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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 '깨끗하게 단념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발버둥질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 경우를 포함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세상, 아직은 살아볼 만하다'고 조금이라도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저자 신숙옥)

 

우리 시대, 악(惡)은 무엇이고 악인(惡人)은?

 

재일 교포 3세 신숙옥의 <惡人예찬>은 제목만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책이다. 악(惡)은 나쁜 것. 따라서 악인은 우리 사회(고금동서를 막론하고)에서 추방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13세기 일본. 농민들은 밭을 갈면서 어쩔 수 없이 땅속 벌레들을 죽여야만 했다. 사람들은 이런 농민들을 '살생을 했으니 극락에 갈 수 없는' 하등의 인간, 즉 '악인'으로 취급했다.

 

당시, '돈깨나' '권력깨나' 있는, 또한 '가문 좋은' 귀족들은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험한 일을 모두 아랫것들에게 시켰기에 농민들처럼 벌레를 죽이는 살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 이런 그들은 자신들을 '살생을 하지 않은 선한 사람이라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사회가 그랬다.

 

이런 모순을 뒤집어 버린 것은 당시의 고승 신란(1173~1262). 그는 "'악인'이야말로 극락왕생할 수 있다"며 수탈하는 쪽의 범죄를 지적하면서 사회 기득권 세력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을 비판했다. 저자가 말하는 악인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적인 의미의 악인이 아닌, 신란이 귀족층을 비꼬아 말한 그 악인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저자에 의하면 현대의 일본도, 신란이 살았던 시대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때처럼 돈·권력·명예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악'을 정당화하고자 도리어 사회 약자들을 '악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가령, 거품경제가 빠지고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서 "국익이 우선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참고 견뎌라. 임금인상도 요구하지 말고 파견사원으로 만족하라"라는 식의 요구를 앞세워 회사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부려먹고 국가는 제도와 정책으로 국민을 무시하기 일쑤라는 것.

 

"지금 이 나라에서 돈· 연줄·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정의'와 '평등', '공정'은 꿈에 불과하다. 돈·연줄·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이것들을 요구하는 행동을 하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거나 '볼썽사납다', 나아가 '발버둥질 친다'고 비난받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생각이 '발버둥질'을 주저하게 만들고 희망에 도전하는 의지를 꺾고 있다. 그래서 '부정'과 '불평등', '불공정'은 사라지지 않는다."(책 속에서)

 

이런 일본 사회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최고위층에게 얼마나 충성스러운가(회사에 얼마나 순종적인가)로 결정되는 승진과 부당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어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국민들, 나라의 정책으로 수십 년간 살아온 땅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사회와 일터에서 차별당하는 여성들,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이 책을 내기로 한 데는 저자가 이 책에 쓴 일본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우리 사회 역시 '체면이 서지 않는다'거나 '사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진정한 정의가 훼손되고 차별과 부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사회를 향해 세계를 향해 열린 도리가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차별 당하고 학대 받아 온 수많은 약자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약자가 고립되기 쉬운 상황에서 손을 잡아야 할 진정한 친구와 이웃을 찾아내는 여행이다."(출판사의 덧붙임 글)

 

"부당한 국가와 기업에 제대로 화내고 제대로 싸워 이기자!"

 

저자는 '시보쿠사 농민투쟁'이나 '스미모토 재판' 등, 일본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의 쟁점이 되었던 투쟁들을 예로 들어 끊임없이 싸울 것(발버둥질)을 격려한다.

 

신숙옥이 말하는 '발버둥질(싸움,투쟁)' 방법

①조바심하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오랜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싸워 이기는 법-자신의 체력을 조절하면서 상대의 힘을 빼는 방법.

 

② 자신만의 생각을 소중하게: '주먹도 치켜들지 않는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리타공항은 이용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국가와 기업의 물건을 외면, 불매 운동 등을 하는 일본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불매방법 제시.

 

③배짱이 두둑하면 할 수 있다: 삶의 터전을 국가에 일방적으로 빼앗긴 '시보쿠사 어머니'들은 투쟁 중 부당한 기동 검문에 버스에서 일제히 내려 소변을 누는 등, 기발한 싸움 방법으로 공권력을 꼼짝 못하게 하고 관심두지 않는 사람들까지 주목! 동참하게.

 

④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반론한다: 국가 권력이나 기득권자들이 변명을 어떻게 하든 그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확고하게 피력한다.

 

⑤때로는 운도 자기편으로:기회를 시기적절하게 이용하면 훨씬 큰 효과를.

 

⑥'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린다:공감하여 함께 싸울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문구를 티셔츠 등에 새겨 넣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동조시켜 싸우는 방법 등.

