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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딱 때가 맞을 수가 없었다. 대규모 촛불문화제가 열리기로 예정된 6월 10일에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민 끝에 광화문에 가기로 했다. 3시쯤 광화문에 도착하면서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여 있어 붐빌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기자가 도착한 시간에는 아직 여유가 있어보였다. 이순신 동상만 빼고.

 

위풍당당하게 세종로 사거리(일명, 광화문사거리)를 내려다보는 이순신장군 동상 앞은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황당했다.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 10일 아침까지 빈 시간이 생기자 경찰 측에서 미리 손을 쓴 게다.

 

경찰 측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중심으로 설치한 거대한 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는 6·10 촛불문화제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집회가 되리라는 예상과 그 엄청난 인파가 자칫 돌변할 경우(?) 그 힘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작품이다.

 

두려움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지를 예상 못한 무지함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여하튼 이순신 장군은 그 어느 때보다 더워보였고 안쓰러워보였다. 누가 누구를 지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머리 위에는 들썩이고 발아래는 고요했다

 

광화문에 도착한 기자는 시간이 좀 넉넉해서 잠시 교보문고에 들르기로 했다. 이미 모여들기 시작한 다른 시민들처럼 기자도 맘이 조금씩 콩닥거렸다. 그런데, 교보문고를 들어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던 기자는 내심 깜짝 놀랐다. 교보문고 안은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낯설다 싶을 만큼 모두들 차분했다. 붐비지도 않았다.

 

바깥 상황과 비교하여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던 교보문고 안에서 기자는 문득 천장을 쳐다보며 이른바 현 시국을 떠올렸다. 그리고 짐짓 모르는 듯 곱씹어보았다.

 

'세상이 거꾸로 된 것 같아.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 뭣 때문에, 누구 때문이지?'

 

 

두려움인지 걱정인지 모를 생각을 하던 기자는 머뭇머뭇하다 다시 교보문고 문을 나서서 현장으로 들어가는 새 문으로 다시 들어갔다. 새로 들어간 문은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만큼 인파로 가득찰 것이기에 기자는 잔뜩 긴장을 하며 촛불문화제를 기다렸다.

 

5시 30분경, 이순신 장군을 등지고 연단 설치가 시작되다

 

 

공공운수노동자 총궐기대회 집회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사이, 같은 공간에서 촛불문화제를 이끌 연단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심판' '전면재협상'이라는 두 개의 애드벌룬은 촛불문화제 내내 연단을 장식하며 뜨거운 시민 열기를 그렇게 대신 전해주었다.

 

세종로 사거리 인근을 돌던 기자는 갖가지 현수막,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대를 보곤 했다. 내용도 가지가지, 복장도 가지가지, 표정도 가지가지, 모든 게 제 모습 그대로 묘하게 어우러졌다. 한 가지 재밌던 건 오마이뉴스 방송차량을 실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자는 이후 집에 갈 때까지 내 나름대로 현장을 담기에 바빴다.

 

오연호 대표를 코앞에서 지켜보고도 본 기자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게 내심 재미있었다. 가족 인터뷰 기사로 많은 인기를 얻은 한 시민기자와 대화를 나누다 자칫 시민발언대에 나설 뻔한 아찔한 경우를 빼고 말이다.

 

'뿔난 여성들의 대행진'을 필두로 거리행진 시위대를 눈에 담다

 

이미 보수집회로 열기가 뜨거워 사람들 간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던 시청 앞 광장에서 서서히 시민들을 맞이하던 세종로 사거리까지 기자는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오후 6시를 넘기면서, 기자는 때로는 혼자서 발길 닿는 대로 걷기도 하고 때로는 거리행진 시위대를 따라 가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오마이뉴스에 뭔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누비기도 했다.

