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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재보선. 여전한 민주당의 굴욕

 

지난 2004년 총선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참패에 참패를 거듭해 온 민주당의 입장에서 '52곳 중 23곳 승리'라는 단순한 수치만 놓고 본다면 이번 재보선 선거 결과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대표 경선을 진행 중인 민주당에 대해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눈에 띠는 것을 보며, 이번 선거 결과가 민주당이 만성적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내심 바라기도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민주당의 장래에 약(藥)보다는 독(毒)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여겨진다.

 

모처럼 함박웃음을 머금은 민주당의 입장에서 '왜 잔칫날에 찬물을 끼얹느냐?'고 볼멘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이 처한 상황은 냉정하게 말해서 '표정관리'는 고사하고 입꼬리조차 올리면 안될 정도로 굴욕적 상황의 연장선에 있다.

 

먼저 민주당에게 희망을 안겨줬다는 재보선 결과를 꼼꼼히 분석해 보면 결코 민주당이 결코 웃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주당은 9곳에서 치러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서울 강동, 인천 서구, 전남 영광 등 3곳을 이겼고, 수도권 19곳에서 치러진 광역의원 선거에서 14곳을 이겼고 기초의원 6명을 당선시켰다. 물론 이것은 한나라당이 거의 모든 지역을 석권했던 지난 4년간의 각급 선거 결과에 비한다면 선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이명박정권의 실정으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치뤄졌고, 그 상황에서도 한나라당이 기초단체장 1명과 광역의원 7명, 기초의원 1명의 당선자를 낸 것은 보수세력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 지지세가 얼마나 견고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9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대구 서구, 경기 포천, 강원 고성, 경남 남해, 전북 고창 등 5곳이 무소속 당선자를 배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민주당에게 있어서는 굴욕이고 한계치를 드러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구나 남해의 경우 그 곳이 단지 영남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은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조차 등록시킬수 없을만큼 빈약한 지지기반을 드러내고 있으며, 포천이나 고성의 민심 또한 결코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대선 다시하면 이길수 있어?

 

이러한 분석에 대한 근거는 이명박대통령 취임 1백일을 맞아 언론사 등이 조사한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취임 후 100일간 독선과 실정으로 민심이 폭발직전까지 이르러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도는 17%까지 하락했지만,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5%대로 지난 대선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오히려 민주당의 지지율 15%는 대선당시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이번 선거 결과가 한나라당 정권에 대한 심판적 성격으로 분석될 수는 있어도, 민주당에게 어떤 희망적 메시지도 전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굳이 수치를 따지지 않아도 민주당의 굴욕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은 이명박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시정에서 거론되는 대안은 "차라리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이라고 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민주당에 있어서는 굴욕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대선을 다시 치룬다고 가정해보자. 민주당에 과연 누가 있어서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을 꺾을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민주당에게 있어서 밝은 내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 일각에서 "뼈 속까지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조금도 상황이 호전된 것이 없는 민주당에 있어서는 "자성"이라는 단어가 어느 사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현 상황은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해도 민주당이나 야권이 막아냈어야할 쇠고기 수입을 시민사회가 촛불의 힘으로 물꼬를 터 놓은 것을 민주당이 장외투쟁이라는 막차를 탄 결과일 뿐이다. 민주당이 아니어도 시민사회가 기필코 막아낼 작정인 "쇠고기 수입 절대 반대"를 겨우 이제 와서야 목에 힘주어 외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정부 여당의 실정과 패악이 극에 달했어도 반사이익조차 챙길 수 없는 제 1야당에게서 국민은 희망을 찾지 못한다. 오늘날 민주당에는 김근태, 정동영, 손학규 등 기라성 같은 인사들이 모여 있지만 국민은 그들 모두에게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가 한국의 민주당 당원이었다면?

 

이처럼 만성질환이 된 민주당의 무기력증은 마치 동맥경화처럼 낡아버린 순환장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오늘날 미국 정치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의 화려한 등장을 예고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초선에 불과한 '오바마'가 퍼스트레이디 출신인 '클린턴'을 제치고 대선후보로 지명되기까지의 대하 정치 드라마를 연출한 일등 공신은 미국 민주당의 마인드와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이에 따라 당내에 자기 지분이나 계파가 전혀 없는 신인이라고 할지라도 참신하고 미래지향적 마인드와 능력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지난 연말 대선 과정에서 재창당 소동을 벌이면서까지 그 나물의 그 밥으로 대선을 치룬 민주당의 고질적 연고주의와 계파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치러진 각급 선거에서 참패를 반복할 때 마다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반성하겠다"거나 "환골탈퇴 하겠다"는 말을 듣는 이의 귀에 딱지가 생길만큼 반복했지만 당명을 두 차례나 바꾸면서까지 과연 민주당이 어떤 변화를 이루어냈는지 국민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 두고 대표경선을 진행 중이지만 '친노니 친민주니, 호남이니 수도권이니'하는 대결구도가 식상하고, 경선에 출마한 후보자들 역시 아무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세력에 의존한 득표전에 몰입 중이다.

 

만약 우리 민주당에 '버락 오바마' 같은 정치 신인이 출현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차기 대선 과정에서 당내 기득권과 지분을 장악한 노회한 정치인들을 제치고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 가능성의 퍼센티지를 최대치로 높혀주는 것이야 말로 오늘날 민주당이 이루어야 할 환골탈퇴이며 개혁이고 민주당의 내일이 될 것이다.

 

6.4 재보선의 어중띤 결과를 민주당의 승리로 여기는 자만이 만에 하나 그들의 마음 속에 숨어 있다면, 이것은 분명 민주당을 종말로 이끄는 치명적인 독(毒)으로 작용할 것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민주당, #재보선결과, #버락오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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