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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문제는 이제 초등학생들마저 전문가로 만들만큼 상식이 되었다. 이제는 정책의 문제점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때다. 이번 광우병 파동만 봐도 이명박 대통령 뒤에는 미국 축산 자본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이들에 의한 엄청난 생체실험이다. 그런데 왜 축산업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것일까.

시청앞 거리에서 고미숙씨가 '광우병과 위생권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시청앞 거리에서 고미숙씨가 '광우병과 위생권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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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 대표 고미숙씨는 "이번 광우병 사태는 미국 축산업자들에 의한 신체 개조 프로젝트"라 불렀다. 또 "지금 광우병 정국은 '생명권'이란 차원에서 권력과 문명을 대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 문화제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돌아가는 길, 못내 아쉬움이 남아 쭈뼛거리는데 한 무리가 외친다. "잠시 후 고미숙씨의 길거리 강연이 있습니다. 먹을거리도 준비되어 있으니 오셔서 놀다 가세요." 고미숙씨라면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자로,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문체가 특징이던 저자가 아니던가.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예기치 않게 강연을 듣게 되었다. 10일 밤 12시 반. 장소는 시청과 덕수궁 대한문 사이로 그야말로 '길거리' 위에서다. 주제는 "광우병과 위생권력"이다.

"올해가 음양오행론적으로 화기(火氣)가 충만한 때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남대문도 불에 타버렸고, 지금 여기서는 촛불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 대통령은 촛불에 불을 붙여주고 있는 놀라운 영적 능력을 보여주고 있죠."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진다. "들어볼까?" "어려울 것 같은데…" 머뭇거리며 뒤에 서있던 한 20대 커플이 "재밌겠다"로 말을 바꾸며 자리를 잡았다. 짐을 내려놓은 그들에게 마침 주최 측이 준비한 주먹밥과 만두가 돌아온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수유 + 너머'에서 함께 온 식구들 30여명이 자리 잡았던 '강연장'이, 오가던 시민들이 참여하면서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위생권력의 적자, '괴물'

봉준호 감독의 영화<괴물>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놀라운 힘과 속도를 자랑하는 괴물 몸체 대부분은 입이다. 길게 발달된 꼬리는 대부분 먹잇감을 저장하는 데 쓰인다. 영화 내내 괴물은 '먹는 것'에만 집착한다. 무지하게 먹어치우고 저장한다. 게다가 외롭다. 혼자 움직인다. 오직 먹잇감을 찾으러 밖으로 나올 뿐, '먹는 게' 움직임의 전부다.

고미숙씨는 이 괴물이 '우리 사회의 위생권력이 만든 적자'라고 말한다.

이 괴물은 사실 미8군 영안실에서 흘린 포름알데히드 때문에 만들어졌지만, 이 생물체가 한강에 출현하자 정부는 '바이러스' 탓으로 괴물을 규정한다.

우리 눈에는 흉측하게 보이지만, 그러고 보니 사실 우리 모습과 많이 닮았다. 끊임없이 먹을거리를 찾고 그걸로 모자라 저장하는 데 열을 올리지만, 외부와는 소통 없이 단절된 모습이다. 우리는 이제 이미 바꾸어진 우리 몸을 다시 돌이키려는 노력과 함께, 이 괴물을 통제하려는 '위생 권력'과 싸워야 한다.

영화 <괴물> 한 장면.
 영화 <괴물> 한 장면.
ⓒ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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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바이러스와 너무 다른 얼굴, 광우병

"지금 광우병 파동은 기존 위생 패러다임의 붕괴를 뜻합니다."

