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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은 종각으로도 불린다
▲ 보신각지 보신각은 종각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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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다. 우리의 문화유산도 화살처럼 빠른 세월 앞에 맥을 추지 못한 채 여기저기 훼손되고 있다. 하지만 세월보다 더 무섭고도 잔인한 복병이 있다. 사람이다. 이는 사람이 만들어 남긴 문화유산이 사람의 손때 발때를 타기 시작하면 무서운 속도로 사그라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숭례문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처럼 우뚝 서서 도성을 지키고 있던 국보 1호도 사람의 손에 의해 불에 타 고스란히 재가 되고 말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한 번 사라진 문화유산은 제 아무리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다 하더라도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지 않다. 역사의 은은한 향기가 묻어나지 않는다. 저 유리창에 진열된 마네킹처럼.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잃어 버렸던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수난의 역사를 아슬아슬하게 거쳐 온 이 나라. 끊임없는 화재와 도난, 세월의 비바람에 수없는 복원과 수없는 중수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버텨온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 보호야말로 우리 역사의 자존심 아니겠는가.

짙푸른 녹음에 뒤덮인 보신각
▲ 보신각 건물 짙푸른 녹음에 뒤덮인 보신각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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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각이 있었던 터
▲ 보신각 조선시대 종각이 있었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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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녹음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보신각지   

5월 31일(토) 오후 3시. 후배와의 약속이 있어 종로에 나갔다가, 주말을 맞아 미국산 미친 소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옳거니 싶어 서울시청으로 간다. 여기서 옳거니,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 것은 후배와의 만남이 끝난 뒤 시간이 참으로 어정쩡했기 때문이었다.

비가 그친 뒤여서 그런지 늘상 우중충하게 흐려 있었던 서울 하늘이 오랜만에 맑은 얼굴로 나그네를 반긴다. 저만치 뭉게구름 서넛 걸려 있는 푸르른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도 눈이 부시게 찬란하다. 지난 해 여름 서울에 다시 올라와 살면서 이렇게 맑은 하늘과 이렇게 하얀 뭉게구름과 이렇게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내리는 맑은 햇살은 처음인 것 같다.  

차들이 거센 속도로 달리는 종로통 도로가에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수들도 저마다 싱싱한 초록빛을 한껏 뽐내고 있다. 옳거니! 또 한 번 옳거니 소리가 입에서 비어져 나온다. 저만치 보신각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보신각지 취재나 하고 가야지. 저녁 7시에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려면 아직 시간이 잔뜩 남아 있으니까.

보신각지로 천천히 다가선다. 짙푸른 녹음에 잠긴 보신각지 정문 앞에는 조선시대 군복을 입은 사람 셋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서 있다. 두 사람은 장대처럼 긴 붉은 색 창으로 보신각지 들머리를 V자로 막고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그 가운데 문지기처럼 우뚝 서 있다.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듯이.

매년 1월1일 이곳에서 타종한다
▲ 보신각 매년 1월1일 이곳에서 타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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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건물은 1979년 8월에 지어진 건물이다
▲ 조선 태조 때 처음 지어진 종각 지금 이 건물은 1979년 8월에 지어진 건물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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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저팬? 차이나?

나그네가 마네킹처럼 서있는 그들을 무시하고 보신각지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마네킹(?)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나그네가 보신각지 사진 좀 찍으려 한다 하자 관리인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으니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으라 한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면 어디가 닳아, 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저만치 관리인이 다가온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저팬? 차이나?"
"???"

"차이나?"
"내가 왜놈이나 때놈처럼 보여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여기 아무나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요."
"아무나는 누구나를 가리키는 말인가요?"

"날도 더운데 입씨름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진 찍으시죠."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홧김에 관리인과 끝까지 꼬치꼬치 따지려 하다가 애걸하는 듯한 말을 내뱉는 관리인이 애처로워 헛웃음 몇 번 날린 뒤 보신각지 밖으로 나온다. 보신각지 주변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다시 부아가 치민다. 밖에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꼭 찍으려 했던 보신각지 종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하긴, 이 세상살이가 나그네의 뜻대로 된 것이 어디 있던가. 저 산만 넘으면 나그네가 바라는 행복의 날들이 오겠지, 하며 온몸을 땀으로 목욕하면서 산을 넘고 나면 그 산 아래 천 길 낭떠러지와 시퍼런 강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았던가. 저 터널만 지나면 밝은 날들이 오겠지, 하며 꾹 참고 터널을 지나면 더 길고 긴 터널이 다가오지 않던가.  

