등 학교가 네 곳에 있다. 수업은 각자의 학교에서 따로 받지만 체육대회와 소풍은 함께 간다. 이런 식으로 두레를 자연스런 '친구 맺어주기'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레학교와 학력이 무슨 상관일까? 물론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다만, 학생 수가 적은 노천초교는 두레학교 운영비 등으로 다양한 방과후학교를 운영중이다. 학생수가 적은 것이 이럴 때는 이점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에서 두레학교 운용비를 학급별로 50만원씩을 지원하면 학생 수가 적을수록 배당이 많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도회지 학교에서는 개인당 10만원 이상 내는 수학여행비와 체험학습비도 이곳에선 다 공짜다. 두레학교 운영비에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들과의 전국적인 형평성을 고려해 학부모에게 급식비만 부담토록 하고 사실상 모든 것이 무료다.

 

교과교육 과정과 연계해 개설한 방과후학교는 매일 운영된다. 우선 인근의 인근 제1야수대(야전수송교육단)에서 우수한 강사 자원을 지원받아 외국어와 미술교실을 운영중이다. 영어와 일어, 미술 등을 전공한 군인들이 방과후학교 강사인데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실력자들이 적지 않아 큰 도움이 된다.

 

그밖에 노천초교는 두레학교 운영비로 유료강사를 초빙해서 태권도(1주 3시간)와 리코더 교실을 운영중이다. 올해부터는 바이올린 10개를 새로 구입해 바이올린 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학예부·미화부는 없는 대신에 '의형제 가족' 모임

 

이밖에도 이 학교는 교장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큰별·작은별 이야기방'이라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작은별'은 아이들이고, '큰별'은 위인과 성현들이다. 위인·성현들에 대한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해 위인·성현들의 인품을 닮아가는 지혜를 배우도록 하는 인성교육이다.

 

'의형제 맺기'도 이 학교만의 독특한 자치활동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의 전교 어린이회에는 다른 학교처럼 학예부나 미화부 같은 부서가 없다. 그 대신에 의형제 가족 모임이 있어 매주 토요일에는 주제가 있는 의형제 발표조회를 갖는다.

 

예를 들어 이 학교에는 의형제를 맺은 세 가족 모임이 있다. 이들은 가족 모임별로 책읽기나 동화구연발표대회 등을 함께 하면서 의형제간에 '또래 상담원'과 '학습 도우미'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동체 의식과 꿈을 함께 키워 나간다.

 

지수의 '의형제 가족'은 다빈이와 창수, 그리고 현지 언니다. 지수에게 현지는, 집에서는 '친언니'이지만 학교에서는 '의형제'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수는 엄마를 보자 집에서는 천사처럼 행동하는 언니가 학교에서는 가끔 '말을 안 듣는다'며 자기를 때린다고 이른다.

 

5·6학년생들은 전원이 매월 2·4주 '놀토'(학교수업이 없는 토요일)에 강원 영재학교에 입교해 논술과 도시 체험학습 시간을 보내는데, 영재논술학교는 특히 학부모들에게 만족도가 매우 높다. 염남순씨는 "의욕적으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장 선생님과 학교에 늘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금옥 교장은 "영재학교 입교는 실제 교육효과도 크지만 도시 학생들보다 학력이 뒤질지도 모른다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갖는 막연한 불안심리를 해소하고 작은 학교지만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노천리에 어쩌다 한번은 '기적'도 일어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방과후학교'도 학교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학교가 없으면 그 좋은 방과후학교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노천리 주민들의 주업은 농사다. 비닐하우스에서 무공해 채소를 재배하는 한편으로, 최근엔 인삼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요즘은 펜션도 생겨나고 있으나 주로 외지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학교 바로 앞에 새로 개발되는 전원주택 단지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혹시나 외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이주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그러나 대개 그렇듯이 은퇴자들이 입주해올 경우 취학 연령 아이들이 이사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어쩌다 한번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학교의 운영위원장인 장영준(47) 목사와 급식 조리를 책임지고 있는 '강남댁' 김경희(49)씨의 외아들인 5학년 장성욱 군이 그런 경우다.

 

성욱이는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8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 아빠 장영준씨가 8년 전 서울 역삼동 충신제일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이곳에 노천제일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김경희씨는 "영준이가 4살 때 왔는데 적응하는 데 3년 정도 걸렸지만 성욱이가 이곳에서의 생활을 너무 좋아한다"고 만족해 한다.

 

김씨 또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호평했다. 김씨는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전인교육에 열성적이어서 피아노, 오카리나, 플롯은 물론 바이올린까지 최고 수준의 외부강사를 초빙해 가르치고 영재교육원의 논술학교까지 다닌"면서 "시내에 사는 것보다 매달 평균 교육비 100만원은 절감하는 셈"이라고 자랑했다.

 

지수의 꿈과 엄마·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질까

 

 

성욱이 엄마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농사를 짓지 않은 '목사 사모님'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부모의 자격으로 급식을 지원하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주민들이 '농사도 없으니 적임자'라고 급식 조리를 강권해 5년째 계속하고 있다. 김씨는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했는데 사진이 나가면 다 알게 될 것"이라며 "자원봉사로 급식을 돕다가 코가 꿰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를 개척한 것도 마을 주민들이었다. 염봉섭씨는 처음 학교를 지을 때도 주민들이 절반을 부담하고 나라에서 나머지 반을 부담해 지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때도 이미 일종의 매칭펀드(matching fund) 형식으로 학교를 지은 셈이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이 정서적으로 대부분 학교의 통폐합보다는 존치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둘러싼 교사(校舍) 뒤편에 자리 잡은 가건물에 마련된 민속자료실 겸 생활예절관 입구에는 학교의 옛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귀염둥이 손주를 보러온 염봉섭씨는 이 교장과 함께 이 사진을 보며 "6·25 동란 직후에 교사는 초가집이었고 당시 미군이 운동장 우측 모퉁이에 화장실을 지어줬다"고 회고했다.

 

지수의 할아버지이자 학교 대선배인 염씨는 "이렇게 잘 지은 학교가 아이들이 줄어들어 통폐합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2복식 아닌 3복식 수업을 하더라도 학교가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수의 엄마이자 역시 학교 선배인 염남순씨는 소원을 묻자 "비가 올 때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한 아담한 실내체육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수의 소원은 뭘까? 지수는 매주 토요일에 교장실에서 노래, 편지읽기, 연극 등으로 발표조회를 하는데 자기는 편지쓰기도 할 줄 안다고 자랑이다. 짝꿍 친구가 없어서 서운하지 않냐고 묻자, 엄마를 보며 "친구가 없어도 좋은데 우리 언니가 학교서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딴소리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자 "피아노 선생님"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지수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면서 "'어릴 때'는 (꿈이) 유치원 선생님이었다"고 덧붙였다. 학교에 피아노가 1대 있지만 낡아서 수업에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지수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고, 엄마와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나홀로입학생, #홍천 노천초교, #박지수, #방과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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