 

⑦기회를 엿보는 것도 발버둥질이다:무엇이 정의고 어떻게 행동할까. 그 이유와 논리를 생각하는 일은 쉽다. 어려운 일은,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한 발 뒤로 물러서서 싸움을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도(설명은 책속 내용을 필자가 정리).

국가나 대기업은 '달걀로 바위치기'처럼 절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아 희망도 없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이 책은 싸워야 할 이유와 그 싸움의 방법을 갈래지어 소개한다.

 

<악인예찬>은 모두 6장, 이중 '5장- 발버둥질에도 요령이 있다'는 본격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대로 싸우는 방법, 그리하여 이기는 방법은? (오른쪽의 박스기사 참고)

 

국가의 권력, 잘못된 제도나 정책과 싸워라! 비양심적인 기업들과 싸워라! (이렇게) 끝까지 싸워 이겨라? 그래서 책의 내용은 까칠하고 강하다. 그러니 이 정도의 설명은 아무래도 미흡하다.

 

분명한 것은 <악인예찬>을 읽는 동안 2008년 50만 촛불의 필요성과 의미, 가치, 좀더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 등을 조목조목 가닥지어 생각해 보았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3세로 일본과 일본사회의 편견과 끊임없이 싸우며 성장한 저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력의 자칭 '못생긴 여자'. 이런 저자는 인권이나 사회문제 등 소수 약자들을 위한 운동과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위치에 있는 현장 활동가다.

 

이런 이력의 저자가 끊임없이 싸우며 터득한 것들이라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생생하며 설득력 있다. 미국산 쇠고기와 끝까지 싸워 이겨야만 하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쓸모 있는 싸움(투쟁) 이야기들이랄까?

 

"화내라. 싸워라! 끝까지 싸워라" 불편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

 

저자 신숙옥은 <악인예찬> 이전에 <화내는 법>(푸른길 펴냄)이란 책을 쓴 바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아직도 화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힘이 없고 용기가 없어서', '체면이 서지 않아서' 등의 문제로 '억울하지만 할 수 없이 참고 살아가는(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화를 못 내고 있느냐?"라며 화를 내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독려하며 화를 내라고 충동(?)한다.
 
부당한 대우에 왜 화내지 않는가? 왜 화내지 못하는가? 차별받는 여성들이여! 차별하는 사회와 남성들에게 화를 내라! 당연히 화를 내야 한다. 그리하여 싸워라. 싸움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제대로 싸워 이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싸우는 방법들이 있다. <악인예찬>과 <화내는 법>은 이런 책들이다.
 
화를 내야 하는 상대, 그래서 싸워야만 하는 상대는 한 개인의 문제와 관련된 국가의 정책이나 회사만이 아니다. 저자는 이념 때문에 수많은 재일조선인들의 인권을 사각지대로 내몬 조총련, 자국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껍데기 민주주의로 약소국들을 간섭하고 조종하는 미국을 비판한다. 친미의 일본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중략) 이러한 사실들은 거대 국가에 의한 국제적인 '본때보이기'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본때를 보여 준 미국에 대해 전후 일관된 자세로 추종해왔다. 많은 일본의 지도자들은 미국에 복종을 한 덕분에 전쟁 책임에서 벗어났고, 아시아에 대한 전후 보상도 싸게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은인인 셈이다. 한편 그런 일본에 대해 불신감을 키우고 있는 주변 국가들도 미국이 일본을 확실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안심이라고 인식한다. 이것은 바로 미국의 생각대로 된 것이 아닌가?
 
…(중략)힘이 있는 자는 사람들을 분단시킴으로써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의심하게 하고 계속 싸우게 해놓고 중재자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이익을 얻는다. 상투적인 수단이다."(책 속에서)
 
일본에서 독하고 강한 여자로 소문난 저자는 <화내는 방법>에서보다 <악인예찬>에서 훨씬 독해진 듯하다.
 
<화내는 방법>을 읽는 동안 최근 몇 년간 굴곡을 겪으면서도 '제대로, 현명하게 화내지 못하고 있는 내 스스로의 문제점'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악인예찬>을 읽는 동안 '마음은 있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 '참여한 적 없어 어색해'라는 친구들에게 참여의 필요성을 설득해 "6월 13일에 촛불광장에서 만나자"라는 '싸움약속'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악인예찬>(2008년 5월)<화내는 법>(2005년 3월)은 신숙옥이 저자, 푸른길 펴냄, 값은 각 10,000원이다.


악인예찬 - 신숙옥이 제안하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비결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푸른길(2008)


태그:#자기계발, #신숙옥, #화내는 법, #악인예찬,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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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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