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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로 입구
▲ 등나무 관찰로 입구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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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부산 금정산 산행로의 하나인 범어사 산문 입구에서 '등나무 자생 군락지'란 표지판에 이끌려, 아프리카 밀림처럼 등넝굴이 축축 늘어진 곳으로 들어섰다.

몇몇 지인으로부터 범어사 계곡에 '등나무 군생지'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별로 기대를 하지 않지 않아 일부러 찾지 않았던 것인데, 등나무 관찰로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점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등나무 군생지
▲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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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의 등나무 군생지는 1966년에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됐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등나무 군생지다.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 흔히 공원이나 사무실 휴게실이나 관공소 정원 등 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얻기 위해 심는 등나무는 시인이나 화가의 그림 소재에 많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등나무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인연의 뿌리를 내리면서 살아가는 우리네 민중의 모습으로 많이 형상화된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등나무의 줄기가 가닥가닥 꼬여 가면서 한데 어울려 군생을 이루는 모습이우리네 세상살이처럼 다가왔다.

산책로
▲ 등나무 산책로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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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구름의 나들이가 보기 좋은 날
등나무 아래 기대어 서서 보면
가닥가닥 꼬여 넝쿨져 뻗는 것이
참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철없이 주걱주걱 흐르던 눈물도
이제는 잘게 부서져서 구슬 같은 소리를 내고
슬픔에다 기쁨을 반씩 버무린 빛깔로
연등날 지등의 불빛이 흔들리듯
내 가슴에 기쁨 같은 슬픔 같은 것의 물결이
반반씩 녹아 흐르기 시작한 것은
평발 밑으로 쳐저 내린
등꽃송이를 보고 난 그 후부터다.

밑뿌리야 절제 없이 뻗어 있겠지만
아랫도리의 두어 가닥 튼튼한 줄기가
꼬여 큰 둥치를 이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너와 내가 꼬여 가는 그 속에서
좋은 꽃들이 피어나지 않겠느냐?

또 구름이 내 머리 위 평발을 밟고 가나 보다.
그러면 어느 문갑 속에서
파란 옥빛 구슬 꺼내 드는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 송수권의 '등꽃 아래서'

꼬여가는
▲ 가닥가닥 꼬여가는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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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 등나무가 있는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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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의 등꽃은 모두 알다시피 예쁜 보랏빛 꽃인데, 아쉽게도 등꽃은 벌써 지고 시원한 녹음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등나무 군생지의 관찰로에는 관광객을 위한 벤치와 군데 군데 아름다운 조경의 연못이 있었다. 맑은 물 속에는 피라미 등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범어사의 등나무 군생지의 등나무들은 거의 100년 이상의 수령 깊은 나무들로 약 6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서식하고 있었다.

꼬여가는 그 속에...
▲ 가닥가닥 꼬여가는 그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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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같아라.
▲ 나무 구리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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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처럼
▲ 우리의 인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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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는 변비 근육통 관절염 모든 부인병에 좋다고 한다. 또 등나무는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만 자라는데, 생장력이 몹시 왕성하여 덩굴이 2백 미터까지 뻗는다고 한다.

등나무의 새순을 등채라 하여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꽃은 등화채라 하여 소금물에 술을 치고 함께 버무려서 시루에 찐 뒤 식혀서 소금과 기름에 무쳐 먹는데, 그 옛날 지체 있는 양반들 사이에서 풍류식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등나무
▲ 범어사 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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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좋은 음식과 좋은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생각난다고 말하듯이, 이곳에 오니 아이들 얼굴부터 떠오르고, 늘 등산을 같이 다니는 산벗들과 형님의 얼굴도 떠오른다. 내주에는 꼭 같이 와서 함께 이 신기한 등나무 풍경을,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감상해야겠다.


태그:#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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