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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빠 2MB 탄핵할 수 있어?"

"4.19혁명이나 유월항쟁 때처럼 전 국민들이 나서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아빠 지금이 군사독재시대야?"

"왜? 너가 군사독재시대를 알긴 알아?"

 

"책 읽어 좀 알고 있어. 경찰들이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밟고, 그렇게 막 두들겨 패고 하잖아. 그게 군사독재 아냐?"

"경찰들에게 미국산 미친 소를 먹였나 봐."

 

"경찰들이 인간 광우병 걸린 거 같아. 아빠! 나도 촛불집회 나가면 안 돼?"

"야자수업(야간자율학습), 학원은 어쩌구?"

 

"끝나고 참석하면 되잖아"

"촛불집회에 그렇게 나가고 싶어?"

"아빠, 나도 미친 소 먹고 일찍 죽고 싶지는 않아."

 

 

미국산 미친 소 수입개방 반대에 따른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요즈음, 창원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큰딸한테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자 메시지가 휴대폰으로 날아들고 있다. 큰딸은 특히 촛불을 들고 평화롭게 행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찰이 무차별 진압을 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큰딸은 서울에서 처음 미친 소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가 열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빠, 왜 촛불집회를 하는 거야. 촛불집회를 하면 정부가 미국산 미친 소 수입을 하지 못해?"라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지면서 유치원생과 여중생, 여고생이 많이 참가하고,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자 제 나름대로 어떤 판단이 선 것 같았다.

 

사실, 큰딸은 자라면서 나이 어린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임금 인상' 등을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면서 "아빠, 노동자들이 왜 저러는 거야? 월급이 적어서...?"라고 몇 번 물었던 적은 있었다.

 

그때는 큰딸이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딸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어떤 사건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이른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고 2학년생이 된 큰딸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 대부분은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다고 그래"

 

얼마 전 어린이 실종사건의 범인이 잡혀 태연하게 범행을 재연하고 있는 것을 본 큰딸은 "저런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발을 딛고 살 수 없게 해야 돼. 대체 정부와 경찰은 뭐하는 거야"라며 목소리를 드높인 적도 있었다. 게다가 TV에서 소년 소녀 가장, 여학생 가출과 자살, 노숙자와 물가 인상 등에 따른 보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주장을 펼치곤 했다.

         

-소년 소녀 가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요즈음에는 소년 소녀 가장이 따로 없다고 생각해. 우리 집도 엄마까지 직장 나가니까 집에 오면 아무도 없잖아. 학교 다녀와서 청소하고 밥 먹고 설거지까지 내가 하니까 나도 소녀 가장이나 다름없지 뭐"

 

-여학생 가출과 자살에 대해서는?

"가정에 충실치 못한 부모 탓도 쫌 있지만 학교 교육 때문이라 여겨. 야자수업에 학원 서너 군데 다니다 보면 힘이 하나도 없어. 우리 학생들한테 숨 쉴 틈을 주지 않으니, 친구들 대부분은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다고 그래. 그렇다고 자살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짓거리라고 봐. 엄마 아빠 생각도 해야지"

 

-노숙자와 물가인상에 대해서는?

"걱정 돼. 행여 아빠가 명퇴로 직장에서 쫓겨나 노숙자 생활을 하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나는 아빠를 믿어. 글구, 음~ 유가가 오르니까 물가가 오른다고 봐. 사고 싶은 거 있어도 담(다음)으로 미루고 군것질도 줄여야지 뭐"

 

-짜아식! 인터뷰를 제법 잘 하는데?

"아빠 딸이잖아. 글구 초등학교 때 교지 기자에 편집국장까지 했잖아. 그때 기사와 칼럼, 사설 쓰는 요령이랑 인터뷰 기법이랑 쫌 배웠어."

 

 

 

밝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더 열심히 싸워야지

 

큰딸이 태어난 해는 1991년 봄, 민주화로 가는 길목이었다. 그러니까 그해는 저 빛나는 유월항쟁이 끝난 뒤였다. 하지만 전두환과 함께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회는 여전히 시끌시끌했다. 여기저기서 이 땅의 참된 민주화를 위한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1991년 4월 초에는 명지대생 강경대 군이 학교 앞에서 집회를 벌이다가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데 이어 그해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 학생 김귀정 양도 을지로 골목에서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숨졌다. 그 뒤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고, 매일같이 대규모 집회가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

 