1985년 국민의 성금으로 만든 보신각종은 그해 광복절 때 첫 타종되었다
▲ 보신각 종 1985년 국민의 성금으로 만든 보신각종은 그해 광복절 때 첫 타종되었다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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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보신각종은 새벽 4시에 33번, 저녁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렸다.
▲ 보신각 조선시대 보신각종은 새벽 4시에 33번, 저녁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렸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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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맞어? 백과사전이 맞어? 서울시가 맞어? 

보신각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102)는 종로 네거리에 있는 종각(종루)의 옛터란 뜻이다. 보신각지 건물에 걸려 있는 종은 지금도 해마다 1월 1일에 타종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이곳 종루의 종을 울려 성문을 걸고 닫는 시각과 도성 안에 불이 났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서 비롯된 듯하다.    

근데,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0호라는 보신각지의 지정년도가 제각각이다. 어느 자료를 믿어야 할지 마구 헛갈린다.

문화재청과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보신각지가 199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고 씌어져 있다. 하지만 서울시 홈피에는 1997년 11월 10일에 지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조선시대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태조 7년 1398년이라고 씌어져 있다. 하지만 서울시 홈피에는 "조선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려의 제도를 따라 태조 5년(1396) 지금의 인사동 입구인 청운교 서쪽에 종각을 짓고 종을 걸어 종소리에 따라 각 성문을 열고 닫게 했다"고 적혀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종각은 태조 4년(1395)에 처음 지어진 후 4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8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고 나와 있다. 이거야 원. 네이버 백과사전의 태조 7년을 믿어야 할지, 서울시 자료의 태조 5년을 고집해야 할지, 아니면 문화재청 자료의 태조 4년이라고 벅벅 우겨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나그네로선, 전문 문화유산 연구가도 아닌 나그네로선, 대체 어느 자료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 나그네뿐이겠는가.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외국인들 또한 어리둥절하지 않겠는가. 숭례문이 불 타 없어진 뒤에도 이러한 오기 투성이니 정부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것 같다.

고종 32년, 1895년에 보신각 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 보신각 고종 32년, 1895년에 보신각 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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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파묻힌 보신각지
▲ 보신각 초록에 파묻힌 보신각지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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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이승만의 글씨가 종로 한복판에 금빛을 내고 있다니

보신각지에 대한 자료를 차근차근 읽는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보신각은 다른 이름으로 '종각'이라고도 하며, 고종 32년 1895년에 '보신각'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이와 함께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종각 건물은 1979년 8월 서울특별시에서 지은 것으로, 동서 5칸 남북 5칸의 2층 누각이다. 

지금 종각에 걸려 있는 종은 조선시대 만든 그 보신각종이 아니다. 보물 제2호로 지정되어 경복궁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는 보신각종도, 태조 때 도성의 문을 여닫을 때나 화재가 났을 때 친 그 종이 아니다. 이 종은 세조 14년, 1468년에 만들어진 종으로 원각사에 있었다. 하지만 절이 사라지면서 광해군 11년 1619년에 지금의 보신각지 자리로 옮겼다.

보신각종은 그때부터 새벽 4시에 33번, 저녁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렸다. 하지만 긴 세월 속에 몸통에 균열이 생겨 종을 칠 수 없게 되어 지금은 별도 보관 중이다. 그러니까 지금 보신각지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 그해 광복절에 첫 타종, 지금까지 매년 1월1일에 타종하고 있는 종이란 그 말이다.

지금 걸려 있는 보신각(普信閣)이란 금빛 편액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꼴불견 중의 꼴불견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저 금빛 글씨가 온갖 독재를 저지르다 못해 3·15 부정선거와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사건을 거쳐 마침내 4·19혁명으로 권력을 내놓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라니.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보신각이란 편액의 글씨는 독재자 이승만이 썼다
▲ 보신각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보신각이란 편액의 글씨는 독재자 이승만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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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구역질이 욱, 하고 치민다. 그때가 언제인데, 지금까지도 종로 한복판에 독재자 이승만의 글씨가 버젓이 걸려 있는가. 정부 당국자에게 바란다. 하루속히 보신각지에 걸린 독재자의 편액을 떼어내고, 다른 글씨로 바꾸라고. 오늘도 미국산 미친 소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촛불을 드는 시민, 학생들을 거울로 삼아 서둘러 바꾸라고.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서울-지하철 1호선 종각역



태그:#보신각지, #종각,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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