 

밤 9시 조금 전, 아마 8시 30분 좀 지난 때였던 것 같다. 이순신 장군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던 컨테이너 박스 바리케이드 앞으로 몇몇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두꺼운 스티로폼을 들고서 말이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기자는 서둘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작은 실랑이가 또 벌어졌는데, 만일의 사고 가능성을 막으려는 대책위 측 사람들과 시민들에 의해 결국 무산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밤늦게 결국 컨테이너 앞에 연단이 만들어졌다.

 

인파를 헤치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험했다. 그리고 그건 오로지 오마이뉴스 때문이었다(?). 컨테이너 앞 연단 설치 1차 시도가 있던 밤 8시 3~40분경, 상황 종료와 더불어 기자는 서둘러 오마이뉴스 방송차량 앞으로 가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신호 다 받으며 가도 단 몇 분 만에 다다를 곳을 근 10여 분을 돌고 또 돌았다. 인파를 헤치고 가려니 직선으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마이뉴스 방송차량 앞에 도착한 기자. 어느 기자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컨테이너 박스 있는 데서 사진 몇 장 찍은 게 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쓰실 만한 건가 해서요. 컨테이너 박스 앞에 연단 설치하려 한 거 아세요? 거기 누가 가 있나요?"

 

대답을 기다렸다. 나도 뭔가 다음 대답을 미리 생각하면서. 그런데….

 

"아 네, 알아요. 있어요."

 

아, 이런. 있단다. 오마이뉴스 기자가 거기 있단다. 다행이다 싶기도 했고 또 조금 허망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르고 기자는 애써 그 멀고도 먼 길(?)을 굳이 헤치고 왔으니 그 자체가 허무였다. 허무개그 한 편을 그 자리에서 찍은 셈. 나중에 알게 된 건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오마이뉴스는 상황파악을 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를 넘겨 집에 도착한 후 확인한 건 현장을 내려다보는 오마이뉴스 방송 카메라였으니까. 허, 나 참.

 

몰려든 취재진, 누가 누굴 찍는 거야?

 

사람들이 하도 많이 오다 보니, 누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누가 시민이고 누가 (직업)기자인지, 누가 일반인이고 누가 정부 쪽 사람들인지 헷갈렸다. 안 그래도 다들 조금씩 서로 경계하는 빛도 감돌았다.

 

연단이 설치된 세종로 사거리에서 기자는 한동안 연단에 선 사회자와 시민들을 관찰했다. 연단 앞으로 서서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자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어느새 그 넓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 아무도 함부로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쥐새끼 한 마리 못 지나갈 것만 같았다. 물론 기자도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언제든 시민기자 신분으로 변신하여 활동하리라 생각하던 기자는 갑자기 몰려든 인파에 순간 당황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단 앞에서는 이미 많은 기자들이 늘어서서 수없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들은 본 기자도 찍었다. 물론 기자가 시민들 틈에 끼어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쪽에서도 그들을 찍었다. 연단 위에 혹은 아래에 늘어선 기자들은 그 자체로 또다른 그림을 연출했고 사진 한 두 장 정도 담을 만한 가치는 있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기자 수는 그만큼 엄청난 시민 수를 가늠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찍는지 모를 상황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잠시 후, 기자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시민들 틈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또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자는 곧 다른 곳을 알아봐야만 했다. 어딜 가나 당연히 사람이 많을 텐데도, 이미 다 써버린 건전지를 한쪽에 두고 대신할 새 건전지를 사야했던 기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았다가 인파에 밀려 그대로 발길을 되돌렸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들 때문에 편의점을 돌고 도는 행동은 몇 번 계속되었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날 서울은 참 많이 바빴고 기자 역시 괜히 바쁘고 초조했다. 그리고, 초조함이 더할수록 시민의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차라리 이제부턴 집회 당일이 아닌 '다음 날'들을 마음에 그려보는 연습을 하는 게 더욱 나을 듯했다. 물론,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는 기본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정작 문제는 나라가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다음 기사에 이어서)


태그:#촛불문화제, #6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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