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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毛澤東)의 필적 중에서 네 글자를 찾아 타이틀필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 <스틸 라이프>의 중국 원제는 '三峽好人' 마오쩌둥(毛澤東)의 필적 중에서 네 글자를 찾아 타이틀필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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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쯔강을 가로막은 길이 2300m, 높이 185m의 세계 최대 댐인 싼샤(三峽)댐 건설은 북방의 물 부족을 남방의 남는 물로 조달한다는 남수북조(南水北調) 사업의 새로운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3년 착공 이후 이주민 수만 200만 명, 수몰되는 유물·유적지는 2318곳에 달한다. 쓰촨(四川)성 지진도 어쩌면 싼샤댐의 과다한 저수량에 의한 수압이 지표층에 변화를 가져와 유발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이다.

중국 하층민들의 삶을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진실되게 보여주는 6세대 감독 지아장커(賈樟柯)가 싼샤댐 건설로 인한 서민들의 아픔과 수몰되어 가는 도시에 대한 진혼곡을 영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 원제는 三峽好人)>에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200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스틸 라이프>는 시사적이면서도 민감한 현실 문제를 느릿느릿 움직이는, 한 편의 청록색 수묵산수화 혹은 두루마리 그림(手卷畵) 속에 절제된 다큐 양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양쯔강과 사라져가는 도시가 바로 주인공

차오르는 양쯔강의 수위에 따라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나야 한다.
▲ 해체되는 도시, 그 안의 민중들의 삶 차오르는 양쯔강의 수위에 따라 챙길 것은 챙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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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자신을 버리고 딸과 함께 도망간 아내를 찾는 산밍과 2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나선 션홍.

이 두 명의 등장인물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긴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유히 흐르는 양쯔강이고 그 차오르는 강물에 사라져가는 도시이며 또 그 모든 변화의 격동을 맨몸으로 떠안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산밍과 션홍이 확대된, 민중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양쯔강과 수몰되어가는 도시가 주인공이고, 등장하는 인물조차도 그 배경 속의 작은 풍경이 된다. 즉 <스틸 라이프>는 도시의 해체가 인간관계의 해체를 불러오고 인간의 삶과 역사적 흔적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담배(煙), 술(酒), 차(茶), 사탕(糖), 이 네 개의 소제목으로 나눠져 있다. 이것들은 인간의 생사를 결정짓는 생명의 필수품은 아니지만 고단한 삶에 작은 위안과 휴식이 되어주는 소중한 기호품들이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정말 마지막 남은 위안은 어쩌면 이런 것들일지도 모른다.

3단계 수위 156.5m. 물은 소리 없이 차올라 사람들이 살던 도시를 집어 삼키고 또 도도히 흘러 그곳의 모든 기억들을 지워간다. 무섭게 차오르는 수위 앞에서 인간은 이제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긴 것은 챙겨 떠나야 한다. 16년 전 자신을 버렸던 아내와 딸을 3만 위엔을 지불하고 챙겨 돌아가든가 아니면 2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남편을 완전히 버리든가 말이다.

과거와 현실은 앗아가면서 미래만 믿어라

뒤에 보이는 폐허가 된 건물이 비행우주선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통해 초현실적인 상황이 급습하는 중국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초현실적 상황의 현실화 뒤에 보이는 폐허가 된 건물이 비행우주선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통해 초현실적인 상황이 급습하는 중국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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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삶의 터전과 2천년이나 된 인간들의 오랜 흔적들을 아쉬워하는 듯 영화는 느리고 긴 촬영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UFO나 폐허의 건물이 우주비행선이 되어 날아가는 등의 다소 초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관객들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발함을 보여준다.

백지가 달러, 런민삐, 유로화로 바뀌는 배 위의 마술쇼 같은 일이 현실에서도 버젓이 일어나며 인간을 당혹스럽게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대규모의 댐건설로 인해 자신들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는 일은 어쩌면 UFO나 우주비행선보다도 더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중국이라는 급변하는 사회는 그렇게 초현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을 향해 수많은 초현실적인 상황이 급습하는 사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은 건물을 헐어낼 때 재활용을 위해 벽돌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영화 속 노동자들은 뙤약볕 아래 알몸으로 벽돌을 망치로 때려 부수며 도시를 해체해 가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침수될 지역에 소독을 하기 위해 등장하는 소독요원들은 완전 밀폐형 작업복을 갖춰 있고 등장해 좋은 대조를 이룬다.

모든 것을 갖추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과 고단한 현실에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는 자들, 과거와 현재의 삶이 송두리째 수몰되는 곳을 서성이는 미래의 유령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감독은 과거와 현실의 삶을 모두 앗아가면서 미래만 선전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잔잔하면서도 강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과 생명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절박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위험한 허공의 줄타기 생존과 생명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절박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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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잃고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영화의 막바지에서 더욱 비극적으로 드러난다. 하루에 40~50위엔을 받던 일군들은 일이 끝나면 산밍이 일하던 산시(山西)성 탄광으로 가겠다고 한다. 하루에 200위엔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다들 가겠다고 나서지만 탄광일은 위험해서 1년에 10여 명씩은 죽는다는 말에 그들은 뿌연 담배연기 속으로 깊은 침묵에 빠져든다.

생존과 생명의 기로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절한 삶의 모습은 <수호전>에서 임충이 고향을 떠나면서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보이는 마지막 허공의 줄타기 장면으로 더욱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처절한 기록

싼샤의 진짜 모습은 이제 화폐에만 남아 있는 사라진 것이 되고 말았다.
▲ 중국화폐 10위엔 뒷면에 있는 싼샤와 실제 싼샤를 비료하는 산밍 싼샤의 진짜 모습은 이제 화폐에만 남아 있는 사라진 것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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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속 저우룬파(周潤發)처럼 지폐에 불을 붙여 담뱃불을 붙이는, 나중에 산밍의 친구가 되는 젊은 노동자 마크는 작업 도중 무너진 벽돌더미에 깔려 죽고 그의 시신은 양쯔강 위로 흘러간다.

"지금 사회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 우리는 너무 옛 것을 그리워하기 때문이야!"

저우룬파가 영화 속에서 했던 말이자 마크가 죽기 전 했던 이 말은 어쩌면 지아장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정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싼샤는 양쯔강 중상류의 취탕샤(瞿塘峽), 우샤(巫峽), 시링샤(西陵峽)의 세 협곡을 말하는데 모든 중국인들은 그곳을 가보지 않고도 안다. 왜냐하면 중국 화폐 10위엔짜리의 뒷면에 도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도 10위엔 뒷면의 도안과 실제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싼샤댐 건설로 진짜 싼샤의 모습은 10위엔 화폐에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 되고 만 것이다.

급속한 발전 논리에서 과거의 기억과 문화, 소중한 민중들의 삶의 터전은 처참하게 짓밟히고 무시당한다. 영화 <스틸 라이프>는 그렇게 사라져 가는,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기억이며 그것을 붙잡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고 마크처럼 양쯔강에 수장된 수많은 과거 2천년의 유물들과 절박한 인간들의 흔적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떠나보내야 하는, 애절한 이별노래가 아닐까.


태그:#스틸 라이프, #삼협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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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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