2003년 사스 파동 때로 돌아가 보자. 중국에서 사스로 숨진 사람은 지금 쓰촨성 지진 0.1%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이라크 전쟁 소식을 제치고 9시 뉴스에서는 하루에 40분 이상이 사스 소식으로 채워졌다. 국내에서 사스 발병으로 인한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사스의 모든 괴담은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귀국했다. 그러나 정부에서 한 일이라곤 공항에서부터 체온을 체크하는 일이 전부였다. 당시 정부는 '위험지역'에서 들어오는 여행객들을 열감지 카메라로 찍었다. 고미숙씨도 당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의 집필을 위해 연암의 행적을 따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 함께한 일행 중 한 명의 체온이 약간 높게 나왔다. 그러나 "2주간 사람들과의 접촉을 금하라"는 당부만 받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그 후 그 학생의 반응이었다. 실제 그 학생은 하루 종일 집에서 손만 씻고, 대인접촉 없이 지냈다. 위생권력이 작동하면, 사람들은 그 권력에 모두 고분고분하게 된다. 정부는 병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대중을 그렇게 길들였다.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명백히 이동경로가 있는데, 왜 사스는 지독히 미워하고 프리온은 편애합니까. 이것이 바로 위생권력의 얼굴입니다. 정부가 정확한 과학적 사실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확률이 낮다는 말만 합니다.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 환자가 발생하고 5백만 마리의 소를 화염처리 했습니까."

이어 고미숙씨는 지금 광우병 파동은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에 이식된 위생 패러다임의 붕괴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대중은 정부도 믿을 수 없고, 과학도 믿을 수 없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현 정부 대응 방식은 다르지 않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기다리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 <괴물>에서 보건당국 관리들이 "기다리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부는 바리케이트를 치고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수법은 위생권력이 가진 전략 중 하나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일상에서 즐겨야만 이길 수 있는 거죠."

지금 국민들은 한쪽은 우리 안의 괴물과, 다른 한쪽은 위생권력과의 지리한 싸움을 시작한 셈이다. 미 축산업계 자본이 동원된 한미 공조와 쇠고기 입맛에 길들여진 우리의 몸, 양방향 싸움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촛불을 들고 나와 춤을 추고, 축제처럼 즐기는 촛불 문화제가 그 의미를 발하는 지점이다.

생명권은 내 몸에 관한 권리를 내가 갖는 것

그에게 "자본이 위생권력을 길들이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검역주권은 국가 간의 문제겠지만, 생명권은 개인의 문젭니다. 내 몸에 관한 권리를 내가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외모만 '절차탁마'할 뿐, 병이 들면 무조건 약국이나 병원에 먼저 갑니다. 자기 몸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요."

마지막 괴물을 잡은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삼촌(박해일 분)이 준비한 '꽃병'은 마지막에 어이없게 깨져버렸다. 고모(배두나 분)의 화살도 맞았지만, 여전히 괴물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달려든다. 결정적으로 배강두(송강호 분)가 던진 철근 콘크리트에 맞고 나서야 괴물은 몸을 떨군다.

"화살, 화염, 철근 콘크리트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구가 아닙니다. 세련되지 않죠. 야생적 신체와 야생적 무기가 결합해야 생명을 구하게 된 셈이죠."

맨몸으로 작은 촛불 하나만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이 원리를 벌써 깨치고 있었던 것일까.

'기습적'으로 열린 강연은 1시 10분쯤 끝이 났지만, 질문과 함께 '자유 발언'이 쏟아졌다. 인천에서 온 조성환씨는 고미숙씨에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주문했고, 일산에서 온 40대 남성은 "헌정 질서 상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21세기에 맞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접 키운다는 한우 사진을 들고 나온 축산업자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에 한 마디 하겠다"는 70대 노인도 있었다.

"저희가 앰프를 2시간만 대여를 해서요. 이제 아마 얘(앰프)가 힘이 달릴 거예요." 1시 50분쯤, 사회자가 애교 섞인 말로 자리를 정리했다.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참석하게 됐다는 교사 이은정씨는 "고미숙씨가 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직접 강연을 듣게 돼서 좋았다"면서 "이제 이 싸움을 더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그:#광우병, #위생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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