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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저리 가라! 앨비스 프레슬리도 저리 가라! 우리 아빠는 드러머다. 아니 드러머였다. 친구들의 아빠에 비해 꽤 나이가 많은 우리 아빠의 청년시절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격동의 한국사는 저리가라다.

 

우리아빠의 주민번호 앞자리는 49로 시작한다. 1949년생. 틈만 나면 아빠는 "나는 4대문 안 출신이야"라고 말하곤 하시는데 '버블세븐'지역도 아니고 '4대문'이라니… 꽤 옛날 분이신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배경의 아빠여서일까. 우리아빠는 나에게 항상 보수적이다. "옷 다시 갈아입고 나오지 못해? 치마 길이가 그게 뭐니?", "여자애가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니?" 등등. 복장검사까지 철저하게 했던 아빠 덕에 나의 미니스커트 사수작전은 우리나라 70년대 미니스커트 금지령을 방불케 했다.

 

청소년시절, 미니스커트가 간절히 입고 싶었던 나는 치마를 싸갖고 나와서 공중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됐을 때 '미니스커트 금지령도 풀어달라'고 항의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아빠의 대답은 "나이가 먹을 수록 더 단정해야 하는 거야, 다 큰 처녀가 어디 다리를 함부로 내 놓고 다녀"였다.

 

엄하디 엄한 아빠의 과거를 알아버리다

 

지금은 공중화장실에서 미니스커트로 갈아입는 해프닝은 벌이지 않지만, 이렇게 다 큰 내게도 항상 보수적인 우리 아빠다. 그런데 이런 아빠에게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과거가 우연한 기회에 폭로된 것. 바로 장발을 한 젊은 시절의 아빠 사진을 발견하고 부터다.

 

젊은 시절 아빠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체크 남방을 입은 채 옆구리에는 항상 책을 끼고 다닌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은 바로 그 날!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사진들을 정리할 겸 뒤진 책장 속에서 오래된 앨범이 떨어지면서 부터다. 뽀얀 먼지를 사르르 털면서 내 앞에 떨어진 그 앨범은 아빠의 과거를 폭로하기 위한 하늘의 계시였음이 틀림없다.

 

"아빠, 아빠가 비틀즈야?"

 

사진 속의 아빠는 장발머리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제법 타이트한 티셔츠를 입은 채 드럼을 치고 있었다. 여자들의 단발머리 정도 되는 길이의 머리를 휘날리며 드럼 앞에 앉아있는 아빠의 모습은 웬만한 전문 드러머 못지 않다.

 

오 마이 갓! 우리 아빠에게도 이런 청춘이! 사진 속의 아빠는 그저 총각시절로 돌아간 아빠가 아니었다. 지금의 모습과는 360도! 아니 720도 전혀 다른 아빠의 모습 이었다. 아빠의 의외의 모습에 재미있으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 "아빠! 이게 뭐야? 아빠 가수였어?" 드디어 우리 집안에도 예능계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 음치인 내게도 희망이 생기는 구나!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내게 돌아온 아빠의 대답은 "응, 그거 아빠 총각 때 밴드활동 할 때 찍은 사진이야. 그 사진이 아직도 있네."

 

"아빠! 이 사진은 또 뭐야? 아빠 운동선수였어?"

 

바로 내 나이 무렵의 자신을 본 아빠는 새삼 감상에 젖는다. 우리나라에서 비틀즈가 한창 유행할 때 젊은이들이 비틀즈를 많이들 따라했다고 하던데 우리 아빠도 유행의 선봉에 있었다니…. 아빠는 TV 속 가수에 열광하는 나에게 항상 "저런 딴따라 뭐가 좋니"라고 면박을 주시곤 했는데 근엄한 아빠의 모습과 젊은 시절 드럼 앞에 앉아있는 아빠의 사진이 오버랩 된다.   

 

"아빠! 아빠 운동선수였어?"

아빠의 반전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식축구선수 하인즈 워드를 기억하는가? 하인즈 워드가 미식풋볼리그 MVP상을 받았을 때 아빠는 자신의 일인 양 열광한 적이 있었다.

 

"이야! 자랑스럽지 않니? 너도 여기에 관심 좀 가져봐. 맨날 보는 축구, 야구 식상하지도 않니."

 

그런데 그 때 그 하인즈 워드가 들고 있던 럭비공을 사진 속 우리 아빠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 축구도 아닌 미식축구을 하고 있었다니. 공을 높이 치켜들고 동료들에 에워싸여 있는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은 몇 십 년을 거슬러 경기장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듯했다.

 

"아빠! 이 사진은 또 뭐야? 아빠 운동선수였어?"

 

운동신경이 꽝인 나에게도 운동 선수의 내력이 있었다니 하는 생각에 젖어 있을 쯤 돌아온 아빠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 할머니 몰래 운동 써클 활동 한 거야. 그 당시에는 양·배전이라고 있었는데 지금 너네 연·고전 생각하면 될 거야. 그렇지만 우리 때가 훨씬 박진감 넘쳤지. 그 땐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지."

 

당시를 회상하는 아빠의 눈빛에서 나는 사진 속 아빠의 눈빛을 읽는다. 

 
시대를 초월한 이 시대의 자유인, '아빠'
 

이제야 이해가 간다. 술을 드시면 젓가락으로 온갖 그릇을 두들기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아빠, 밤 늦도록 케이블 TV로 미식풋볼 생중계를 시청하는 아빠. 자유롭게 활동하던 젊은 시절의 아빠와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아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알 수 있었을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인지….

 

자유로웠던 본인의 청춘을 딸인 나도 경험하길 바라는 아빠와 또 그 경험들을 다 해봤기 때문에 그만큼 통제하는 것도 많은 나의 아빠. 빛 바랜 젊은시절 아빠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본다.

 

방학 숙제 해야 한다는 나를 억지로 끌어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행읃 데리고 다녔던 나의 아빠는 "학교 밖에서의 지식이 더 중요한 거야"라고 말했었다. 아빠는 나에게도 청춘의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주고 싶으셨으리라. 아빠는 자신의 청춘을 '방황'이라고 정의하지만 시대를 초월한 이 시대의 자유인 아닌가.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본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덧붙이는 글 | <가족 인터뷰>응모글


태그:#가족, #가족인터뷰, #가족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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