그때 나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들과 함께 5월 25일 시위에 참석했다가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작가 현기영, 윤정모, 김남일 등과 함께 충무로에 꼼짝없이 갇혀버리고 말았다. 순간 누군가 '엎드려, 엎드려' 하는 소리에 땅바닥에 바싹 엎드리는 순간 최루탄이 비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조용했다. 어디선가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흐르는 듯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뒤를 바라본 순간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나이트클럽 안으로 뛰어 들었다. 백골단이 휘두르는 방망이를 수없이 맞으며. 왜냐하면 백골단들이 땅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끌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얼마나 지났을까. 작가 윤정모 선생 등과 함께 나이트클럽을 살짝 빠져나오자 밖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휴우~ 하면서 한숨 돌리는 순간 어디선가 '잡아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비좁은 골목 안까지 백골단이 시위자를 끌고 가기 위해 마구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인쇄소 안으로 튀었다. 정말 무서웠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어서 목욕탕 들어가서 씻어요. 옷은 몽땅 벗어 세탁실에 넣고"

"머리가 훌러덩 빠지는 것 같아"

"그러게, 왜 그 곳에 갔어요. 이제는 딸내미 생각도 하며, 몸조심 해야지. 행여 다치기나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밝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싸워야지. 내 귀여운 딸내미에게까지 이런 망조 든 세상을 물려줄 순 없잖아." 

 

국가가 쇼를 한다, 정말 쇼를 해

 

나는 이번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무차별 쏘아대는 물대포와 마구 휘두르는 방망이와 마구 짓밟는 군홧발을 바라보며 그때 그 섬뜩했던 기억이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때 태어난 지 갓 백일도 되지 않았던 큰딸이 벌써 고교 2학년생이 되어 내게 보낸 '2MB OUT' 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바라보며, 만감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큰딸은 요즈음 내 휴대폰으로 매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아빠, 이번 촛불집회에선 이명박 물러가라고 외치던데, 아빤 어떻게 생각해?' 혹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정말 웃겨. 수출자율규제가 뭐야. 돈 주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가게 주인 눈치를 보며 사? 그것도 국가가. 정말 쇼를 한다, 쇼를 해' 등등.    

 

하지만 나는 큰딸의 문자메시지를 받고도 일일이 답변을 하지 못했다. 큰딸이 묻는 질문에 자세하게 답변하려면 문자메시지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내가 밤늦게 창원에 있는 큰딸에게 전화를 걸어 문자메시지에 따른 내용 하나하나를 인터뷰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다.

 

-이번 경찰 폭력사태를 어떻게 보니?

"정말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 그 경찰들이 우리나라 경찰들이 맞는지 모르겠어. 아빠 말처럼, 아무리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경찰이 너무 잘못한 거 같아. 아빠, 나도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 창원에서 촛불집회가 열리면 나도 학원 마친 뒤 촛불 들러 나갈 거야. 아빠가 엄마에게 말 잘 좀 해 줘"

 

-정운천 장관이 말한 미국산 쇠고기 수출자율규제가 뭔지 알긴 알아? 

"아빠는. 우리나라 정부가 왜 미국 상인들의 눈치를 슬슬 봐. 그런 건 국가 대 국가로서 협상해야 되는 거 아냐. 그 정도는 여고 2학년생 정도면 다 알아. 그러니까 더 화가 나서 미치겠어."

 

-너희들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수입산 쇠고기가 들어간 것들인데 어떡해?

"그러니까 그때 아빠가 내게 전화 걸었을 때 00회사와 00회사의 라면은 절대 먹지 말라고 했잖아. 그 회사 라면스프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간대. 글구 우리들은 요즈음 과자류나 가공식품을 사 먹을 때 봉투에 적힌 식품의 유형과 원재료를 자세히 읽어보고 사 먹어. 자칫 이러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지만."

 

 

촛불 속에 입시지옥도 활활 태워버리고 싶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BBK, 땅 사건 등이 터지는 걸 보면서 대통령 후보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근데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가. 그때는 우리 국민들이 미쳤었나 봐. 개인적으로 생긴 것도 맘에 안 들지만, 투엠비(2MB)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무현 대통령 때보다 훨씬 더 살기 어려워졌잖아. 미워 죽겠어."

 

-미국산 미친 소 수입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어떡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OUT 되지 않으려면 2MB가 '뿌우시'(부시)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오빠마'(오바마)를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글구, 30개월 이하 쇠고기가 아니라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20개월 이하 쇠고기로 낮췄으면 좋겠어."

 

-왜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니?

"엄마 아빠가 허락하고, 시간이 나면 매일이라도 나가 촛불을 밝히고 싶어. 그 촛불 속에 미친 소뿐만 아니라 입시지옥도 활활 태워버리고 싶어."

 

촛불집회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큰딸과의 전화 인터뷰. 나는 큰딸과 촛불정국에 따른 긴 전화인터뷰에서 아빠의 질문에 거침없이 또박또박 답하는 큰딸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아직 엄마 아빠에게 용돈타령이나 하는 꼬마 소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어른스러워지다니. 그래, 나의 사랑하는 큰딸! 아빠는 너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 응모글' 


태그:#미국산 미친 소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 #이명박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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